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 리더십에서 민주적 리더십으로

<노무현의 리더십이야기>

등록 2002.11.21 15:33수정 2002.11.21 17:44
0
원고료로 응원
많은 사람들은 리더십(leadership)이란 말을 들으면 먼저 '카리스마'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오랜 동안 권위주의 사회에서 살아왔고, 강력한 힘에 의한 통치를 당연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환상도 그러한 권위적 사고를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정권 말기에 여지없이 터지는 집권 세력 주변의 부패한 행위들은 민주적 정통성을 지닌 세력들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그러한 분위기를 틈탄 과거 회귀적 세력들의 날뜀은 이제 도를 넘어서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을 조금만 달리 본다면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박정희 시대에는 집권 세력의 일부가 부정과 부패를 행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도 없이 용인되었지만, 이제는 권력자 주변의 그 어떠한 부정도 반드시 법적으로 처벌된다는 교훈을 남긴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다.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과거의 권위주의와 냉전적 사고로 되돌리려는 시도에 대해서 단호하게 맞서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권력자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용인해주었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형식적·절차적 민주화를 넘어 내용적으로 민주화의 실질을 채워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 책은 노무현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경험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던져주는 이유는 바로 노무현이 지니고 있는 원칙에 대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장관이란 직책은 그 동안 '군림하는 자'의 대명사였다. 권력을 지니고 있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자리. 그저 말썽이 생기면 사표를 던지고 훌훌 털고 나오면 되는 자리. 그리하여 한 번 장관이면 영원히 '장관님'으로 불리는 자리쯤으로 여겨졌다. 그가 장관 시절 무엇을 했는가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예전에 장관을 했다는 경력이 더 높게 치부되는 것이 여전히 하나의 풍토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자리'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도 항상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장관, 직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상사, 더불어 토론하고 설복시킬 수 있는 토론 상대였던 노무현의 면모가 이 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조직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행복한 리더'를 그려볼 수 있었다. 책의 앞부분에서 오석홍 교수의 권위적 리더십과 민주적 리더십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바로 민주적 리더십이었음을 토로하고 있다. 단지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철저히 체화된 형태로 실천했음을 노무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행정가와 CEO를 위한 8가지 리더십의 원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치인에게서 전문경영인의 마인드를 읽어낸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든지 힘(권력)이 아닌 신뢰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면,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들은 점차로 자신의 마음을 열게되어 있는 법이다. 해양수산부의 직원이었던 박광열의 지적처럼 처음에는 '힘센 장관'으로 생각했다가, 조직 속에서 접하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마침내 '우리 장관'으로 바뀌는 인식의 변화는 대단히 의미있는 것이다.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로 부하 직원을 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이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상사를 잠시나마 가졌다는 것도 아마 행복한 경험일 것이다.
노무현은 흔히 원칙이 있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노무현이 신뢰를 안겨주는 이유는 그가 지닌 원칙이 시세에 따라 변화되거나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단기필마로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어 오늘날 대통령 후보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항상 역사를 생각하는 자세로 자신이 지닌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도 기득권에 연연해하지 않는 그의 자세는 때로는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지만, 자신이 지닌 철학과 역사 의식에 진실한 자세를 보이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그를 흔들어도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그의 원칙이 많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위기처럼 보일지라도, 역사라는 긴 안목에서 보면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인기에 영합하는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뚜렷한 원칙을 지니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모습이 나에게 감동적으로 비춰진다. 특히 이 책의 8장인 '리더십과 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통일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진정 약 1억의 내수시장을 확보하여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지론은 진지한 성찰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맹목적으로 남북화해를 반대하는 냉전 세력이 엄존하고 있지만, 21세기의 한반도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 진정한 방안은 남북화해와 교류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독서 경험은 그 동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노무현의 철학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 개정판, 행정가와 CEO를 위한 리더십의 8가지 원리

노무현 지음,
행복한책읽기, 201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