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만이 유일하게 한반도의 운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반도에는 두 가지 기운이 격돌의 조짐을 보이면서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그 엇갈림의 한 복판에는 전쟁과 평화, 야만과 문명, 죽음과 생명, 단절과 교류, 패권과 자주, 적대와 협력이라는 도저히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대칭축이 현실을 날카롭게 가르고 있다. 이 가운데 어떤 기운이 장차 역사적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인가에 따라 우리 겨레의 살림살이는 물론이거니와, 동북아 전체의 장래가 판결 나게 되어 있다.
최근의 정세 변화에서 특별하게 주목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공동체적 성격을 확정해 가는 노력들이 잇달아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생활권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그 내적 역량의 규모나 강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포함하고 있다. 내용 면에서 봐도, 실로 전례 없는 전환기적 파장을 불러일으킬만 하다.
경의선, 동해선 연결과 비무장 지대 지뢰제거 등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이 보이고 있는 각종 분단 경계선 돌파는 물론이요, 북한과 러시아, 북한과 일본의 선택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활력을 새롭게 소생시켜나가는 작업에 중차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 틀림없다.
유럽까지 뻗어갈 시베리아 철도와의 연계를 비롯, 동북아시아 내부의 역사적 갈등 해소 등으로 더 이상 동북아시아 내에 상호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을 장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화교출신의 인물을 자치기능을 감당할 수반인 행정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신의주 특구에 대한 파격적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과 그 실천의 현실은 한반도의 변화 추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한반도의 안전보장에 긍정적인 추가 요인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특성은 <생산적, 건설적, 평화적 연관 고리 만들기>이다. 그 동안 각기 분절되어 있는 생활권의 결합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장래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가는 활로를 뚫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당연히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가게 되어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침략적 전쟁정책의 성격은 이러한 연관 고리 만들기를 훼손하고 과거의 분절상태로 돌이키면서 <파괴적, 소모적, 적대적 지배장치의 군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움직임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량 성장을 억제하고 분할통치하면서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것에 그 목표가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앞의 것은 미래적 대세의 힘을 가진 반면, 뒤의 것은 퇴행적 반동의 기류인 것을 직시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 선택의 향방은 분명해진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길
문제는 퇴행적 반동의 기류를 저지하기에 요구되는 내부의 역량과 의지가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정책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대결의 응집력이 확고하지 않다는데서 비롯된다. 이른바 <한-미 공조>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는 우리의 대미종속 구조는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질서에서 한반도가 풀려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특히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과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사대주의 세력들이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정책을 적극 추종 내지 이에 투항하면서 내부의 '탈 분단 통일 역량'을 교란,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역사발전의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령, 지난 9월 23일자 <한반도 전환기에 DJ가 할 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한국, 일본, 러시아의 대북 정책을 "김정일 달래기"로 규정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압박 정책을 "미국이 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이른 시일 내에 한-미-일 공동이익의 틀 안에서 조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내용 전개가 논리적으로도 엉망일 뿐만 아니라, 주장하는 바도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화가 지향하고 있는 바를 "김정일 달래기" 운운이라는 정도의 유치한 식견으로 보는데다가 민족적 입장이라고는 전혀 없는 대미 추종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에 대한 한-미간의 조율성과가 지금껏 아무 것도 없다"면서 "김대중 정부의 대미 외교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공박한 뒤, 결국 조선일보가 언제나 그렇게 강조하듯이 왜 미국의 입장에 맞추지 않느냐는 식으로 다그친다.
"김대중 정부가 한-미간의 불신을 해소하려면"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이 사설은 그 이른바 불신의 정체가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정책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일체 거론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의 책임이 거론되어야 하는 국가간 외교적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지배의 문제라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민족분열적 식견, 노선, 입장에 서 있는 세력들의 집권을 허용하게 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지극한 수치이자 엄중한 역사적 문책이 뒤따를 민족사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의도'는 절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