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시민이 있습니까"

[시민운동 대회에서 생긴 일 ③]홍세화씨의 도발적 문제제기

등록 2002.09.28 18:55수정 2002.09.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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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에서는 전국의 시민운동가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박2일 동안 '제2회 전국 시민운동가 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대회는 '시민운동의 소통과 통합'이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시민운동의 대선 대응 방안, 소통문제, 비영리 마케팅 문제 등을 둘러싸고 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이번 시민운동가 대회를 4회에 걸쳐 쟁점별로 연재하고 있다. 이 기사는 그 세번째이다...편집자 주

a 25일 '제2차 시민운동가대회' 강사로 초청된 홍세화씨가 '시민운동, 소통과 통합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25일 '제2차 시민운동가대회' 강사로 초청된 홍세화씨가 '시민운동, 소통과 통합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 임경환

지난 25일 '제2회 전국 시민운동가대회'의 강사로 초청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단상에 오르자마자 시민운동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국 사회에 시민이 있습니까?"

강연을 열심히 경청하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던 시민운동가들은 느닷없는 질문에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청중의 반응을 살피던 홍 기획의원은 몇 초가 흐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사회에 대중은 있지만 시민은 없다.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사람'이 '그사람'이다. 시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없다."

이 말은 시민단체가 시민을 양성하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이자, 우리나라 시민의식의 후진성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시민운동가 뿐만 아니라 '시민'에게도 가해져야 한다는 간접적 표현이다.


그는 이어 시민단체들이 한국사회 내에 시민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는 언론과 교육을 개혁 대상으로 삼고 공동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강의를 계속 이어갔다.

먼저 홍 기획의원은 한국 사회에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 근거로 프랑스와 한국 사회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사례를 제시했다.

"프랑스에는 판사 노조가 있다. 경찰에게도 단체 행동권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수갑을 차고 있을 때만 판사와 만날 수 있다."


"프랑스에는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신고하는 전화번호(114)가 긴급전화 번호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간첩신고 전화번호 113이 긴급전화 번호로 지정돼 있다."

"시민운동의 '정치 중립'은 허구
자기색 드러내지 못해 안타깝다"
[토막 인터뷰] 홍세화의 눈에 비친 시민운동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김지은
이날 홍세화씨는 특유의 침착한 어조로 차분하게 때로는 강하게 강의해나갔다. 강의에 나서면 빠뜨리지 않고 하는 '똘레랑스(용인, 보통 '관용'으로 번역되지만 홍 위원은 이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용인'으로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한다)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강의 후에는 그의 조언을 듣고자하는 몇몇 활동가들이 줄을 서 기다리기도 했다. 홍 위원은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오후 8시가 다되도록 강의한 피곤함도 잊은 채 그들의 얘기를 하나하나 들어주는 따뜻함을 보였다.

홍 위원은 강의 후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바라본 시민운동에 대한 의견을 좀더 분명히 피력했다. 그것은 "현재의 시민운동이 정작 해야할 운동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시민운동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구에 매달려 분명한 자기 색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 시민운동이 해야할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성·환경·인권 등 시민단체 개별의 부문운동은 접고 얘기하겠다. 현재의 시민운동은 '공통분모'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강의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공화국) 시민이 없다. 시민의식이 극히 떨어진다는 얘기다.

시민을 만드는 운동이 바로 시민운동이다. 이 부분에 시민단체들이 공통으로 힘을 기울여야한다. 즉, 언론과 교육 분야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그 부분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애당초 (정치적 중립성은) 신화다. 허구란 얘기다. '탈정치'가 정치의 하나이듯 '정치적 중립성'이란 말은 일종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사회 구성원의 의식과도 관련돼 있을 것이다. 시민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시민단체들이 언제나 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 프랑스는 어떠한가.
"프랑스는 각 정당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다. 그러니 '정치적 중립성'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 이미 '좌·우'는 정해져 있고 지지율 5%에 따라 집권정당이 바뀐다.

또한 시민의식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선 1차, 2차 투표 때 투표율이 80%가 넘는다. 우리처럼 따로 투표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는 것도 아니고 일요일에 하는데도 말이다."

- 현재의 시민운동이 개선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언론, 예를 들면 '안티조선운동'이나 교육 등 공통의 운동을 기본적으로 하고 각각의 부문운동을 해야한다고 본다. 정작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간과하고 너무 정치적인 것에 매달려 있다." / 김지은 기자
한국사회와 프랑스 사회가 이처럼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공화국'이라는 개념이 실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홍 기획의원은 설명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사적이익'에 의해 움직여 왔기 때문에 '공익성'과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자리잡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국가 운영원리가 공익성에 기반하지 않고 '사적이익'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교육 분야.

"프랑스는 개인의 창조성 향상을 목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교육비를 부담하는데, 우리의 경우 국가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교육받으면서도 개인이 교육비를 부담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 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공화국 시민'이 육성되지 못한 것은 사익 추구집단들이 언론과 교육을 독점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홍 기획위원의 설명이다.

"국민들에게 시민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해야할 교육이나 언론이 자신의 의무를 배반하고 시민의식 성숙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만 전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 때 전교조 선생님이나 대학 때 동아리 선배들을 만나야 시민교육을 접할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노동자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게 됐고,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조건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 돼 버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지식을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중매체의 주류가 수구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이 꽤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즉 홍 기획위원은 "국민들은 교육과 언론이 만들어놓은 '폐쇄회로'에 갇혀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을 이 '폐쇄회로'에서 구출해 내지 못하면 시민운동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홍 기획위원은 이어 "시민단체들이 국민들의 의식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 '폐쇄회로'를 깨뜨리지 않으면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힘들 것"이라며 "시민단체들은 교육과 언론 개혁 문제를 공통분모로 삼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진정한 공화국이 아니다"
홍세화씨 강연 내용 요약

▲ 300여명의 시민운동가들은 홍세화씨의 강연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시민운동, 소통과 통합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한국 사회에 시민이 있습니까? 한국사회에는 대중은 있으나 시민은 없습니다.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사람이 그사람에 불과할 정도로 '자각된 시민'층이 얇습니다.

한국 사회에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프랑스 사회와 비교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지난번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체포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한 노조 대표가 프랑스 판사 노조위원장을 만나 "우리가 판사와 만나는 경우는 수갑을 차고 있을 때 뿐"이라는 말을 건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숭에 그 내용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와 한국 사회가 매우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판사도 노동자라는 인식은 당연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경찰에게 단체행동권이 주어져 있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병원·발전소 등 필수공익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파업의 자유도 없는 우리 나라와 뚜렷하게 대조되는 나라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나라는 사회정의가 압살된 나라입니다. 오늘도 병원의료노조 지도부 30여명은 명동성당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나라에는 간첩신고 전화번호 113이 긴급전화 번호로 지정돼 있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국내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신고할 수 있는 전화번호 114번이 긴급전화 번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두 사례가 한국 사회에 아직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진정한 공화국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공교육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사회로 유명합니다.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였던 저도 그 덕에 두 아이 모두 대학까지 공부를 시킬 수 있었습니다. 국가주의·반공 이데올로기를 학습하면서 교육비를 개인이 부담하고 있는 우리 나라와 비교됩니다.

프랑스 사회가 이같은 정책을 펴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공화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공화국이라는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공화국은 아닙니다. 공화국이란 사회가 공익성과 공공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들이 권력을 잡음으로써 진정한 공화국은 성립되지 않았으며, 공화국 시민이 형성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교육제도나 언론이 공화국 시민을 길러내는 역할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해 왔습니다. 자기가 처해있는 사회조건을 인식하게 하는 내용이 아니라 이와 전혀 무관한 것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시민교육은 학교 교육과 언론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전교조 선생님이나 대학 때 동아리 선배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한국사회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고 자신의 사회적 조건을 인식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중문화를 아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무지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조중동>을 읽으면서 자신들이 꽤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 생활에 공고히 퍼져 있는 폐쇄 회로를 어떻게 깰 것인가에 운동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시민운동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 시민을 양성하는 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언론 개혁문제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언론과 교육개혁 문제를 공통분모로 삼고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시민운동가들에게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설정에 관한 문제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부문 운동들을 전개시켜 나갈 때 환경문제를 바탕에 깔아놓았으면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을 더 이상 파괴시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원시공동체 사회원리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덫에서 벗어나라

마지막으로 일상의 덫에서 벗어나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파리에서 시민운동가들을 만나면 항상 "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이 "내부의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대답합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관들이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시민단체에서 내부의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소한 감정에 동지적 관계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것이 일상의 덫이라고 부릅니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감정에 의해 가치관의 세계가 실종되는 것을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강의에 덧붙여

홍세화씨는 강의 마지막에 똘레랑스 얘기를 덧붙였다.

"똘레랑스(용인)는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말로는 참 쉬워보입니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상이 다른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앙이 다름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신의 다름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똘레랑스가 부족합니다.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시비를 걸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감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죽어서 누울 자리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도 태어나는 곳을 선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곳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바로 지역감정이고, 이것은 똘레랑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이것을 이용해 선거 국면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 정치인들은 아주 낮은 단계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을 하면서 항상 똘레랑스의 정신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강연을 마쳤다.
/ 임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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