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노래평론가 이영미의 대중가요 이야기

등록 2003.07.25 00:23수정 2003.07.2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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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가지

흔히 대중가요라고 하면 "시시껍적하고 너저분한 딴따라 광대놀음"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황금가지, 2002)의 저자인 노래평론가 이영미도 이러한 생각이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님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영미는 또한 그런 시시껍적함이 중요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원래 시시껍적해 보이는 게, 생활 속에서는 친근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즐기는 대중가요를 분석한다는 것은 곧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보는 것,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그때 그 삶의 모습을 반추하는 것, 그리고 나의 가족들이 살아온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의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는 이렇게 '시시껍적하면서도 생활과 가까운' 대중가요에 대한 이야기다.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는 일제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윤심덕에서부터 HOT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가요의 변천사와 특징을 담고있다. 각 시대별로 한국 대중가요가 어떠한 특색을 가졌는가를 알아보고 당시의 시대상과 대중가요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를 밝혀낸다.

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가요의 한계도 분명히 짚어주고 있는데, 저자는 이같은 원인을 크게 예술적 취향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소비자와 서양의 음악을 흉내내려는 사대주의적 제작자들, 가사 하나까지 검열하고 나서는 정부로 꼽는다. 그러나 저자 역시 과거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객관화하지 못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2, 30대들은 트로트가 자신의 취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0대 후반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 나는 송창식과 양희은을 좋아하면서도 TBC의 <쇼쇼쇼>에 나오는 남진이나 나훈아 노래에는 그 유치함과 천박함에 몸을 떨 정도였다.

지금은 '뽕짝'이라고 불리며 유치한 음악으로 치부되는 트로트도 일제시대에는 도시의 신문화를 대변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때의 트로트는 개화한 지식층이 들여와 돈과 문화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었던 예술이었다.


또한 당시 완벽하게 짓눌려졌던 대중들의 사회 심리를 절절하게 담아낸 감정 배출의 통로이기도 했다. 무력하고 자학적인 메시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트로트는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트로트는 '수준 낮은 것, 유치한 것, 저질'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저자는 트로트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트로트에서 저학력의 무식함과 가난의 냄새'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분위기 있는 까페에서 트로트가 신나게 흘러나온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1940년대를 전후로 유입된 외래 문화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예전에 '미영귀축(美英鬼畜)'이라며 서양 문화를 경계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유하고 강대한 미국을 이상적인 나라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가요에도 그러한 동경은 여지 없이 드러난다.

뷔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 <샌프란시스코> (1952년, 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장세정 노래)


샌프란시스코에 있지도 않은 비너스 동상이 등장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가사 중에 등장하는 금문교, 샌프란시스코, 태평양, 로맨스, 아메리칸 등의 단어에서 미국과 관련된 말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진다. 마음으로는 버터 냄새를 풍기고 싶어 죽겠는데 몸과 입은 아무리 해도 자장면이나 야끼 만두 냄새밖에 못풍기고 그 속에서 김치 냄새만 폴폴 새어나오는 격이다.

이 시기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포크와 록,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바람이 불 때에도 외국 것을 수입하거나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미국 모던 포크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본연의 정신인 반전, 저항, 사회 비판성은 쏙 빼고 받아들였다. 특히 유명한 <하얀 손수건>,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외국곡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식의 관행을 다음과 같이 강도높게 비판한다.

'이런 이식의 관행은, 스스로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대신 계속 외국 것을 모델로 삼아 백날 남의 꽁무니나 따라가는 신세에 머물게 하고, 우리가 그들과 다른 것을 단순한 차이나 다양성으로 생각지 못하게 하고 우열 관계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비판하는 것은 사전 검열로 대변되는 정부의 폭압적인 통제이다. 분단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를 담은 노래만이 쏟아진 것은 물론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등 수많은 노래를 적당한 이유도 없이 금지시켰다.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는 무조건 검열 대상이 되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노래도 전국의 아이들에게 교육시켰다.

우리나라 대한 나라 독립을 위하여/ 여든평생 한결같이 몸 바쳐오신/ 고마우신 이대통령 우리 대통령/ 우리는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 <우리 대통령> (연대 미상, 박목월 작사·김성태 작곡,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 기념 노래)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는 한 시대의 대중가요가 그 시대 대중들의 사회 심리와 취향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설명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대중들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면서 그 속에 안주하려는 경향'은 대중문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특징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러한 논리가 답답하면서도 지겹다고 비판한다. '남 안하는 좀 유별난 짓거리를 하는 괴짜, 괴물, 또라이, 뭐 이렇게 불려지는 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또라이'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수용자 대중이 대중문화의 다양성에 박수를 쳐주고 붕어빵 식의 대중문화에 비판을 가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는 엉뚱한 제목만큼이나 재밌는 책이다. 이 책은 대중가요의 역사를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의 장점은 본문에서 숨김없이 드러나는 저자의 대중가요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이다.

우리 대중가요의 굽이굽이를 따라가면서 당시의 사회 상황을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중가요가 음악이자 문학이라고 말하면서 가사를 통해 노래의 의미와 맛을 이야기하는 것도 특이할 만한 점이다. 이영미를 따라 대중가요의 역사를 굽이굽이 따라가다보면 우리 대중가요가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100여 년에 가까운 대중가요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낸다는 것이 무리였는지 설명이 없거나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는 것은 이 책의 아쉽지만 분명한 한계이자 단점이었다.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가요를 통해 바라본 우리 시대 이야기

이영미 지음,
황금가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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