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회담, 한일협정 재판 안돼"

16일 일제침략 피해자 ·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등록 2002.09.16 19:07수정 2002.09.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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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승욱


오는 17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하고, 김정일 위원장과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이 열림에 따라 이 회담의 진행과정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북·일 정상회담이 지난 65년 한·일협정과 같은 '빈 껍데기' 과거청산이 되지 않길 바라는 염원들이 쏟아졌다.

16일 오전 9시 10분, 대구 곽병원 지하강당에서는 대구경북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특히 이 자리에는 강제 종군위안부와 원폭피폭자, 그리고 사할린강제이주노동자 등 일제 침략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들이 직접 회견장을 찾아 다가오는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이번 북·일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북·일간의 과거 청산에 대한 부분들이 가시화 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이것이 과거 한·일협정과의 비교대상이 될 수 있어, 그 동안 졸속처리 된 한·일협정의 파기를 주장했던 한국 내 시민사회의 관심도 남다르다.

이날 대구여성회, 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 등 지역 40여 개 시민사회단체의 명의로 발표된 성명서를 통해 "북한은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과거사 청산에 대한 배상을 북·일 수교의 원칙으로 삼아왔다"면서 "그러나 북·일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간 청구권을 상호 포기하는 경제협력 방식의 과거사 배상이 합의돼 가고 있다는 언론의 전언에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우려는 청구권 포기와 경제협력 방식으로 체결한 한·일협정 체결에 따라 피해자들의 피해자 배상의 길이 막혀 있는 점과,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피해배상에 대한 부분을 보장받지 못하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는 북한이 남한의 65년 한·일회담의 결과를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아 이번 북·일회담에서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사죄, 그에 따른 정확한 배상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서는 "지난날 잘못 맺어진 한·일협정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피해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고통과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하루 속히 한일협정 재 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 ▲국가·개인에 대한 사죄 및 배상을 수교원칙으로 ▲한·일협정 전면 폐기, 재체결 협상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a 원폭피해자협회 대경지부 이호경 지부장

원폭피해자협회 대경지부 이호경 지부장 ⓒ 오마이뉴스 이승욱

한편 이날 기자회견이 있은 후 일제 침략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직접 발언대에 나서 이번 북·일 수교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 이호경 지부장은 "45년 원폭투하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났지만 전후 57년이 지나도록 피해배상과 사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 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보상이 있긴 했지만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들이 이 가운데 포함됐는지 아닌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이어 "북·일 회담에는 원칙적으로 환영의 뜻을 보내지만 과거 한·일협정 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a 강제종군위안부 이용수 할머니

강제종군위안부 이용수 할머니 ⓒ 오마이뉴스 이승욱

강제종군위안부 이용수 할머니도 "한·일협정의 당사자였던 김종필씨가 당시 한·일협정에 우리 강제종군위안부들의 문제를 거론했는지 확인하고, 또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반드시 이 (강제위안부)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이 부분은 반드시 김종필씨가 책임져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하고 있는 최봉태 변호사는 "현재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는 가운데 미·일 양국에 의해 국가 존립의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가운데 일본과의 협상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과거 한·일협정의 책임자인 김종필씨의 집 앞에서 오늘부터 태평양유족회분들이 시위를 시작하고 있다"면서 "비밀리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대해 김씨는 진상을 분명히 밝히고, 이제라도 이 사안과 관련해 한국정부가 재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일 정상회담, 한일간 거리 좁히는 계기로"

▲ 회견장에 참석한 일본 학생들.
이날 기자회견 도중 20여명의 일본인 학생들이 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은 일본 '아오야마 학원대학' 학생들로 매년 이 학교의 후지가와 히사아키 교수를 따라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이번 방문이 두 번째라는 아오야마 학원대학 오끼무라 케이스케(24)씨로부터 일본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북·일 정상회담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이다.

- 이번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 알고 있는가. 또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였나.
"뉴스를 통해 회담을 개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말해 일본 젊은이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또 북한과 일본의 정상들이 만난다는 것에 언론이 큰 의미를 두는 것에 놀라웠다."

- 한·일협정 등에 대해서 한국 내에서는 잘못된 협정이었다며 반발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자신들의 주장만 하지 서로의 의견에 경청하지는 않는 것 같다. 또 사과하는 쪽과 사과를 받는 쪽이 시선(시각)이 너무 다른 것 같다. 진정한 사과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의 시선을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 일본이 사과를 하는 쪽으로서 자세가 돼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 일본의 평범한 시민과는 달리 일본의 정치인들이 사과를 하는 쪽으로서 자세가 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 일본의 시민으로서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바람이 있는가.
"일본과 한국(북한)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너무나 먼 나라인 것 같다. 앞으로 북·일회담이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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