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등에 업혀 돌아오던 샛대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13> 샛대

등록 2002.10.02 11:10수정 2002.10.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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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억새

억새 ⓒ 이종찬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그래. 누가 억새를 가리켜 으악새라고 처음 이름을 붙였는가? 시월의 산과 들판 곳곳에 금빛, 자주빛 구슬을 굴리며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는 아버지꽃, 억새. 그래. 저 억새만 바라보면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그 커다란 나뭇짐이 보인다.

저녁 어스름을 밟으며, 어른 키 두 배 정도만한 억새를 한짐 지고 신작로를 지나 노을처럼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 그래, 그 당시에는 억새가 너무나 귀했다. 너도 나도 억새를 가장 좋은 땔감으로 삼았던 시절, 싸리비 같이 단단하고 질좋은 그 억새는 큰 산을 하나 넘어가야만 구할 수 있었다.

"니 으악새란 새를 본 적 있나?"
"으악새? 그런 새도 있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등~신!"
"???"
"으악새를 손에 들고도 으악새를 모른다고 하니..."
"그으래! 그럼 이 샛대 보고 으악새라 카는기가?"

샛대... 그랬다. 우리는 억새를 '샛대'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샛대는 지금처럼 들판 곳곳에 흔하게 피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 샛대는 꽃을 피우자마자 부지런한 농민들의 낫에 가지런히 베여졌다. 그리고 2-3일 정도 마르고 나면 그 샛대가 자라난 논 주인의 부엌으로 곧 자리를 옮겼다.

그래, 저 샛대를 바라보면 늘 숯덩이처럼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이... 아버지의 목에 건 축축한 수건에서 나는 아버지의 그 짭쪼롬한 땀 내음... 수염 꺼칠한 아버지께서 꿀꺽꿀꺽 삼키던 그 달콤한 내음의 그 소주... 그리고 얼굴 가득 된장을 뒤집어 쓴 채 아버지의 입 속으로 들어가던 그 메콤한 풋고추가 떠오른다.

그래, 지난 토요일은 장모님 회갑이었다. 하지만 장모님께서는 식구들끼리 간단히 모여 저녁이나 먹자고 하셨다. 요즈음처럼 좋은 세상에, 회갑을 맞은 것이 그리 큰 잔치를 벌일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장모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중풍끼가 있어서 한쪽 손발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명절이 되어도 절 받는 것을 꺼리셨다. 몸이 아픈 사람은 절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하긴, 몸이 아픈 사람한테 절을 한다는 것은 곧 죽으라는 뜻이 아닌가.

그날, 나는 맏사위로서 장모님의 조촐한 회갑 잔치, 즉 식구들끼리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장모님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사돈은 어떠신가"라며 아버지 안부부터 물으셨다. 나는 웃으며 "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아침, 나는 직장이 있는 경주로 오는 시외버스를 탔다. 그날따라 양산 근처에서 차가 심하게 막혔다. 정상운행 상태라면 경주 도착이 11시 10분경이었다. 그런데 버스는 11시 10분이 되어도 겨우 울산 언양 근처에 도착했다.

"지금 어디 있소?"
"경주로 올라가고 있지요."
"아버지가 위독하니, 지금 빨리 부산대학병원으로 오소."
"예에?"
"분명히 알려줬소이."
"알았습니다."

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 그랬다. 그날 버스는 초조한 내 마음을 시기라도 하는 듯 11시 30분이 훨씬 지나서야 경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직장에 전화부터 한 뒤 다시 부산으로 가는 직행버스에 올랐다.

그랬다. 나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어머니의 운명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나는 서울에 살았던 관계로, 5시간 남짓 걸려 창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너무나 늦었다.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께서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나를 기다리시다가 마악 10분 전에 운명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눈을 감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너가 니 에미 눈을 감겨드려라"라고 하셨다. 나는 반쯤 뜬 눈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눈, 그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 감겨드렸다. 불효자가 따로 없었다.

그래, 이제는 그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고 한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지 버스는 막힘없이 씽씽씽 달렸다. 들판에는 그 샛대, 아버지가 한짐 지고 오시던 그 샛대가 금빛, 자주빛 눈빛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1시간 가량 걸리는 부산까지의 시간을 15분 정도 단축, 약 45분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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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다시 지하철을 타고 40여분 남짓 걸려 부산대학병원에 도착했다. 가족들 모두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반겼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제일 꼴찌로 병원에 도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일단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휴우~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병명은 심장 결석이었다. 혈관에 결석이 있어 피가 역류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피가 간으로 솟구쳤으나, 병원에 빨리 모시고 온 관계로 다행히 위에까지는 침범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피가 위에까지 침범하면 패혈증으로 곧바로 죽는다고 했다. 일단 일주일 정도 경과를 지켜본 뒤 퇴원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난 뒤(혈관이 확장되는 기간) 결석 수술을 한다고 했다. 그때도 조금 고비라고 했다. 아버지는 일반 환자와는 달리 치매가 있기 때문에 조금 그렇다고 했다.

아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 그렇게 고된 삶을 지금 놓아서는 아니됩니다. 비록 치매에 걸려 있지만 좀더 오래 사셔야 합니다. 지금도 마구 피어나고 있는 저 금빛, 보랏빛 샛대가 아버지의 숨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정녕 보이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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