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꿀밤 투둑 투둑 떨어지는 가을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12> 꿀밤

등록 2002.10.01 16:20수정 2002.10.0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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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갈색으로 익어가는 도토리

갈색으로 익어가는 도토리 ⓒ 이종찬

우리 마을은 대략 60여 가구가 말 그대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우리 마을의 이름은 '동산'이었다. 우리 마을이 그렇게 불리게 된 데는 아마도 마을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작은 동산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동산 마루에는 큰 바위가 하나 마산 쪽의 하늘을 바라보며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 바위를 장군바위라고 불렀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 장군바위가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여겼고, 우리들 또한 누구나 그렇게 믿었다.

우리 마을 앞에는 손을 담그면 언제나 손끝이 싸하게 시려운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랑을 막고 있는 높은 둑에는 갸녀린 대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둑에 마치 그 갸녀린 대나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백 년도 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굴참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래, 그 굴참나무. 아니, 우리는 그 굴참나무를 꿀밤나무라고 불렀다. 그래, 바로 그 꿀밤나무. 그 꿀밤나무가 동산 마루에 우뚝 솟아있는 그 장군바위와 함께 우리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말하자면 쌍벽을 이루고 있는 셈이었다.

그 꿀밤나무 아래에는 늘 평상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대나무로 짜여진 그 평상은 늘 반들반들 빛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평상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또한 그 평상은 우리 마을 어르신들의 한결 같은 쉼터이자, 우리들의 한결같은 놀이터였다.

그래. 해마다 이맘때, 그러니까 시월이 다가오면 그 꿀밤나무에는 마치 작은 밤송이 같은 갈색 꿀밤이 투둑, 투둑, 투두둑 떨어졌다. 또한 우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꿀밤을 머리와 이마에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 꿀밤은 분이가 사는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노랗게 박힌 탱자와 더불어 우리 마을의 가을을 상징하는 열매였다.

a 나무에 매달린 도토리

나무에 매달린 도토리 ⓒ 이종찬


그래. 꿀밤 하니까 그 우스운 일이 생각난다. 그랬다. 당시 분이는 우리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릴 수가 없었다. 분이 부모가 분이를 너무나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좀 얄궂은 짓도 곧잘하는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일은 어쩌면 그래서 빚어진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야야, 저기 분이도 꿀밤 좀 주뿌라."
"???"
"어서 주라카이."
"옴마야아~"

어머니께서 덕석에 말리고 있는 갈색 꿀밤을 신기하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분이가 갑자기 울상이 되면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긴 생머리를 가을바람에 나폴나폴 날리며 탱자나무 울타리 속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오랜만에 만난 분이... 꿀밤을 건네며 슬쩍 따스한 체온이라도 한 번 느껴보고 싶었던 그 분이... 늘 동화 속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피부가 몹시 하얗던 그 분이... 아무도 몰래 나 혼자서만 알고 지내고 싶었던 그 분이는 그렇게 달팽이처럼 쏘옥 숨어버린 것이다. 마치 탱자 울타리 가시 속에 숨어있는 그 노오란 탱자처럼 그렇게.

그랬다. 아마도 분이는 특별한 부모 아래서 표준어만 쓴답시고 꿀밤을 도토리라고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당시 분이가 알고 있는 꿀밤은 어른들이 아이를 혼낼 때 머리를 몇 번 쥐어박는 그런 것이 꿀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입술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그렇게 달아날 수밖에.

그 꿀밤나무 덕분에 우리 마을에서는 꿀밤이 너무나 흔했다. 그랬다. 꿀밤도 몇 년에 한 번씩 흉년을 맞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몇 년째 계속해서 꿀밤 풍년이 들었다. 또한 꿀밤은 우리들의 훌륭한 노리개였다. 우리는 누구나 꿀밤을 한 주머니 볼록하게 넣고 다니며 구슬치기도 하고, 꿀밤에 못을 박아 팽이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또한 일부러 꿀밤을 딸 필요가 없었다. 마을 아이들이 하루종일 마치 꿀밤 씨를 말리듯 주워가도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또 다시 수천 개의 갈색 꿀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꿀밤나무 덕분에 우리는 해마다 가을이 오면 맛있는 꿀밤묵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어머니께서 묵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주워온 꿀밤을 덕석에 펴서 며칠간 꿀밤색이 온통 갈색으로 바뀔 때까지 말린 뒤, 도구통(절구통)에 넣어 꿀밤 껍질을 깠다. 그리고 며칠간 맑은 물에 넣어 떫은 맛을 제거했다. 그리고 맷돌에 갈아 물을 부어 소금으로 간한 뒤 소죽을 끓이는 가마솥에 삶아 그대로 식히면 그만이었다.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어느 집에서 꿀밤묵을 하게 되면 누구나 골고루 돌렸다. 그날도 나는 그 맛있는 꿀밤묵을 들고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있는 분이네 집으로 갔다. 그런데 꿀밤묵을 받으시는 분이 어머니가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았다. 순간 이상한 기운이 흘렀다.

"아야!"
"요녀석! 요게 도토리가 아이라 꿀밤이다. 요녀석!"
"아야!"
"요녀석! 니가 우리 분이한테 꿀밤을 먹으라고 가져왔으니, 니도 꿀밤을 먹어야할 것 아니냐. 요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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