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두 딸이종찬
지난 주 목요일이었던가. 사무실 식구들끼리 식당에서 점심을 마악 먹으려던 참이었다. 서울 일산에서 내려온 문 선생이 계속 콜록거리면서 인상을 있는 대로 다 찌푸린 채 식탁에 앉았다. 감기가 걸린 데다 어금니까지 솟구쳐 아파 죽겠다고 했다. 그리고 밥이 나오자마자, 벌떡 일어나 빈 그릇에 찬물을 받아와 밥을 말더니, 이내 후루룩 후루룩 그냥 삼키듯이 밥을 먹고 있었다.
"당신들도 나이 들어보라니깐. 한 해 다르고, 하루가 다르게 어떻게 몸이 달라지는지를."
"나~원~참. 칠십 먹은 노인 앞에서 회갑도 안 지난 사람이 얼마나 늙었다고..."
"어어~ 인제는 밥도 제대로 못 먹네~ 삐뽀삐뽀(응급실)로 보내야 되는 거 아냐?"
"삐뽀삐뽀는 무슨? 괜히 급한 환자들 기다리게 하지말고, 곧바로 중환자실로 보내야지"
그 얘기를 나눈지 불과 이틀이 지났을 때였던가. 한창 글을 다듬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번씩이나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누가 내 컴퓨터 속에 고춧가루를 뿌려놓았지? 문 선생이 그러셨나? "라는 농담까지 했다.
"에~에취! 에~에취!"
"킥킥킥! 거 봐? 어른을 마구 놀려먹으니까 금방 죄를 받잖아"
"에~에취! 에~에취!"
"그래, 감기야! 이제야 니 집을 제대로 찾아냈구나. 그 젊은 실장님은 아직 몸이 건재하여, 매일 같이 막걸리도 잘 드시니, 이번에 한번 아주 단단히 혼내 줘~라이"
애써 해바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재채기는 정확하게 두 번씩 연이어 너댓 번 더 계속해서 나왔다. 그리고 이내 맑은 콧물이 주르륵 흘러 바지 위에 툭, 떨어졌다. 마치 눈물방울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문 선생 말마나따나 진짜 감기에 걸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후 내내 잊을 만하면 두어 번씩의 재채기가 계속되더니, 저녁때가 되자 확실한 감기 환자가 되고 말았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맑은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 책상 위에 놓인 휴지 한통이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오한이 들기 시작하면서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몸서리가 일어나면서 온몸에 닭살이 마구 돋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어찌나 춥고 떨리던지 내가 나를 자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그날 저녁에도 막걸리 2병을 사러 갔다. 날씨가 몹시 추웠지만, 오한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당시 내 생각으로는 이런 때일수록 막걸리를 두어 병 마시고 일찍 푹 자고 일어나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제까지 감기에 몇 번 걸린 적은 있었지만 약을 사먹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감기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결국 그 좋아하던 막걸리를 반병도 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불 속으로 포옥 기어들 수밖에 없었다. 막걸리 몇 잔을 거푸 마셔도 오히려 더 추웠기 때문이었다. 아니, 춥다기보다 온몸이 저절로 덜덜덜 떨리는 것이었다. 방문 바로 옆에 있는 그 가까운 화장실에조차 가는 것도 매우 귀찮았고, 또 그렇게도 멀리 느껴져진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러니까 주말 아침이었다. 밤새 계속되던 오한과 발열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목소리까지 변하기 시작했다. 기침은 계속해서 나왔고, 기침이 나올 때마다 나는 마치 쇳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은 머리가 심하게 울렁거려, 이마에 손을 대고 겨우 기침을 했다. 콧물은 이제 시도 때도 없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어지러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까닭 없는 짜증이 일었다. 억지로 오전 업무를 마친 나는 오후가 되어 서둘러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빠져나와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마산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올랐다. 나는 집이 직장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주말이 되어야 집에 한번 다녀올 수 있는 처지다.
"오데고?"
"지금 가고 있습니다"
"그래 조금 뒤에 보자"
'환경시인''통일시인''창동허새비'도 모자라 올해 들어 '마산의 문화재'라는 대명사가 하나 더 붙은 이선관 시인의 전화였다. 이선관 선생님과의 이런 만남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매주 주말이면 나는 미리 정해진 약속이라도 지켜야하는 것처럼 '큰대포' 란 간판이 붙은 그 선술집에서 이선관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문학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호부는?"
"오늘 무슨 바쁜 일이 있어 어디 가신답니다"
"그으래? 무슨 일인데?"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말의 만남에는 늘 김호부 선생님도 함께 했다. 김호부 선생님도 한때는 학보사 편집국장을 하면서 시도 쓰고 산문도 많이 쓰신 분이었다. 하지만 김호부 선생님은 여러 가지 다른 뜻이 있어 본격적으로 문학판에 뛰어들지 않은 분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어느 곳보다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냄새가 나는 문학판이 자꾸만 기웃거려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미리 독감주사를 맞았다 아이가"
"에~에취! 에~에취! ...잘하셨습니다. 선생님! 이번 독감은 아주 지독한 것 같습니다"
"니 알제?"
"아, 예."
"그 사람이 나보고 미리 독감주사를 맞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아이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맞았는데... 역시."
그날도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나는 막걸리 두 되 정도를, 이선관 선생님은 맥주 세 병 정도를 마셨다. 그리고 '큰대포' 집 가까이에서 열리고 있는 '장애인돕기' 행사에 가서, <철부지> 식구들인 작곡가 고승하 선생님과 남기용, 정종명 선생님을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감기약을 사가지고 그리운 집으로 향했다.
"이제 와요?"
"아빠아~"
"아빠아~"
"아직까지도 안 자고 아빠를 기다렸어?
"아빠가 있어야 잠이 잘 와"
"근데, 자기 감기 걸렸어요?"
"응"
"약은?"
"응, 저기 사왔어"
일순간 아내의 얼굴에 근심이 감돌았다. 하지만 나는 약간 취해 있었다. 큰딸도 감기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대충 흘려 들으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갑자기 술기운과 감기 기운이 한꺼번에 올라오는지 몹시 어지럽고 피곤했다. 그래서 마산의 어느 약국에서 사 온 그 약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 내 곁에서 예쁘게 자고 있던 작은 딸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겨드랑이가 약간 가려웠다. 머리에는 마치 투구를 쓰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콧물과 재채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잔기침이 자주 나왔다. 나는 찬물을 한 컵 마신 뒤, 아침식사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빠! 무슨 코를 그리도 많이 골아? 어젯밤에 우리 집이 내려앉는 줄만 알았어"
"아빠는 코를 골지 않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아빠 곁에 내가 없지?"
"응"
"너무 시끄러워서서 잠을 통 잘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작은 방에 가서 잤어"
아내는 벌써 직장에 나가고 없다. 아내가 다니는 직장은 백화점 매장인지라 일요일이 없었다. 나는 아내가 끓여놓고 나간, 아내의 따스한 정이 담긴 된장국을 퍼담았다. 그래, 늘 미안하기만 했다. 내가 사업에 실패한 뒤로부터 아내는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 한동안 나는 밖으로만 떠돌아 다녔고, 모든 가정사는 아내의 몫이 되었다.
"하이고, 지지리도 못난 이 넘의 팔자야~" 라는 혼잣말을 지껄이며, 아침을 조금 먹은 뒤 또 그 약을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 있는 것이었다. 아차, 그 약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실수였다. 아까 겨드랑이가 약간 가려웠을 때 좀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날 저녁이 되자, 두드러기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워, 아이들과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그 약은 당연히 먹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밤새도록 갈증이 나서 거의 10여분 간격으로 일어나 물을 마셔야 했기 때문이었다.
월요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게 누군가? 얼굴이 퉁퉁 부어 오른 것은 물론 눈덩이까지 퉁퉁 부어 아예 눈이 찌그러져 있지 않은가.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마치 물에 불은 것처럼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머리는 무거운 쇳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하 내 참, 미치것네. 하필 월요일에 이럴 게 뭐야?"
"아니, 그러면 그래 가지고 직장에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예요? 아예 꿈도 꾸지 말고 어서 병원에나 가 봐요"
"눈만 안 찌그러져 졌어도... 미치것네, 미치것어"
"거 보세요? 보약 좀 지어 먹자고 그렇게 말을 해도 안 듣더니만... 자기가 아직도 청춘인 줄 착각하는가 봐"
할 수 없었다. 일단 직장에 전화를 하여 이러이러한 일로 하루 쉬어야겠다고 말한 뒤, 나는 서둘러 가까운 병원에 갔다. 그 눈이 찌그러진 이상한 얼굴로 말이다. 하지만 병원을 찾은 환자들과 간호사들은 아무도 나를 이상스럽게 쳐다보지 않았다. 물론 나는 나의 그 초라한 몰골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될 수 있는 한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아, 네. 어제 아침부터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약을 먹고 부작용이 일어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을 먹고 나서부터 이렇게..."
"일단 하루치에 해당하는 약을 처방할 테니까, 내일 다시 오세요"
그렇게 주사 두 대를 맞고, 의사가 처방한 약을 사서 실직자처럼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악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귀찮았다. 하지만 나에게 오는 전화를 어찌 받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병원에 갔다 왔어요?"
"응"
"그래, 상태가 어떠하데요?"
"괜찮대. 근데 내일 또 오라던데?"
"기왕 쉬는 김에 하루 더 쉬세요. 자기가 아프다고 그러고 있으니까 마음이 고되서 어디 일이 제대로 손에 잡혀야지. 그리고 보일러 온도계 손대지 말고, 따뜻하게 누워 있어요?"
아내의 전화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수시로 걸려왔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내가 "왜?" 라고 물으면 "왜긴 왜야? 기둥뿌리가 드러누워 있으니까 걱정이 돼서 그러지" 라며 "그래도 마누라가 이렇게 생각해줄 때가 봄날인 줄 아세요" 라고 덧붙였다. 그래, 역시 아내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내는 또다시 전화를 했다. 조금 늦는다는 전화였다. 당시 나는 그 약간 늦는다는 전화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약간 짜증이 일었다. 사람이 아프다고 드러누워 있으면 열 일을 제쳐놓고서라도 일찍 들어와야지, 무슨 일이기에 늦는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서운하기까지 했다.
"몸은 어때요?"
"훨씬 나아졌어"
"좀 괜찮아요"
"응, 두드리기도 많이 사라졌어."
"이거 드세요"
아내가 차려준 것은 싱싱한 모듬회였다. 보기만 해도 침이 저절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제서야 나는 아내가 약간 늦는다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하필이면 오늘 친구의 생일 초대를 받았는데, 초대장소가 마산 어시장에 있는 횟집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옳거니 싶어, 그 싱싱한 모듬회를 나를 위한 몸보신용으로 사왔던 것이었다.
"고기가 싱싱하고 너무 좋아요"
"두드러기가 있는데 먹어도 괜찮을까?"
"체~ 누가 그걸 몰라서 사 온 줄 알아요?"
그랬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거울 속의 내가 다시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겁던 머리는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었고, 잔기침만 약간 나올 뿐이었다. 또 몸에도 두드러기가 가라앉은 울긋불긋한 흔적들만 약간 남아 있었을 뿐, 그 지독한 독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모듬회 한접시 속에 담긴 아내의 사랑이 내게 찾아든 그 지독한 독감을 아주 멀리 쫓아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로 나는 또다시 아내의 곁을 떠나 일주일간을 머무를 직장으로 출근할 수가 있었다. 그래, 나는 이제 모듬회를 바라보면 그 모듬회 한 접시 속에 담긴 아내의 그 따스한 그 사랑을 계속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꽃보다 가장 아름다운 꽃
사람 꽃이여
너와 내게 주어진 이 길
걷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걸어가지는 이 길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다정한 동무여
아름답고도 영원한 우리들의 사랑이여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