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파업사태 징계문제가 걸림돌

가톨릭중앙의료원 노사 양측 평행선

등록 2002.10.16 14:18수정 2002.10.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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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부터 147일째 계속되고 있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차수련)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장기파업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병원 노조원 12명이 명동성당에서 22일째 집단으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노사 양측의 입장 변화가 없어 대치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파업 초기 쟁점이 되었던 노동조합의 인사권 참여와 사학연금 본인 부담금 축소 등의 문제가 서로간의 입장 차이로 해결되지 않은 채 지난 6월 5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이후 노사 양측은 파업 노조원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적용과 파업 책임자에 대한 징계문제가 새로운 쟁점이 되면서 대립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강남성모병원 밤 전경
가톨릭중앙의료원 강남성모병원 밤 전경강남성모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측은 "노조에서는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적용과 징계방침을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하지만 의료원은 협상의 대상이 아닌 경영권과 관련이 있는 위의 두 사항에 대하여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징계방침과 무노동 무임금 적용을 못 받아들이는 노조측이 파업을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장기파업의 책임이 노조측의 무리한 요구에 있다고 주장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측은 또 "그 동안 파업으로 200여 억원의 의료손실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병원 이미지 실추, 직원들간의 갈등 등 노사 모두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남기게 됐다"면서 "노동조합의 실체와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 관계자는 "실무부서에서 징계대상과 수위 등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히고 "징계원칙은 반드시 지킬 것이며 그렇지만 징계범위는 최소화할 방침"이라면서 "징계방침을 발표해놓고 공수표를 발행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원칙에 따라 절차를 진행중임을 밝혔다.

그는 이어 "불법파업 노조원에 대한 징계방침 철회 불허는 노조측이 불법파업을 감행하여 생기는 의료원측의 피해에 대한 보상과 불법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노조원들이 입는 피해에 대한 형평성에 관한 문제"라면서도 "노조가 먼저 파업을 풀고 복귀하면 대화합 차원에서 징계방침을 우호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선 복귀 후 선처'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또 무노동 무임금 적용이 노동자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은 노동법의 기본원칙이다. 의료사업은 노동집약적 사업이라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회사에게는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무노동 무임금 적용 방침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지난 9일 밤 명동성당 농성현장을 방문한 구리시 원진 녹색병원 검진팀으로부터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단식 노조원들
지난 9일 밤 명동성당 농성현장을 방문한 구리시 원진 녹색병원 검진팀으로부터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단식 노조원들석희열
의료원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장기파업의 근본적인 책임은 직권중재라는 악법에 의존하여 불성실 교섭과 노동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는 의료원과 노사 자율교섭을 가로막고 있는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있다"고 전제하고 "무노동 무임금에 대해선 노사 양측의 공동책임을 들어 50:50을 제안했지만 의료원측에선 원칙대로 적용하되 20~30% 정도의 생계비만을 지급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또 "9월 11일 공권력 침탈 이전 최종안을 통해 사학연금 본인 부담금을 당장 낮추기 어려우면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추후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는 의료원측의 답변을 요구했다"며 "또 원만한 사태 해결을 위해 지부장 3명에 대한 징계도 받아들인다고 의료원측에 제안했지만 둘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의료원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국장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자기들의 목을 겨누는 비수로 생각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려는 노사관에 대한 병원 사용자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그 동안 노동현장에서 벌어졌던 여러 탄압사례에서 보듯 의료원측이 주장하는 복귀하면 선처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노사간의 불신이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가고 있음을 드러냈다.

700여 조합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9일 밤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700여 조합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9일 밤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석희열
이주호 국장은 또 "가톨릭병원측이 교리에도 어긋나는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보안법'이라는 직권중재 악법을 금과옥조로 여겨 계속해서 노조의 대화요구를 거부하고 단체교섭에도 응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파국의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고 "노조의 정당한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 장기화로 내모는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노동악법 직권중재제도 철폐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현재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참가자는 57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가톨릭중앙의료원측은 10월 14일 현재 최초가담자 1373명 중 822명(59.9%)이 업무에 복귀했으며 551명이 파업에 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병원파업이 장기화로 치달으며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각계에서 대화를 통한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파업지도부를 만나 대화를 통한 장기파업사태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14일 오후 명동성당을 찾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번에도 두 차례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사태해결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면서 "김 추기경과 차수련 위원장 그리고 저를 포함한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해법찾기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사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병원파업 해결을 위한 '3자회담'을 간접 제안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명동성당의 화장실 사용 제한조치에 대해 권 후보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생명존중 사상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종교단체에서 이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비극이며 이해할 수 없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14일 오후 권영길 후보가 단식농성으로 건강이 악화된 차수련 위원장을 위문하고 있다. 차 위원장은 의사들과 조합원들의 간절한 만류로 지난 12일 오후부터 단식을 풀었다
14일 오후 권영길 후보가 단식농성으로 건강이 악화된 차수련 위원장을 위문하고 있다. 차 위원장은 의사들과 조합원들의 간절한 만류로 지난 12일 오후부터 단식을 풀었다석희열
권 후보는 또 "교황이 지난 2000년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신자유주의정책과 관련한 특별성명을 통해 인간에 대한 탄압과 착취를 취소하라며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소개하고 "차수련 위원장을 보니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이러한 한국 상황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며 단식농성자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곽노현 방통대 교수, 유현석 변호사, 권영길 민노당 대표 등 천주교 평신도 1천여명은 지난 10일 '천주교 평신도 1000인 선언'을 통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병원과 보건의료노조간의 대화를 통한 신뢰의 회복과 조속한 협상을 통해 파업을 풀어야 하는 것"이라며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사태의 평화적인 조속한 타결을 위해 대화와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을 노사 양측에 강력히 촉구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관 입구..지난 11일 이후 세 차례 방문하여 백남용 주임신부와의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관 입구..지난 11일 이후 세 차례 방문하여 백남용 주임신부와의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석희열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중곡동에서 열리고 있는 추계 전국주교단 회의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모양새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노조는 주교단의 한 관계자로부터 주교단과의 면담을 주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기우 신부)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노사 양측의 극한 대립으로 장기화로 치닫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장기 파업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조만간 중재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노사간의 극적인 대타협의 가능성이 조금씩 점쳐지고 있다.

한편 가톨릭 중앙의료원 간호사들의 평균임금이 일반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가톨릭의료원 재무팀이 제공한 2002년도 간호사 급여현황 자료에는 대졸 1년차 여자 간호사의 월평균 급여는 204만3200원으로 나타났으며, 전문대졸 1년차 여자 간호사는 192만5천원, 고졸 1년차 여자 간호조무사는 161만300원, 고졸 1년차 여자 간호보조의 경우 159만3700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제시한 간호사 등의 월평균 급여표(직급, 호봉, 직무, 급식 등 제수당이 포함된 경우이며 편의상 재작성한 것임)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제시한 간호사 등의 월평균 급여표(직급, 호봉, 직무, 급식 등 제수당이 포함된 경우이며 편의상 재작성한 것임)석희열
간호사들의 급여가 지나치게 높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가톨릭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 기획팀 이승우씨는 "간호사들이 하는 일의 경중이나 전문성, 사회적인 환경, 동종업계의 노동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급여가 결정되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며 "우리 의료원 간호사들의 평균급여가 전국 대학병원 중에서도 상위수준이긴 하지만 많다 적다 쉽게 판단 내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16일 오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전국 150여개 병원 4만여 조합원이 일제히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후 출정식에서 직권중재 철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 특별 근로감독 실시, 병원내 경찰병력 철수, 대화와 교섭을 통한 평화적 해결노력 등을 정부와 병원사용자측에 강력히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또 14일 오후 떠날 예정이었던 로마교황청 방문일정을 1주일 연기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원정일정이 21일로 늦춰진 것에 대해 △10월 18일 이탈리아 노총의 총파업 예정 △로마교황청 교황과 바티칸 법원장 면담일정 조정 등으로 이탈리아 노총의 방문 연기 요청 △천주교 평신도 1000인 선언, 천주교 원로 변호사와 교수,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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