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주식매입,구조조정과 병행

등록 2002.09.20 05:16수정 2002.09.2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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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은행(Bank of Japan, 이하 BOJ)은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40조엔 규모의 주식 가운데 일부를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일본 중앙은행의 120여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돈 풀기에 인색했던 BOJ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으며, 그 영향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일본 경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거품이 붕괴되고 10년 이상 장기불황에 빠졌다. 그동안 1200조엔에 이르는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책과 금리가 거의 '영'(0)% 수준에 이르기까지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왔지만 일본 경제는 아직도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1999년 이후로는 물가 수준 자체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졌다.

이제 더 이상 마땅한 정책 수단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40%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었기에 재정을 더 늘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금리도 이미 영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여기다가 9월에 또 다시 금융위기설이 시장에 떠돌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BOJ가 돈을 찍어내 은행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이와 같은 통화공급 확대정책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우선 BOJ가 정치권의 요구를 들어줘 독립성을 상실하고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통화공급이 늘어나면 엔화가치가 하락하고 채권가격이 떨어져(채권 수익률 상승) 일본 은행들의 재무구조는 오히려 더 나빠진다는 것도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일본 은행들이 주식보다는 채권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사실상 '정부에 의한 주가 조작'으로까지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BOJ의 통화공급 확대와 더불어 정부의 구조조정이 병행된다면 일본 경제는 서서히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와 BOJ는 일본 경제의 회복을 위해 다른 정책 방향을 제시해왔다. 정부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에게 돈을 풀 것을 요구했다. 반면에 BOJ는 일본 경제가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돈을 풀어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고 정부가 우선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BOJ가 양보한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한 외신은 일본의 현 정부가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은 "사자를 초식동물로 만드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 까지 혹평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돈을 풀기로 한만큼 앞으로 정부도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2001년 말 현재 일본의 부실채권이 43조엔으로 GDP의 8%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20%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이런 부실채권을 정리할 것이다. 또한 부실이 심한 은행은 문을 닫을 가능성도 있다.


주식매수를 통한 통화공급 증대와 더불어 구조조정 정책이 병행한다면 일본 경제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통화가 늘어나면 디플레이션이 부분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이것은 소비와 기업의 실질 부채를 감소시켜 경기회복에 기여할 것이다.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비 부진이다. 이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17%에 이르는 등 노령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디플레이션도 소비 감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경제에서 소비자는 소비를 미루게 된다. 오늘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내일 사는 것이 더 싸기 때문이다.


이제 통화 공급 확대로 인플레 기대 심리가 살아난다면 일본 가계는 소비지출을 늘리게 될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은 기업의 실질부채를 감소시켜 결국은 기업의 투자 증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이 단지 통화공급 확대로 대응한다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구조조정이 병행된다면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에서 서서히 벗어날 것이다. 후자에 더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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