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씨 심은 곳에 감나무 나지않는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25> 고욤나무

등록 2002.11.13 11:58수정 2002.11.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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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감나무의 조상 고욤나무

감나무의 조상 고욤나무 ⓒ 우리꽃 자생화

"이것도 감나무라 카는 깁니꺼~ 아이모 감나무 사촌입니꺼?"
"감나무 사촌이 아이라 그기 진짜 감나무라 카는기다."
"우째 그렇심니꺼?"


우리 마을에는 고욤나무가 간혹 눈에 띄었다. 당시 우리가 '귀감나무'라 불렀던 그 고욤나무는 '봉림삣죽'이 살고 있는, 그 봉림삣죽 소유의 북채밭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감나무 사이에 마치 동냥을 온 것처럼 서너 그루가 초라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앞산가새(앞산 비탈)에 있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밭 어귀에 한두 그루씩 서서 바알간 콩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니 내 말 새기(새겨) 듣거라이. 감씨로 심는다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감나무가 바로 자라나는기 아이다. 첨에 감씨를 심으모 자라나는 나무는 바로 이 귀감나무다. 이 귀감나무가 감나무의 진짜 조상이다 아이가."

"??? 그라모 우리가 먹는 감은 처음에 오데서 생겼는교?"

"니 제삿상에 와 감이 오르는 줄 잘 모르제? 이 귀감나무에 감나무 접을 붙여야 진짜 감이 열리는 거맨치로(것처럼) 사람도 배우고 익혀야 진짜 사람이 되것제? 그런데 그대로 가만히 놔두면 이 귀감나무처럼 사람도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 아이가.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말하면 팔푼이 같은 넘이 된다 이 말이다. 그래서 그거로 가르칠라꼬 감을 젯상에 빠지지 않고 올리는 기다. 내가 하는 말이 머슨 말인지 인자 좀 알겄나?"

우리가 중학교에 갓 입학한 그 해, 그러니까 1970년 초반부터 우리 마을 주변의 남면벌 일대에서는 이른 바 창원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처음 들렸던 소리가 마을을 뒤흔드는 그 다이나마이트 터지는 소리였다. 처음 그 소리가 우리 마을을 마구 뒤흔들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전쟁이 났거나 지진이 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남면벌 중간 중간에 수호신처럼 떠있는 멀쩡한 야산을 마구 깨서 무너뜨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야산을 깎은 흙으로 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의 도로를 쭉쭉 닦아대기 시작했다. 그 넓은 도로는 아직 수확이 덜 끝난 기름진 남면벌을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황토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야산에서 깨낸 돌로 새로운 제방을 쌓았다.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지나가는 길에 고향의 흔적이라고는 하나도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저 폭탄을 누가 만들었노?"

"이 툭구(등신)야! 수업시간에 내내 졸았더나? 저기 바로 그 유명한 노벨상의 주범 아이가. 노벨이라는 사람이 저 폭탄을 만들어 가꼬 순식간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안 카더나. 그래 가꼬 그 돈으로 노벨상을 만들었는데, 돈이 울매나 많았든지 이자만 가꼬 상금을 주고도 남는다 카더라."


"근데 나는 노벨이라카는 그 사람이 많이 원망시럽다. 와 그렇노 하모 그 사람 땜에 온갖 폭탄이 다 만들어졌다 안카나. 지금 터지는 저 다이나마이트가 그 폭탄의 원재료라 카더라. 그래서 나는 노벨이라카는 사람이 참말로 밉고 싫타."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에도,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그리고 아직 철거예정지구의 팻말이 붙지 않은 우리 마을의 들판으로 소풀 베러 나갔을 때에도, 늘 그 다이나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우리들 귀를 멍멍하게 했다. 우리는 그 다이나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죽도록 듣기 싫었다.

그때 우리들의 귀를 보호해준 것이 바로 귀감이었다. 당시 우리는 누구나 앞산가새에 올라가 그 새파란 귀감을 따서 양쪽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귀감은 마치 우리들에게 귀마개를 하라고 미리 만들어놓은 것처럼 꼭 맞았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찌~ 하는 그런 소리가 꿈속처럼 아득하게 들리면서 먹먹했다.

a "귀감"이라고 불렀던 고욤나무 열매

"귀감"이라고 불렀던 고욤나무 열매 ⓒ 우리꽃 자생화

훨씬 뒤에 안 일이었지만 우리가 귀감나무라 부르는 그 콩감이 열리는 감나무가 바로 고욤나무였다. 당시 우리는 이 고욤나무에 열리는 어른 귓구멍만한 크기의 그 감을 콩감 또는 귀감이라고 불렀다. 왜 귀감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고욤나무에 열리는 그 콩감의 크기가 귓구멍처럼 작다는 데에서 그런 이름이 붙혀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마을 귀감나무는 감나무처럼 한해 걸러 해걸이를 했다. 어떤 해는 마치 알이 꽉 들어찬 머루송이처럼 귀감이 조롱조롱 매달려 간혹 가지가 찢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는 아예 까치밥처럼 두서너 개만 달랑 매달려 왠지 쓸쓸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바로 그해, 서너 개 매달린 귀감마저 모두 떨어지고 빈 나뭇가지 사이로 찬바람이 마구 넘나들던 그해부터 그 다이나마이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감이 적게 달리는 그 해는 쓩년(흉년)이 든다카더마는..."
"인자 좋은 시절은 다 가뿟다카이. 우리도 몇 년 안 가서 평생 쓩년을 겪어야 할 팔자 아이가. 아, 지을 농사가 있어야 쓩년도 겪을 꺼 아인가베."
"그래도... 내년에는 귀감이 많이 달리것제?"

첫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귀감에 손을 대지 않았다. 조롱조롱 매달린 귀감나무가지가 찢어져 우리들 손이 쉬이 닿는 곳에 있어도 그랬다. 왜냐하면 귀감은 도토리처럼 작기도 했지만 씨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리고 채 익기도 전의 귀감은 땡감처럼 너무나 떫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귀감은 절기를 알려주는 일종의 달력 같은 구실도 했다. 즉 귀감의 바알간 색이 약간 검붉은 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곧 첫서리가 내릴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또 첫서리가 내리는 것은 곧 이제부터는 마음놓고 귀감을 따먹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a 도토리만한 크기의 고욤나무 열매

도토리만한 크기의 고욤나무 열매 ⓒ 우리꽃 자생화

장대... 귀감을 딸 때에도 감을 딸 때 썼던 그 장대가 필요했다. 감을 딸 때 쓰는 그 장대는 맨 꼭대기를 반으로 잘라 단단한 나뭇토막을 끼워 마치 집게처럼 만들어 놓았다. 귀감을 딸 때가 되면 대부분의 귀감이 첫서리를 맞아 물컹하면서도 약간 단단해져 있었다. 말 그대로 자연산 작은 곶감이 빈 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긴 장대로 가끔 재채기를 해가면서 귀감을 땄다. 하지만 귀감을 딸 때에도 약간의 손재주가 있어야 한다. 우선 긴 대나무를 귀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로 가져가 대나무 집게에 귀감 가지를 끼워 힘껏 비틀어야 한다. 그러면 뚝, 하는 소리와 동시에 쭈굴쭈굴해진 귀감이 조롱조롱 매달린 가지가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아~"
"야가 갑자기 와 이라노? 귀감에 머슨 돌덩이라도 들었나?"
"으~ 이빨... 내 이빨~"
"아이구, 툭구야! 그래, 천지에 널린 게 귀감인데 누가 뺏어묵을끼라고 그리도 죽자사자 마구 처넣노."
"싸다~ 싸! 앵금통처럼 그렇게 욕심을 부리다보모 다 그리 된다카이."

귀감은 워낙 씨가 많았다. 특히 이맘때 먹는 귀감은 곶감처럼 적당히 말랑말랑하면서도 쫄깃했지만 먹을 때 조심을 해야 한다. 이맘때의 귀감 속에 들어 있는 감씨는 말 그대로 조약돌처럼 딱딱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귀감을 먹다가 이가 부러졌다는 것은 이가 부러진 게 아니라 대부분 흔들리던 헌 이가 빠진 것이었다.

또 그렇게 빠진 이는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아무 곳에나 헌 이를 버리면 새 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헌 이가 빠지면, 그 새 이를 갖다줄 까치를 마구 부르면서 그렇게 초가지붕 위에 헌 이를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하얀 이가 석류알처럼 고르게 돋아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까치야 까치야~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니, 실 없이도 헌 이를 뺏제? 귀감나무한테 절하면서 고맙다케라."
"아~ 알았다카이. 으~"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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