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후보에게 자전거 경품을 강요말라

신문업계 현실을 통해 본 정치권의 현실

등록 2002.09.25 15:10수정 2002.09.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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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권력을 향한 무한경쟁시대로 질주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라는 이 쌍두마차는 나름대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해 경쟁에 몰두하는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점은 전혀 다르다.

이른바, '밤의 대통령'과 '낮의 대통령'.

대개의 경쟁이 그러하듯, 분위기가 고조되고 열기가 달아오르는데 승패는 가누기 어렵고 결승점만 가까워온다면 과열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전개되는 숱한 반칙과 불법은 일상화되고 오로지 승패의 결과만이 지상최대의 과제가 된다.

'자전거 경품'으로 대비되는 신문사들간의 판촉 경쟁이나 '후보단일화'라는 점잖은 문구로 대표되는 정권 창출 경쟁이 그렇다. 다른 듯 같게 펼쳐지는 이 두 가지 무한경쟁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권력'이라는 것을 그저 우연이라고만 해야할지.

이들 경쟁의 구체적인 목표를 말하자면, 신문의 경우 내달 8일 발표될 한국발행부수인증협회(ABC 협회)의 보고서에 반영될 자사의 발행 및 유가부수를 최대한 늘려 잡기 위한 것이고, 정치의 경우 연말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잡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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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화 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노무현은 세가지 ' 덧셈론 ' 이 필요"

우연히 같은 날짜(24일)에 실린 두 개의 인터넷 신문기사 - <인터넷 한겨레>에 실린 강준만 교수의 언론비평 "조·중·동의 '제 무덤 파기'"와 <오마이뉴스>에 실린 김영환 의원의 인터뷰 "단일화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노무현은 세 가지 '덧셈론'이 필요" - 를 보며 두 가지 사안의 논리구조가 얼마나 유사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 듯 보이지만, 그들 모두 지향하는 바는 1등이다. 강 교수는 신문사간의 지나친 경품공세의 원인으로 '조·중·동의 1등주의 전략'을 꼽았다는 어느 신문사 지국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하나만 살아남는다. 2, 3등 해봤자 소용없다"는 주문을 소개했고, 김 의원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필수적"이라면서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1등을 목표로 하는 것이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이 정권창출을 목표로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목표 자체가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한 경쟁의 과정이 적법한가 혹은 공정한가의 여부이다. 경쟁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등장하는 '게임의 법칙'이라는 말 역시 두 분야 모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공통어가 아닐까 싶다.

김 의원이 주장하는 '단일화론'이 가지는 맹점이 무엇인지 혹은 정몽준 의원이 그렇게 쉽게 노무현 의원과 같은 이념적 동질성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길게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가 속한 정당이 200만명의 국민을 동원해 그들이 말하는 '국민후보'를 뽑았다는 점만 상기하기로 하자.


강 교수의 견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논외로 하자면, 그가 지적하고 있는 신문에 대한 비평은 단어만 바꾸어 정치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설사 어느 신문이 1등을 한다 해도 경품이나 밝히는 독자들의 타락은 부메랑이 되어 그 신문의 기반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는 말은 "설사 어느 후보가 1등을 한다해도 지역이나 밝히는 표의 타락은 부메랑이 되어 그 정권의 기반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 것"으로 곧장 치환될 수 있다.

이외에도 "인터넷(정치) 혁명 시대에 신문(대통령 후보)이 살아남는 길 가운데 하나는 신문(후보) 고유의 품위와 권위를 지키는 것이다"라거나 "나라 전체의 관점에선 경품전쟁(후보단일화론)으로 인해 여론이 사실상 매수되는 결과를 초래해 민주주의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떤가?

너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김영환 의원이 주장하는 이른바 '후보 단일화'론은 '정권창출 지상주의'에 입각한 합리적인 주장일까? '조·중·동'이 시장 장악을 위해 고가의 자전거를 주면서까지 판촉전쟁을 벌이는 것과 대선후보가 정권 획득을 위해 자기가 가진 정체성 다 버리고 '외연 확장'하는 것의 귀결이 어디인지는 그의 말처럼 '명약관화'하지 않을까 싶다.

90년대 중반 이후 무차별 경품 공세를 겸한 신문사들간의 판촉 경쟁이나, 3당합당이나 DJP연합을 통한 '덧셈의 정치'는 신물나게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 결과 발생한 신문 배달원간의 칼부림 살인사건이나 정치의 퇴행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묻어두어도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차별 경품지원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재벌신문의 총수가 신문재벌들에게 '과열경쟁 중단'을 주장했는데 누군들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밤의 대통령을 향해 뛰는 신문도 "자전거 주고 1등하는 신문"을 사양하는 마당에, 낮의 대통령을 지향하는 정치가 후보에게 자전거 경품을 제공하라고 권해서야 될 말인가.

앞서 언급한 강 교수의 글 뒷부분에는 어느 신문 지국장이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이 지국장의 호소에 노무현의 속마음이 어우러져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물건에 연연해하지 말라. 법도, 신문협회도, 본사도 믿을 수 없어 독자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고가 사은품을 줄 수도, 무가지를 몇 개월씩 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제발 읽고 싶은 신문을 순수하게 봐달라."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한겨레>에 실린 기사 원문  2002. 9. 24

조·중·동의 '제 무덤 파기'
 
“요즘 독자들은 `1년짜리’ 신문을 본다. 1년 의무구독을 마치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경품을 좇아 신문을 바꾸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물건 바꾸는 재미로 신문을 보니까 지국들도 물건으로 유혹하는 일에 더 열성적이다. …지나친 경품 공세가 `자기살 파먹는 꼴’이 된다는 걸 잘아는 지국장들. 왜 그들은 경품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한 신문 산본지국장은 근본원인으로 조·중·동의 `1등주의’ 전략을 꼽았다.” 

<미디어오늘> 7월11일치에 실린 “파괴되는 신문시장…전국 주요 도시 경품공세 실태-`자전거’ 태풍에 신문시장 초토화”라는 제목의 기사는 위와 같이 말하고 있다. 9월 현재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가 조·중·동의 `경품전쟁’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요 시민단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걸 보더라도 그렇다. 아니 조·중·동조차도 `경품전쟁’이 자기들이 누울 무덤을 파는 짓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우선 그것부터 알려드려야겠다. 

조·중·동은 “하나만 살아남는다. 2, 3등 해봤자 소용없다”는 주문을 외워대면서 지국장들에게 `경품전쟁’을 강요하고 있다. 평화공존이 아니라, 너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식이다. 요즘 조폭들도 하지 않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싸움이다. 

가장 어리석은 점은 그들의 싸움이 독자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설사 어느 신문이 1등을 한다 해도 경품이나 밝히는 독자들의 타락은 부메랑이 되어 그 신문의 기반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경품에 눈이 어두워 신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신문을 `활자가 박힌 화장지’ 정도로 간주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즉, 신문 스스로 신문을 `정신 상품’이 아니라 `공산품’으로 여기게끔 독자들을 훈련시키고 있으니 이 어찌 혀를 끌끌 찰 일이 아니랴. 

인터넷 혁명 시대에 신문이 살아남는 길 가운데 하나는 신문 고유의 품위와 권위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스스로 품위와 권위를 내던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만 죽는다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신문 전체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게 되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만약 조·중·동이 지금처럼 `경품전쟁’을 계속한다면, 곧 전국을 대상으로 수백만부를 찍어내는 본격적인 무가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조·중·동이 앞장서서 신문 브랜드보다는 경품이나 공짜 구독 혜택으로 신문을 선택하게끔 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고착시킨 덕에 그런 무가지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라 전체의 관점에선 `경품전쟁’으로 인해 여론이 사실상 매수되는 결과를 초래해 민주주의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매우 두렵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능과 신문협회의 불감증을 공박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모든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야 할 중대사다. 

어느 신문 지국장이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은 이 나라 여론 민주주의의 근본이 썩어가고 있다는 걸 시사해주고 있다. 

“물건에 연연해하지 말라. 법도, 신문협회도, 본사도 믿을 수 없어 독자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고가 사은품을 줄 수도, 무가지를 몇개월씩 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제발 읽고 싶은 신문을 순수하게 봐달라.” 

읽고 싶은 신문을 순수하게 봐주지 않는 독자들, 읽고 싶은 신문이 없을 정도로 세상을 등지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의 작은 이익에만 집착하는 독자들을 만들어내는 조·중·동의 `제 무덤 파기’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덧붙이는 글 <인터넷 한겨레>에 실린 기사 원문  2002. 9. 24

조·중·동의 '제 무덤 파기'
 
“요즘 독자들은 `1년짜리’ 신문을 본다. 1년 의무구독을 마치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경품을 좇아 신문을 바꾸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물건 바꾸는 재미로 신문을 보니까 지국들도 물건으로 유혹하는 일에 더 열성적이다. …지나친 경품 공세가 `자기살 파먹는 꼴’이 된다는 걸 잘아는 지국장들. 왜 그들은 경품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한 신문 산본지국장은 근본원인으로 조·중·동의 `1등주의’ 전략을 꼽았다.” 

<미디어오늘> 7월11일치에 실린 “파괴되는 신문시장…전국 주요 도시 경품공세 실태-`자전거’ 태풍에 신문시장 초토화”라는 제목의 기사는 위와 같이 말하고 있다. 9월 현재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가 조·중·동의 `경품전쟁’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요 시민단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걸 보더라도 그렇다. 아니 조·중·동조차도 `경품전쟁’이 자기들이 누울 무덤을 파는 짓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우선 그것부터 알려드려야겠다. 

조·중·동은 “하나만 살아남는다. 2, 3등 해봤자 소용없다”는 주문을 외워대면서 지국장들에게 `경품전쟁’을 강요하고 있다. 평화공존이 아니라, 너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식이다. 요즘 조폭들도 하지 않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싸움이다. 

가장 어리석은 점은 그들의 싸움이 독자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설사 어느 신문이 1등을 한다 해도 경품이나 밝히는 독자들의 타락은 부메랑이 되어 그 신문의 기반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경품에 눈이 어두워 신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신문을 `활자가 박힌 화장지’ 정도로 간주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즉, 신문 스스로 신문을 `정신 상품’이 아니라 `공산품’으로 여기게끔 독자들을 훈련시키고 있으니 이 어찌 혀를 끌끌 찰 일이 아니랴. 

인터넷 혁명 시대에 신문이 살아남는 길 가운데 하나는 신문 고유의 품위와 권위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스스로 품위와 권위를 내던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만 죽는다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신문 전체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게 되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만약 조·중·동이 지금처럼 `경품전쟁’을 계속한다면, 곧 전국을 대상으로 수백만부를 찍어내는 본격적인 무가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조·중·동이 앞장서서 신문 브랜드보다는 경품이나 공짜 구독 혜택으로 신문을 선택하게끔 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고착시킨 덕에 그런 무가지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라 전체의 관점에선 `경품전쟁’으로 인해 여론이 사실상 매수되는 결과를 초래해 민주주의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매우 두렵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능과 신문협회의 불감증을 공박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모든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야 할 중대사다. 

어느 신문 지국장이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은 이 나라 여론 민주주의의 근본이 썩어가고 있다는 걸 시사해주고 있다. 

“물건에 연연해하지 말라. 법도, 신문협회도, 본사도 믿을 수 없어 독자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고가 사은품을 줄 수도, 무가지를 몇개월씩 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제발 읽고 싶은 신문을 순수하게 봐달라.” 

읽고 싶은 신문을 순수하게 봐주지 않는 독자들, 읽고 싶은 신문이 없을 정도로 세상을 등지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의 작은 이익에만 집착하는 독자들을 만들어내는 조·중·동의 `제 무덤 파기’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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