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 갔다가 뽑아 먹은 동삼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24> 묘사와 가을무

등록 2002.11.11 16:18수정 2002.11.1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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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소쿠리섬

소쿠리섬 ⓒ 진해시

"하여튼, 누가 경주 이가 아이라칼까(아니라 할까) 봐서 저러나... 쯧쯧쯧"


"나도 경주 이가지만 솔직히 말해서 경주 이가 치고 성질 급하고 말 못하는 넘 오데 있더나? 아, 족보 책을 찬찬히 한번 살펴봐라카이. 그냥 약간 거슬려도 조금 참고 가만히 있으면 자리 보존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낀데, 그 넘의(그 놈의) 조둥아리(주둥이) 땜에 다 안 망했더나"

"하여튼 그넘의 대꼬쟁이 같은 성질 하고는 내 원 참"

"성질만 오대 그렇더나? 경주 이가 치고 술 못마시는 넘이 어디 있더나? 술 못마시는 넘은 경주 이가가 아이라카이. 오데(어디) 가도 경주 이가는 표가 딱 난다 아이가. 아나! 한 잔 묵거라. 우리 조상 피가 그런 거로 우짤끼고. 아나! 셋째 니도 한잔 묵거라"


그래. 그렇게 대꼬쟁이 같은 성격에 술을 좋아하시던 조상님들이다 보니 선산 또한 기가 막하게 경치가 좋은 이 곳을 선택했는가 보다. 고조부부터 7대 이상이 묻혀 있는 이 곳 선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진해만. 소쿠리섬의 경치는 말 그대로 어머니 품 속 같이 정겹고 잔잔하기만 하다.

연푸른 남녘바다 한 가운데 낚싯배처럼 점점이 떠 있는 섬, 금방이라도 그 낚싯배 같은 섬을 삼킬 듯한 기세로 쉴틈 없이 들락거리는 파도. 하지만 섬에 닿으면 이내 하얀 물방울로 잔잔히 부서져 새악시처럼 순해지고 마는 파도.


어쩌면 우리 조상님들의 그 급한 성깔도 달착지근한 술 한잔에 저 파도처럼 저렇게 부서져 내렸을까. 그리고 그렇게 부서지고 나서도 또다시 이 세상의 모두를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당당하게 일어서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으로 그렇게 저항의 언어를 마구 내뱉었을까. 그래,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격분에 찬 말을 내뱉다가 권력의 주변에서 수없이 명멸해 간 우리 조상님네들.

그 칼 같이 날카로운 성품 덕분에 어느 조상님은 귀향살이를 가서 긴 세월을 그렇게 술잔만 들이키며 세월을 한탄하다가 그렇게 갔고, 또 어느 조상님은 망나니의 칼날에 목이 뎅겅, 하고 잘려져 나갔단다. 또 어느 조상님은 아예 그 닭벼슬 보다 못한 그 벼슬길을 포기하고, 어느 한적한 시골에 은둔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그렇게...


그래, 그 조상님들의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있는 선산. 이 선산에서 얼마나 많은 조상님들이 지금의 우리들처럼 묘사를 지낸 뒤, 지금의 우리들처럼 저 소쿠리섬을 바라보며 이렇게 술잔을 기울였을까. 그리고 또 그렇게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뎅겅, 목이 잘려져 나간 조상님들의 성품을 이야기하면서 저 갈매기처럼 울었을까.

처음 이곳에 선산을 구입하였을 때에도 오늘처럼 저렇게 많은 낚싯배들이 떠다니고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낚싯배라고 어디 다 같은 낚싯배이던가. 당시에는 저렇게 여가를 즐기기 위한 낚싯배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목숨을 건 생존을 위한 낚싯배들이 점점이 섬처럼 떠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백사 선생의 직계이자 37대 손 아이가. 그러고 보면 백사 이항복 선생은 우리 경주 이가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스스로 잘 다스려 낸 사람이 아니것나. 그러니까 그 정도 벼슬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가 안 있었것나. 그쟈?"

"하여튼 뭐든지 명경알맨치로(처럼) 깨끗해야 직성이 풀리지, 띠끌 하나 묻은 걸 못 보는 사람들 아이가. 백사 선생 같은 조상님은 보통 독한 분이 아니라고 봐야것지"

"그래. 인자(인제) 시대도 많이 달라졌고 하니까 요사 아들이(아이들이) 우리 조상님이나 우리들처럼 이리 살것나?"

"니 말이 맞다. 앞으로 술 안 먹는 경주 이가가 나오모 우리 집안에서 백사 같은 사람이야 수없이 많이 안 나오것나"


얼마전 아버지께서 11년 전에 어머니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뒤부터 이상스레 부쩍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 우리 집안, 그러니까 우리 경주 이가 종가의 여러 가지 일에는 거의 등한시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자 아버지의 빈 자리는 그야말로 컸다. 그동안은 주로 아버지께서 큰형님과 더불어 종가 쪽의 여러 가지 일에 관여하고 계셨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는 그 빈 자리를 우리 형제 모두가 채워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종가일은 으레 아버지와 형님이 그냥 알아서 하는 일들로만 여기고 있었으니까.

지난 주 일요일은 진해 명동 소쿠리섬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는 경주 이가 국당공파 선산에서 묘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 주, 아버지 탈상을 하는 그날, 형님이 넌지시 말했던 그 묘사에 대한 이야기를 예사로 받아 넘겼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신 때처럼 그냥 벌로만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요일 아침, 내가 일어난 시각은 아침 9시경이었다. 그것도 어젯밤 늦게까지 마신 술로 인한 '타는 목마름' 때문에 잠시 일어났던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술이 덜 깬 흐릿한 정신으로 물을 한 컵 마시고 "커, 좋다" 라면서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숨 더 잘 요량으로 또다시 이불 속으로 마악 기어들 때였다.

"뭐하노? 아침 먹었나?"
"아, 예"
"묘사 가는 거 알제?"
"아, 예. 근데 아직 씻지를 않았는데..."
"한 20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빨리 씻고 옷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어라. 데리러 갈게"
"예"


아버지의 빈 자리... 그래.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해서 아버지의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살아계실 때 맺어놓은 여러 가지 인연들을 끊기지 않게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이 세상에 살아남은 아버지의 핏줄인 우리들의 몫이었다. 그래. 어쩌면 그렇게 끝없이 이어져 나가는 것, 그것이 삼라만상의 종(種)의 순환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진해 명동 소쿠리섬이 훤하게 바라다 보이는 선산. 점점이 떠있는 남해안의 오밀조밀한 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형제들이 선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묘사를 지낼 준비가 거의 끝나 있었다. 말하자면 일가들 모두가 우리 형제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면서, 그 급한 경주 이가의 성질을 억지로 참고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로서로 대충 눈인사만 나눈 뒤 곧바로 제를 올렸다. 그리고 자리를 펴고 소쿠리섬을 바라보며 빙 둘러앉아 제를 지낸 음식을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참! 우리 어릴 때는 묘사 지내는 사람들이 울매나(어찌나) 부럽게 보였는지 아나? 누가 묘사 지낸다 카모 동네 아이들이 모두 줄줄이 쫓아가서 그 집 묘사가 끝날 때까지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아이가. 그 떡 한 쪼까리 얻어 묵어볼라꼬. 그래가꼬, 묘사가 끝나고 나모 우리 보고 온 순서대로 줄을 쭈욱 서라 안카나."

"하긴 그때는 묵을 기(먹을 것) 오데(어디) 있었나. 한 10여년 전에만 해도 이곳에서도 경주 이가 선산에서 묘사를 지낸다카모 이 일대의 쪼무래기들이 개미떼맨치로 새까맣게 몰려 들었다 아이가."

"아(아이) 뿐이든교 오데. 어른들까지 모조리 다 몰려나왔다 아이요. 그때는 묘사 지낼 때 지금처럼 이렇게 음식을 적게 하모 욕 디기(많이) 먹었다카이. 그래가꼬 일부러 음식을 따로 했다카이. 그때는 묘사가 동네의 큰 잔치였다 아이가."


그렇게 아침부터 술잔이 서너 바퀴 돌았다. 술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양주처럼 갈색으로 잘 익은 3년 된 모과술에서부터 막걸리, 소주, 맥주 등등. 아마도 술 잘 먹는 경주 이가들의 성깔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아주머니께서 그렇게 준비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술이 잘 줄어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묘사에 참석한 일가들 대부분의 얼굴 표정이 어젯밤 마신 술이 아직 덜 깼다는 그런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때 9촌 아재(아저씨)의 엄명이 떨어졌다.

"뭐하노? 대대로 내려온 초뺑이(술꾼) 집안에서 술을 겁내다니. 그라고 묘사를 지내고 나서 남는 음식은 싸들고 갈 수 있지만 술은 남기고 가모 안된다카이. 전부 퍼뜩 이리 온나. 그라고 앞에 저 경치 좀 봐라카이. 조상님들이 후손들 산소에 와서 술 한잔 마시기 좋으라꼬 이렇게 좋은 데다 선산을 마련해놨다 아이가. 자! 얼른"

그래. 정말 아름답다. 아마 소쿠리섬이라고 하면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이름을 쉬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섬 모양이 소쿠리를 닮았고, 소쿠리 속처럼 고기 또한 잘 잡힌다 하여 소쿠리라는 이름이 붙은 소쿠리섬. 소쿠리섬은 낚시만 잘 되는 곳이 아니란다. 우리 나라에서 횟감이 가장 쫄깃하고 고소한 곳으로도 소문 난 곳이란다.

"아나! 이거 한번 묵어봐라. 이기 바로 동삼이다, 동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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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진흥청

그때 둘째형이 밭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무를 한뿌리 뽑아왔다. 금방 밭에서 쑤욱 뽑은 무는 이마에 연두색 띠를 두르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구나 잔디에 쓰윽슥 묻질러 연두색 띠를 경계로 하여 하얀 속살을 빛내고 있는 가을 무는 첫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그래. 무를 먹을 때는 칼이 별도로 필요치가 않다. 밭에서 갓 뽑은 가을무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무에도 껍질이 있다. 먼저 무청을 손으로 비틀어 떼어내고 나서 이빨로 무의 정수리 부위를 한번 베어낸다. 무청과 무의 연결 부위의 약간 지저분한 부위를 이빨로 도려내는 것이다.

이 때 매콤한 내음과 달착지근한 내음이 나면서 감칠맛이 느껴지는 것이 맛이 좋은 가을무, 즉 우리들이 말하는 그 동삼이다. 그리고 난 뒤 위에서부터 이빨로 껍질을 슬슬 벗기면 껍질이 제법 예쁘게 쭈욱 벗겨진다. 그렇게 적당히 벗기고 나서 한입 베어 물면 그만.

"이기 무시(무) 아인교?"

"그래. 맞다. 가을무시는 먹고 난 뒤 트림만 하지 않으면 바로 동삼이 된다 카더라. 많이 묵어라. 특히 술 마시는 사람한테는 가을무시만한 게 없다 안카나."

"오데 그거 뿐이가? 가을무시는 몸에 있는 온갖 독소를 다 빨아들인다 안카더나. 술? 암만 많이 묵어봐라. 이 동삼 뿌래이(뿌리)로 안주 삼아 묵으모 술 열 말을 마셔도 까딱없다카이. 아나! 동삼 안주 삼아 니도 한잔 해뿌라 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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