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

<노무현의 리더십이야기>

등록 2002.12.07 14:12수정 2002.12.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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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책을 비교적 많이 읽지만 정치인이 쓴 책은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 그건 아마 정치인에 대한 불신, 우리 정치가 그간 보여준 모습에 대한 실망과 좌절, 분노 등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2년, 리더십과 관련하여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사람이 두 명 있다. 한사람은 월드컵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리더십과 지도력을 바탕으로 월드컵에서 1승도 올리지 못했던 한국을 우리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세계 4강에 올려놓은 축구 지도자... 그의 리더십은 단지 축구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부문에 스며들어 있는 각종 병폐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히딩크 학습 효과를 낳았다.


또 한 사람은 바로 노무현이다. 학벌도, 계파도 변변치 않은, 더구나 자신의 정치적 고향에서 4번이나 낙선을 한 정치인. 그러나 국민 경선을 통해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 지지율이 바닥을 쳤음에도, 후보 단일화로 자신의 지지율을 회복한 사람... 나는 그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했다.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노사모의 그 열정적 지지는 무엇 때문일까? 왜 국민들은 그에게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나는 이것이 노무현 한 개인의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한 현상이며, 시대적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알기 위해 자료를 뒤적거리던 중, '노무현의 리더십이야기'(행복한 책세상, 2002)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리더십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리더십이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단어들을 연상할까? 힘, 카리스마, 권위, 조직 장악력, 통솔력, 명령,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이런 것들이 아닐까? 더구나 젊은 시절 군복무를 했던 남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조직 폭력배들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우리 국민들의 리더십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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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리더십을 이야기하다

이 책은 진정한 리더십이란 힘과 권위, 통제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및 설득, 자유롭고 민주적인 인간관계, 상호신뢰 등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저자 노무현은 우선 상호 신뢰와 격려, 진실한 대화와 겸양의 자세를 리더의 덕목으로 꼽는다. 리더는 구성원을 신뢰하고 일을 맡기며, 구성원은 리더를 믿고 따를 때 리더십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다 실수했을 때 그 매는 내가 맞겠지만,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묻겠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또 서로간의 대화는 민주적 의사소통으로 이어져 조직의 활기를 불어 넣어주며, 이를 위해서는 리더 스스로가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관으로서 직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고, 장관에게 제공되는 여러 가지 의전 관례도 모두 생략하게 했다는 내용은 우리가 한번 되새겨 볼 만하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지금 어떠한지.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확신을 가지고 추진력 있게 일을 진행하는 것도 리더의 자질이라고 주장한다. 업무에 있어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감정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고, 일단 결정된 일은 자신 있게 추진한다는 내용을 읽고 보니 그동안 그리고 최근 그가 보여준 정치적 행동-파업 사태 중재, 당내 반대파에 대한 대응, 후보단일화 전격 수용과 협상, 의정부 여중생 사건에 대한 입장 정리 등-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공정한 일 처리와 원칙의 준수, 그리고 권한의 위임과 이양 등을 통해 구성원들로 하여금 일할 의욕을 갖게 하는 것도 리더십의 요건임을 강조한다. 자신에게 들어온 청탁을 담당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거절하면서 "장관이래 봤자 원칙 앞에 무슨 힘이 있겠느냐"라고 했다는 대목은 우리 사회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지 작은 감동을 준다. 장관이지만 자신은 국장급 인사까지만 하고, 그 이하는 중간 관리자들에게 맡겼다는 부분은 권한 위임을 통한 책임감의 강화이자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탈피일 것이다. 또 노무현에게 리더십이 있는가? 당을 장악할 힘이 있는가? 등의 의문에 대한 간결한 답변이 되는 셈이다.

전문성의 확보를 위한 노력, 적극적인 설득과 홍보, 자율적 분위기 조성도 리더가 갖추어야 할 사항임을 주장한다. 장관으로서 직접 현장에 다니면서 우리나라 수산업에 대해 배우고, 수산물 생산의 감소에 따른 자율관리형 어업의 필요성을 어민들에게 설득하여 마침내 이를 이루어 낸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또 구성원들이 주인 의식과 일할 의욕을 갖게 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리더십의 내용임을 강조한다.


책의 뒷부분은 저자의 정치적 비전인 동북아 시대에 관한 내용과 시사평론가 유시민의 글이다. 네가티브 정책과 반DJ만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별다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어느 후보보다는 훨씬 신선해 보인다. 또한 최고의 평론가라고 알려진 유시민은 지금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과 우리 사회 분석에 관한 명쾌한 해석을 제시하여 이 책의 즐거움과 의미를 더해 준다. 책을 읽으며 접하게 되는 우리나라 수산업의 당면 문제나 현황은 좋은 공부거리이고, 바다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각인 시켜준다.

일제 식민 통치도, 군사 독재도 끝났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와 군사 독재의 망령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있다. 형식적, 제도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냈으나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루지 못한 감이 있다. 경제 성장과 이에 따른 도덕적, 가치적 함의를 이끌어낸 서구 사회와 자생적 근대화가 차단되고 식민지 지배와 개발 독재를 체험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 유산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우리 사회와의 차이점이 가져온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리더십에 익숙해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간 높은 경제 성장과 이로 인한 다양성의 증가로 인해 획일적인 통치가 어렵게 되었을 정도로 변했다. 기존 매체의 영향력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잠식하고 있다. 3김으로 대표되는 지역주의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세계정세는 급변하고 있으며 냉전적 분위기와 전쟁의 위협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 보인다. 과연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민주적, 수평적, 개방적 리더십이다. 갈등과 대립을 토론과 대화, 설득으로 해결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다양한 의견과 사상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성숙된 리더십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30여명의 학급을 관리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나는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이러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가? 내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보여준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 책은 리더의 역할을 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 없이 한번쯤은 읽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새만금 간척 사업이나 한일어업협정 문제 등에 대해 저자가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입장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저자 노무현이 책에서 인용한 노자의 말을 이 글의 끝으로 장식하고자 한다.

"강과 바다가 수백 개의 산골짜기 물줄기의 복종을 받는 이유는 그것들이 항상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면 그들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그들보다 앞서기를 바란다면 그들 뒤에 위치하라. 이와 같이 사람들의 뒤에 있을지라도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며, 그들보다 앞에 있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 개정판, 행정가와 CEO를 위한 리더십의 8가지 원리

노무현 지음,
행복한책읽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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