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지 않는 철도공안원들의 직무수행

MBC 뉴스데스크, 노숙자들 "짐승처럼 취급"을 보고

등록 2002.11.15 15:47수정 2002.11.1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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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숙인 폭행에 항의하는 1인시위

노숙인 폭행에 항의하는 1인시위 ⓒ 이주원

노숙인 김용현씨(46)와 이종관씨(41)는 "철도공안원이 뜨거운 물을 끼얹고 폭행 등 가혹행위를 했다"며, 한 시민단체에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이들 노숙인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10월 20일∼22일 사이에 철도공안원들에게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가. 삼청교육대가 만행을 저지르던 시절도 아닌데, 그 때나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범죄자는 흉악하고 잔인하게 생겼다는 선입관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본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얼굴은 평범했다. 노숙인 폭행범으로 지목된 철도공안원들도 흉악한 외모를 갖진 않았다. 오히려 온순해 보이는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

사건에는 분명 원인이 있는 법.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 노숙문화의 무질서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서울역에서 만난 한 노숙인은 "한쪽에서 노숙인들의 인권을 위해 시위를 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술에 취해 대짜로 뻗어 있는 노숙인들이 많다"며 "이런 시위가 오히려 멍석을 깔아주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노숙인들에게 군대 내무반 같은 질서를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현재 보여지는 음주, 고성방가, 청결하지 못한 외모 등은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노숙문화는 곧 공권력을 불러들이는 좋은 건수가 된다. 철도공안원 입장에서 볼 때 혐오스런 노숙인들의 대합실 이용은 막아야 하는 당연한 직무이다.


둘, 사회복지제도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우리 사회 사회복지 실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주거와 실업문제이다. 노숙인은 주거할 곳이 없고 혹 있더라도 실직으로 유지할 수 없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다. 노숙은 항상 폭력과 굶주림 등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두려운 일이다.


셋, 노숙인은 표가 안 되는 사회적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한 집단의 모아진 표가 집단의 힘이 되는 제도이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여성, 장애우 등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표를 가졌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소수자임에도 정치권에서 정책적 배려를 할 수밖에 없다.

노숙인은 다르다. 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전국 노숙인 표를 다 모아봐야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당락을 좌우할 수도 없는 표다. 그래서 여론의 관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a 추위에 몸 웅크린 서울역과 시민들

추위에 몸 웅크린 서울역과 시민들 ⓒ 이주원

철도공안원은 악마의 외모를 갖거나 악마적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더구나 가정으로 돌아가면 자상스런 아버지이자 믿음직한 가장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 이토록 반인권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목을 받는 것일까?

철도공안원들이 폭행을 했는지 안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추측건데, 그들의 생각 속엔 혐오감을 주는 노숙인들을 서울역 대합실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던 것 같다. 노숙인들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탈이 나지 않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더구나 사회는 일도 안 하고, 집도 없고, 혐오감을 주는 노숙인들에게는 약간의 관심조차 보이질 않았다.

철도공안원은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노숙인도 인간이라는 생각은 사치였다. 기계처럼 거리의 쓰레기들을 청소하면 그만이었다. 노숙인 폭행 사건의 주범은 생각하지 않는 맹목적인 직무 수행과 노숙인들의 사회적 조건이었다. 이런 현실이라면 폭행은 누구에게서도 저질러질 수 있다.

악은 평범하다.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우리는 되새겨 봐야 한다.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결코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사유하지 않음'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현재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여 조사가 진행 중이다.

덧붙이는 글 현재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여 조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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