▲잠자리이종찬
"털기야 털기야 멀리 가면 죽는다 제 자리 붙어라"
그랬다. 우리는 잠자리를 털기라 불렀다. 우리뿐만 아니라 당시 창원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잠자리를 털기라 불렀다. 근데 왜 잠자리를 털기라고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잠자리가 날개 짓을 할 때 무엇을 터는 것 같은 그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잘 익은 고추 같은 고추잠자리는 고치털기라 불렀고, 몸집이 크고 알록달록한 검은 줄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진 장수잠자리는 장군털기, 주로 냇가에서 사는 온몸이 까만 물잠자리는 물털기 혹은 도둑털기, 온몸이 실처럼 가느다란 실잠자리는 실털기라고 불렀다.
내가 사는 동산마을 앞에는 사시사철 비음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유리구슬 굴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더없이 푸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을 이름이 된 동산이라고 부르는 오두막집 같이 아담한 산이 마을 중앙에 있었고, 가음정이라는 마을과 우리 마을을 가로막고 있는 나즈막한 앞산이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자연 환경이 그러하다 보니 털기가 서식하기에 딱 들어맞았을 것이다. 또한 유달리 여러 종류의 털기가 많았다. 방문을 열어 놓으면 방안까지 거리낌없이 날아드는 것이 털기였다. 그리고 이맘 때, 밤송이가 막 입을 벌리고, 추석이 가까워 오는 이맘 때가 되면 티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무수히 날아다니는 것이 털기떼들이었다.
우리는 개구리 낚시도 했지만 털기낚시도 했다. 개구리 낚시는 오후 4-5시, 배가 출출해질 때 주로 했고, 털기낚시는 점심을 먹은 뒤에 주로 냇가에 나가 주로 했다. 그래, 그 보리밥. 그 시커먼 보리밥을 물에 말아 볼이 터지도록 가득 채운 뒤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몇 번 베어먹으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