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만평> 신경무 화백께 드리는 글

등록 2002.10.14 05:30수정 2002.10.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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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조선일보>의 독자인 동시에 <오마이뉴스>에 가끔 글을 기고하는 강인규 기자입니다. 여기서 "독자"란 말은 제가 그 신문을 매일 읽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는 귀사의 신문을 돈을 내고 구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건 만원 남짓하는 구독료가 아까워서도 아니고,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언론사에 제 작은 돈의 일부를 보태는 것이 배가 아파서도 아닙니다. 돈 한 푼이 아쉬운 유학생인 저는 그 돈으로 <조선일보>를 보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선일보>에 구독료를 내고 있지도 않고, 또 <조선일보>가 가장 좋아하는 신문도 아니지만, 저는 분명히 그 신문의 독자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여러 신문들과 함께 <조선일보>를 읽고 있습니다. 저의 인터넷 접속이 <디지탈 조선>의 '방문 독자수'에 지속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에서도 제가 독자의 칭호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사실 저의 인터넷 구독이 <디지탈 조선>의 광고 단가를 올리고 있고, 제가 기사와 함께 읽어준 광고에 대해 귀사가 광고주로부터 돈을 받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제가 무료로 읽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신경무 화백께서 연재하고 있는 <조선만평>은 제가 <조선일보>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란입니다. 저의 이런 관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저는 대중매체를 공부하고 있는 언론학도입니다. 실제로 저는 언론사의 소유구조와 시장지배가 보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면서 <조선일보>를 주제로 몇 편의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인터넷 매체에 한동안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던 아마추어 만화가이기도 합니다.

필자의 만평
필자의 만평강인규
비록 어설픈 수준이기는 하지만, 저 역시 만평을 연재하면서 만평가의 고뇌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신문과 잡지를 끼고 살면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물론,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도 눈과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건과 이슈 가운데서 단 하나를 선택해 그 문제의식을 가장 재치있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려내야하지요. 보통의 부지런함과 감수성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문에서 "수문지키기(gate keeping)"나 "의제설정(agenda setting)"으로 대표되는 언론의 기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곳이 있다면 바로 만평일 것입니다. 독자들이 신문을 펴자마자 가장 먼저 눈을 가져가는 곳이 바로 만평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이슈를 발견하고 때로는 박장대소하고 때로는 눈물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제가 이 매력적인 일을 오래 하지 못한 것은 제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손바닥 반만한 공간에 세상을 담아낼 만한 지혜와 노력이 제게는 부족했던 것이지요. 만평을 그리는 일은 부르튼 발과 상처난 가슴이라는 엄청난 노동강도를 제게 요구했습니다.

신문의 만평란은 일종의 '해방구'이기도 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총칼에 억압받던 시절, 만평은 감히 사설과 기사가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을 독자에게 말함으로써 독재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은유와 재치가 발휘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만평 대부분이 그것이 속한 신문의 논조보다 한 단계 더 진보적인 성향을 띤다는 점에서 만평가들은 그 누구보다 큰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일간지에서 국가권력으로부터, 그리고 사주의 탐욕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해방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만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공간이 끊임없는 노력과 책임의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한, 만평가는 신문사에서 가장 적은 일을 하고 가장 쉽게 돈을 버는 '사내실업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겠지요.

신경무 화백의 9월 23일자 만평
신경무 화백의 9월 23일자 만평<조선일보>
이제 제가 신경무 화백께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 9월 말 화백께서는 북한문제로 일주일의 만평을 모두 채우셨습니다. 그나마 27일자 만평 "'답방' 완전히 물건너가나?"를 빼면 화백은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치의 만평을 모두 신의주 특구 계획에 대한 조롱으로 채운 셈입니다.


저는 <조선일보>사의 냉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대북 인식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느 누구보다 <조선일보>의 세계관과 경영전략, 그리고 그 회사의 조직생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 회사에서 흔쾌히 고용한 사람과 그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낸 사람이 그 신문의 논조에 반하는 진보적인 만평을 그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신경무 화백의 9월 24일자 만평
신경무 화백의 9월 24일자 만평<조선일보>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경무 화백의 안일하기 짝이 없는 직업의식입니다. 저는 <조선일보>의 독자(제가 왜 '독자'인지는 앞에서 설명했습니다)로서,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같은 주제를, 그것도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창의력이나 재치는 고사하고) 지루한 조롱으로 채운 화백의 나태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나흘간 "신의주 특구"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가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렇게 매일 똑같은 만평으로 재탕 삼탕을 해도 회사에서 꼬박 꼬박 월급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두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화백의 형편없는 사회의식입니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보수적 인식을 가진 신문사에, 개인의 운신의 폭이 좁은 위계적인 집단이라고 해도, 70년대 초등학교의 반공포스터 수준밖에는 허용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화백께서 그린 9월 23일 만평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벽에 금이 쩍쩍 간 초가집 앞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그것도 별을 단 모자를 쓴 채) "서구문물"이라는 이름의 늘씬한 서양미녀에 침흘리는 북한주민의 모습입니다. 거기에 대사가 일품입니다.

"위원장 동무! 인민들 괘…괜찮겠시요?"

신경무 화백의 9월 25일자 만평
신경무 화백의 9월 25일자 만평<조선일보>
밤낮으로 싸이렌이 울리고, 학교 건물에는 <간첩식별요령>이 붙어 있고, "애국조회"로 아침을 맞고, 음악시간에는 "시월의 찬란한 유신의 새아침이다. 조국의 영광을 길이 빛내자"와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라는 섬뜩한 노래를 가르치고, 국어시간에는 탁자를 치며 "김일성 원수를 쫙쫙 찢어"라는 과격한 반공웅변을 연습하던 시절에도 학생들이 신경무 화백 수준의 반공포스터를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뭐, 다 좋습니다. 그런데 "서구문물"이라니요. 지금 북한은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지, 구한말의 개화기를 맞고 있는 게 아닙니다. 북한의 경제특구 건설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무엇보다 남한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고, 또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는 건 상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느닷없이 서양여자에 침흘리는 북한주민을 떠올리는 그 놀라운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요. 그 만평에서 "신의주"라는 문패를 "조선일보"로 바꾸어보시지요. 신경무 화백과 화백께서 몸담은 신문사의 자기모멸적인 오리엔탈리즘을 볼 수 있습니다.

신경무 화백의 9월 26일자 만평
신경무 화백의 9월 26일자 만평<조선일보>
북한을 제외한 모든 세계를 "서구"로 파악하는 몰상식함은 그만두더라도, 언제는 북한이 '개방'을 안 한다고 열을내다가 이제는 도리어 개방을 한다고 비아냥대는 모순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만평을 보고 기막혀 하던 그 다음날 제가 본 것은 "신의주가 경제특구됐으니 그만 탈북하라우. 이밥 먹여 주갔어!!"라는 만평이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귀사의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저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귀사의 신문을 읽게 된 오늘, 저는 화백께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제게 주말의 반나절을 책상 앞에서 보내도록 해준 것은 오늘, 즉 화백의 10월 14일자 만평입니다. 가장 최근 작품이니 잘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미국 경찰서의 취조실에서 빈 라덴이 조사를 받고 있고, 출입문으로 후세인이 경찰에 체포된 채 끌려오고 있습니다. 만화의 상단에는 "단골 용의자"라고 쓰여져 있고, 빈 라덴은 후세인을 돌아보며 말합니다. "왔수?" 그리고 경찰의 조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 폭탄 테러."

신경무 화백께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 만평을 그리신 건가요? 빈 라덴과 후세인이 발리섬 테러를 저질렀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빈 라덴과 후세인이 아무런 증거 없이 테러혐의를 뒤집어 쓰는 사태가 온당치 못하다고 비판하시는 건가요?

신경무 화백의 10월 14일자 만평
신경무 화백의 10월 14일자 만평<조선일보>
두 가지 모두 아니라면 화백의 만평은 무의미한 잉크자국일 뿐입니다. 만약 빈라덴이나 후세인이 테러의 주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외교문제로도 확대될 수 있는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언입니다. 발리섬 테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당국에서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조사에 착수한 상황에서 화백께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오늘 오전,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도서관 사서에게 문의해 보니 한국의 신문이라도 구독신청을 할 수 있다더군요. 이미 한국 신문 두 종류가 들어오고 있었고요. 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선일보>가 아닌 다른 신문의 이름을 써서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앞서 말씀 드린 것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무례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제 돈의 일부가 신경무 화백의 월급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혹시 내일 만평 소재가 부족하다면 제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드리지요. 오늘 만평의 속편을 그리는 겁니다. 취재실에 빈 라덴과 후세인이 조사를 받고 있고 이번에는 문으로 김정일이 체포되어 들어옵니다. 빈 라덴과 후세인은 "왔수?"라고 합창을 하고, 제목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단골 용의자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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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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