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무 화백의 <조선만평> 2002년 11월 7일자<조선일보>
공화당의 승리를 "부시 카리스마의 승리" (<조선일보> 2002. 11. 7)나 "부시 대통령과 그가 추진해온 정책에 대한 국민의 재신임" (<동아일보> 2002. 11. 6)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언론과는 달리,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번 선거를 부시대통령의 정책이나 그의 신임여부와 결부시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방송 네트워크인 씨비에스(CBS)가 선거 전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투표행위를 부시에 대한 지지표명이라고 밝힌 사람은 27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55퍼센트의 유권자들은 중간선거에 자신들이 던지는 표가 "대통령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전문가들도 이번 공화당의 승리의 원인을 '민주당의 지도력 부재'와 '테러에 대한 위기감'에서 찾고 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미국인들이 "강력한 미국이 중심이 된 세계 질서 구축을 지지"(2002. 11. 7)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국의 영토가 직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미국인들의 불안감과 보수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부시는 별다른 정책도 없이 전쟁을 정치캠페인의 도구로 사용했고, 보수화된 미국의 언론 역시 "공격당한 미국(America under attack)"이라는 '히트상품'을 통해 국민들의 원초적인 안보의식을 한껏 자극해왔다.
'9.11 테러 일주년'을 맞아 텔레비전에서는 비행기가 뚫고 지나가는 국제무역센터의 모습을 재방송하고, 신문은 테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비참한 '그 날 이후'의 삶을 보여주며, 부시는 '악의 축'을 제거하지 않으면 미국이 또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될 거라고 위협적으로 말하는 판이니 민주당의 교육서비스나 의료제도 운운하는 이야기가 국민들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외신보도의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다른 언론과는 달리 <조선>과 <동아>가 '닭짓'을 하게 된 데에는 '미국통'을 자처하는 양 신문사의 특파원들이 큰 몫을 했다.
먼저 <동아일보>의 한기흥 특파원(eligius@donga.com)의 글을 보자.
"민주당은 그 동안 상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조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 행태에 제동을 걸어왔으나 이번 선거의 패배로 견제가 어려워지게 됐다. […] 국제적인 협력과 대화를 통한 현안의 해결을 강조하는 민주당이 패배함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이런 비판을 의식하지 않거나 덜 의식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한기흥 특파원, "힘얻은 부시 北核 압박 가속 예상" 2002. 11. 6.
한기흥 특파원은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 행태에 제동을 걸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1월 8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민주당이 부시 대통령의 세금감면과 이라크 정책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것을 패인으로 꼽고 있다.
11월 7일자 <뉴욕타임즈> 역시 일관되게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못한 민주당의 애매한 태도가 공화당에게 승리를 가져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민주당이 어떤 태도를 보였더라도 테러와 전쟁의 불안에 싸인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 언론의 일반적 견해다.
그리고 "민주당이 패배함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거나 덜 의식할 것으로 보인다"는 한기흥 특파원의 주장 역시 미국의 정치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무지한 발언이다. 공화당의 승리는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근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날짜의 <뉴욕타임즈>는 "공화당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결국 민주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시가 추진하고 있는 영구 세금감면을 위해서는 상원 60명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공화당이 차지한 것은 이에 한참 모자라는 51석뿐이다.
선거 전문가인 찰스 존스(Charles Jones) 역시 이 사실에 동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공화당은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 간발의 차이 때문에 그들은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51석과 49석이란 큰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저헤럴드> 11. 7.) 게다가 대선의 시금석으로 간주되는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으로부터 두 개의 주를 빼앗아오기까지 했다.
다음은 <조선일보>의 강인선 특파원(insun@chosun.com)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