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만평강인규
비록 어설픈 수준이기는 하지만, 저 역시 만평을 연재하면서 만평가의 고뇌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신문과 잡지를 끼고 살면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물론,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도 눈과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건과 이슈 가운데서 단 하나를 선택해 그 문제의식을 가장 재치있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려내야하지요. 보통의 부지런함과 감수성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문에서 "수문지키기(gate keeping)"나 "의제설정(agenda setting)"으로 대표되는 언론의 기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곳이 있다면 바로 만평일 것입니다. 독자들이 신문을 펴자마자 가장 먼저 눈을 가져가는 곳이 바로 만평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이슈를 발견하고 때로는 박장대소하고 때로는 눈물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제가 이 매력적인 일을 오래 하지 못한 것은 제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손바닥 반만한 공간에 세상을 담아낼 만한 지혜와 노력이 제게는 부족했던 것이지요. 만평을 그리는 일은 부르튼 발과 상처난 가슴이라는 엄청난 노동강도를 제게 요구했습니다.
신문의 만평란은 일종의 '해방구'이기도 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총칼에 억압받던 시절, 만평은 감히 사설과 기사가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을 독자에게 말함으로써 독재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은유와 재치가 발휘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만평 대부분이 그것이 속한 신문의 논조보다 한 단계 더 진보적인 성향을 띤다는 점에서 만평가들은 그 누구보다 큰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일간지에서 국가권력으로부터, 그리고 사주의 탐욕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해방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만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공간이 끊임없는 노력과 책임의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한, 만평가는 신문사에서 가장 적은 일을 하고 가장 쉽게 돈을 버는 '사내실업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