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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 죄송스러움을 무릅쓰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이고, 모든 사람에게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늘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이니,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통상적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을 듯 싶습니다.
그렇더라도, 내가 또 한 번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어느덧 인생 무상을 체감할 수 있는 시절에 이른 탓일 수도 있고, 또 한 해의 계절이 결실과 조락이 병행하고 풍요와 허무가 동반하는 가을로 접어든 탓일 수도 있고, 모든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하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수도 있을 듯 싶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도 명절은 있겠지만, 나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과 추석이 산 사람들만의 명절이 아니고 모든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하는 명절이라는 사실에서 무한한 자부심과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특히 추석의 경우 죽은 이들의 묘소 벌초로부터 시작해서 차례와 성묘로 이어지는, 죽은 이들을 우선하는 풍습에서 이승과 저승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우리 삶의 아름다운 심연을 감득하기도 합니다.
묘소 벌초를 하는 모습, 본가(本家)나 장자(長子)의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가족이 다 함께 성묘를 하는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갖가지 형태의 수많은 불효의 모습도 노정 되고 있는 시절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삶의 근원 속에는 '효(孝)'라는 이름의 틀거지가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음도 거기에서 보게 됩니다. 거기에서 발원하는 온갖 좋은 심성과 정들이 서로를 껴잡고 살게 하는 힘으로 우리의 삶 속을 끊임없이 흐를 테고….
그런데 명절 성묘를 하는 모습에도 경건하고 즐거운 성묘가 있는 반면 슬프고 애처로운 성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된 묘가 아니고 새로 생긴 묘일 경우, 성묘를 하는 모습에서도 호상(好喪)과 애상(哀喪)은 쉽게 구분이 될 듯싶습니다.
이렇듯, 사람이 이승을 하직하는 일에도 산 이들과 연관하는 '호·불호(好 不好)'는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이승을 떠나는 일은 일단은 슬픈 일이지만, 거기에도 좋은 죽음이 있을 수 있고, 산 이들의 처지와 관련해서도 이 세상에는 호상이 있는 반면 산 이들에게 막막한 슬픔만을 안겨 주는 애상도 있다는 얘기지요.
물론 이 세상에는 호상이 더 많을 테고, 그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좋은 죽음의 형태나 호상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그것을 아주 단순화시켜서 말한다면, 무병 장수하다가 자신도 고생하지 않고 가족들에게도 고생을 시키지 않고 하룻밤 사이에 홀연히 숨을 거두는 것―그런 죽음이 호상 중에서도 호상일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그런 죽음이 많습니다. 나는 그런 일반적인 호상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습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특히 양쪽 이웃집들의 호상을 보며 그때부터 호상의 의미나 질감을 되새겨볼 수 있었지요.
한 집은 무병 장수하신 할머니가 구순을 넘기시고 3일 정도 노환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으니 누가 보아도 호상일 터였습니다. 6, 25사변 때 좌익이었던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어 외동딸 하나만을 의지하고 평생을 사셨으니 풍상이 많았던 그 삶을 놓고 보면 호상일 수만은 없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호상의 범주에는 능히 들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또 한 집은 자식들과 조카들이 드리는 용돈을 가지고 다방에도 가서 젊은 마담이나 레지 아가씨들에게 차 대접도 하고 친구처럼 농담 나누는 걸 좋아하시던 팔순을 훨씬 넘기신 할아버지가 저녁을 잘 잡수시고 일찍 잠자리에 드셨는데 다음날 아침 기척이 없어 조용하기만 한 방을 며느리가 살며시 열어보니 그냥 주무시듯 숨이 멎어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상을 오는 사람마다 그 얘기를 듣고 호상 중에서도 호상이라는 말들을 하곤 했지요. 장례를 치르는 자식들도 별로 슬프거나 고달픈 기색이 아니었고….
양 이웃집의 그런 호상에 비하면 우리 집은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내 선친께서는 66세라는 아까운 연세로 간경화라는 병을 얻어 석 달 동안 병석에서 고통을 겪으시다가 운명하셨으니…. 못난 자식의 가슴에 불효의 한을 가득 안겨 주고 가셨으니….
그런데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내 주변에서 애상보다는 호상이 많았던 듯싶습니다. 옛날에는 애가 죽는 일 외로는 애상이라는 말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부잣집 영감님이 겨우 환갑 넘긴 나이에 복어를 잘못 잡수시고 돌아가신 것 외로는 불상사에 의한 죽음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못 먹고 못 살았던 시절에도 평균 수명이 짧았던 것 외로는 애상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세월을 넓혀 살아가면서 애상도 점점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생활문화가 발전하고 과학문명과 의학이 발달한 시절을 살면서 불상사에 의한 애상을 더 많이 보고 겪는다는 것은 뭐랄까, 인간의 한계와 허무 따위를 더욱 짙게 실감시켜 주는 것도 같습니다.
내 기억에 많이도 떠오르는 불상사에 의한 애상 가운데는 기이하다면 기이한 죽음도 많지 싶습니다. 몇 년 전 중학교 동창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지요. 한 동네에 살던 동창 한 사람이 누구보다도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 치르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집일처럼 돌보았지요. 장례를 마친 다음날 몸이 너무 피곤할 테니 푹 좀 쉬라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친구는 천안에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나갔지요. 그 길로 그는 황천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친구의 연이은 교통사고 죽음을 보고 많은 친구들이 같은 말들을 했지요. 동창에다가 같은 동네에 살다보니 너무 친해서, 먼저 간 친구가 불러서 그리 되었다고….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조금은 비슷한 일이 최근에 또 하나 내 주변에서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쓴 「죽음에 관한 요즘의 명상」에서 상세히 기록한 내 당질의 죽음과 관련되는 이야기지요.
내 당질이 대전성모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문병을 온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부는 서로 닮기 때문인지 똑같이 착하고 수더분하게 생긴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이내 돌아가는데, 두 사람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가 저녁 6시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환자를 보고서도 한참을 더 있다가 밤늦게 돌아가더군요.
내 당질과 학교 동창도 아니고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친구일 뿐인데, 당질보다 나이가 몇 살 위인데도 참 자별한 사이였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때 그 사람과 처음 인사를 나누고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이름이 보식이어서 사람들이 그를 '뽀식이 아빠'로 부른다는 것도…. 그는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듯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 호의적이더군요. 어떤 존경과 선망도 스며 있는 듯한 그의 눈빛을 보며 나는 그가 매우 착하고 순량한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죽은 당질의 시신을 싣고 태안의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보니 그 친구가 먼저 와 있더군요. 나름대로 미리 초상 치를 준비를 다 해놓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례식장과 장지를 지켰습니다. 염습을 할 때는 위생복을 입고 염장이들과 함께 손을 맞추었고, 장지에서는 봉분 작업을 마치고 뒷마무리까지 정말 자기 일처럼 몸을 바삐 움직였지요. 일가 친척도 아닌데 저런 사람도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그는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당질의 장례를 치른 날로부터 보름이 좀 지난 며칠 전(11일) 학교에서 퇴근해 온 아내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1학년 1반 담임선생님이 학년부장인 아내에게 와서 자기 반 한 아이의 아빠가 교통사고로 운명했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그분을 종종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만나곤 했는데, 만날 때마다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이라고 젊은 여교사에게 구십 도로 절을 하곤 해서 매번 송구스럽고 민망했노라는 말을 하면서…. 무슨 일이든 동네 일에도 솔선 수범하던 착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 왜 그렇게 불행한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며….
그때까지는 아, 그런 일이, 그런 사람이 있는가보다는 정도로만 생각을 했지요.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의 불행에 잠시 가슴 아파하고 그의 영혼을 생각하며 성호를 한 번 그었을 뿐이었지요.
그런데 그날 저녁 꽃게 한 상자를 구입해서 일찌감치 사촌형님 댁에 추석 선물을 드릴 겸 얼마 전에 아들을 잃은 슬픔을 위로해 드리려고 형님 댁에 가니, 형수님이 눈물을 지으면서 뽀식이 아빠 얘기를 하더군요. 그날 새벽 인천 근방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운명했다는 이야기….
뽀식이 아빠는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답니다. 트럭을 몰고 서울의 한 거래처에 들러 꽃게를 내려준 다음 꽃게 상자에 넣을 톱밥을 실으러 인천으로 가던 도중 안개 낀 길에서 신호 대기 중인 대형 트럭을 미처 보지 못한 바람에 그만 추돌을 하고 말았답니다. 새벽의 안개도 주요 원인이었을 테지만, 어쩌면 순간적으로 깜빡 졸았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왜 그런 일이…. 그런 불필요한 생각만이 내 뇌리에서 뱅뱅 돌았습니다. 이상야릇한, 난감하고도 모호한 마음이 가슴을 한없이 무겁게 하는 것만 같았고….
비록 일찍이 알지 못했고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지만, 다음날 저녁 조의금을 준비해 가지고 아내와 함께 문상을 갔습니다. 조문실 벽에 걸린 그의 영정을, 순량하고 온화하게 생긴 모습을 보자니 눈물이 핑 돌더군요. 불과 보름 남짓 사이에 내 당질며느리와 똑같은 처지가 되어버린 뽀식이 엄마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여서 섣불리 위로의 말을 할 수도 없더군요.
그런 판국에서도 어린 두 남매는 천지 분간 모르는 모습으로 장례식장 안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고….
왜 우리 사는 세상에는 이런 슬픈 일이 하많이 생기는지, 왜 이런저런 슬픔의 질곡 속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는지, 또 한번 괜한 의문에 사로잡히는 심정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호상도 많고, 호상 중의 호상도 많건만, 그 사이사이에 왜 이런 애상들이 생기는 것인지….
다음날부터 나는 저녁 무렵 백화산을 오르면서 바치는 '묵주기도' 중에 내 당질과 함께 뽀식이 아빠를 위해서도 기도를 합니다. 내가 뽀식이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밖에 없음을 절감하며…. 인간의 한계 속에서 그를 위해 기도라도 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올 추석에는 '합동위령미사' 예물봉투에 뽀식이 아빠 문제성 씨의 이름도 적어서 위령미사를 봉헌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11월 '위령성월'에는 내 당질과 함께 뽀식이 아빠를 위해서도 별도로 미사를 봉헌할 생각입니다.
42년의 생애 동안 남을 위해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며 살았을 것으로 믿어지는, 더없이 순량하고도 온화한 얼굴을 지녔던 그의 영혼도 하느님께서 잘 거두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비록 정식 세례나 대세를 받지 않고 죽은 영혼일지라도, 그를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을 나는 큰 다행으로 여깁니다. 하느님을 모른 채 믿지 않고 산 사람일지라도, 착한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는 믿습니다.
추석을 맞으면서 내가 요즘에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올 추석에는 애상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민족 대이동의 길에서, 귀성길과 귀경길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나는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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