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에서 역사를 읽는다

이영미의 '흥남 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등록 2002.11.13 23:01수정 2002.11.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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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홍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란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우리네 삶을 둘러볼 때 이 말이 얼마나 딱 들어맞는지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노래평론가 이영미가 쓴 '흥남 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황금가지 刊)'는 저자가 대중가요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한 후 보게 된 한국 대중가요의 이모저모를 다룬 책이다.


"흥미롭게도 재즈나 록에 대한 책들은 꽤 잘 팔리는데 정작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책은 악보집, 가사집이나 연예인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면 잘 안 팔려요. … 한국 대중가요는 돈을 지불해서 공부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 우리 사회와 세상 사람들, 그리고 그속에서 살아남았던 대중가요들을 보는 여러분의 눈이 조금 더 밝아졌다면 저는 더 바랄게 없지요."

61년생인 저자는 네 살 때 어른들 앞에서 한명숙의 '그리운 얼굴'을 부르고 과자를 얻을 먹었을 정도로 대중가요에 일찍부터 심취했다. 게다가 열 살 무렵부터는 이미 송창식과 김민기의 팬이 됐을 정도로 조숙(?)했다.

이 시절을 사랑했던 저자의 애정은 당시 사회에 대한 풍부한 서술로 되살아난다. 전차, 노란색 바브민트껌, 펭귄이 그려진 쿨민트껌, 또뽑기 풍선껌, 색색가지 과일향의 왕드롭프스 등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김일의 프로레슬링 열기를 언급하기도 한다.

흑백시절에 대한 추억과 함께 당시의 대중가요 해석이 이어지는 것이다. 시대 분위기에 맞춰 70년대 초반의 포크전성기를 이야기하고, 70년대 후반의 트로트붐을 이야기하며, 90년대 댄스음악 열풍을 끄집어낸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금지가요가 된 것도 한일수교로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한 박정희 정부가 빼든 카드라는 사실도 소개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대중가요에서도 읽을 수 있다. 가요에서 '역사성'과 '사회성'을 거세했던 독재시절의 가요에서 오히려 그 시대가 읽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하여 여든 평생 한결같이 몸바쳐 오신 고마우신 이대통령 우리 대통령 우리는 길이길이 빛내오리다'는 '우리 대통령(연도 미상,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는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에 못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52년곡 '샌프란시코(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장세정 노래)'를 통해서는 당시 미국에 대한 동경에 푹 빠져 있었던 당시 사회를 보여준다. '뷔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개혁적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김민기의 '연우무대'를 찾아가 마지막 뒤풀이자리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일화도 재미있다.


이 책은 상식을 깨는 재미도 제공한다. 국내 최고의 소프라노라고 알려진 윤심덕이 사실은 지독한 음치였다는 사실. 지금은 '하급문화'로 치부되는 트로트가 일제시대에는 신세대의 고급문화였다는 것 등이 자세하게 다뤄진다.

'민족주의'의 편견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왜색성 때문에 트로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작 '양색'이 강한 외국 가요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적이 없다. 또한 조수미, 홍혜경 등의 성공에 대해 외국 음악교육의 승리라고 하는 지적에 대해 외국 음악신동들이 우리나라에 유학와서 전라도 판소리를 능수능란하게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 등.

윤심덕의 '사의 찬미'에서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까지, 그 이후의 조성모까지 다루고 있지만, 80년대 이후의 서술은 그 이전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저자가 애정을 갖고 음악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시기와 직업인으로써 음악을 대하기 시작한 시기의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포크, 락 등 새로운 음악의 흐름이 시작됐던 1970년대 초와 서태지의 흐름이 충격적이었던 1990년대 초를 새로운 음악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한다. 안정기에 들어선 1970년대 후반과 1990년대 후반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다.

결국 저자는 지난 역사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갈망하고 있고, 그러한 생각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어떤 예술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대중가요도 남 안하는 좀 유별난 짓거리를 하는 괴짜, 괴물, 또라이, 뭐, 이렇게 불려지는 이들이 있어야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 아니겠어요? 사람들 이 붕어빵 좋아한다고 누구나 똑같은 붕어빵만 찍어낸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가요를 통해 바라본 우리 시대 이야기

이영미 지음,
황금가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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