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이야기 (16) - 로즈메리의 아기

공포소설에 대한 몇가지 생각

등록 2002.12.09 09:58수정 2002.12.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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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공포물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초자연적인 현상에 기인하는 공포와 인간의 이상심리로 인한 공포가 그것이다. 이런 공포물의 분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상은 첫째로 영화를 꼽을수 있다.

즉 이런 차이는 할리우드의 공포물과 한국의 공포물들과의 차이에서 일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의 공포물들은 은원관계가 확실하고 한을 품은 귀신(주로 여자)이 등장해서 그 대상을 하나씩 처치하는 구조인데 반해서, 할리우드의 공포물은 사이코 살인마가 별 이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는 설정이 많다.


또 한가지 차이를 들자면, 한국의 공포물들은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배경을 장식하는 효과음이나 음산한 분위기의 화면 등으로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할리우드의 그것은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피로 범벅이 된 화면을 통해서 공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분류는 소설에도 적용될수 있다. 초자연적인 공포를 다룬 소설들은 아이라 레빈의 <로즈메리의 아기>를 포함해서 스티븐 킹의 여러작품들과 스즈키 고지의 <링> 등이 있고, 이상 심리로 인한 두려움을 그린 작품들은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나 로버트 블록의 <사이코>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을 포함한 몇몇 작품 등을 들수 있다.

두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단순한 공포라기 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악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로 보는 것이 좀더 타당할지 모른다. 또한 초자연적 공포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었던 <퇴마록>도 첫째 부류에 속할 수 있다.

아이라 레빈은 대단히 영리한 작가이다. 그는 몇 안되는 작품을 남겼지만 그 작품들은 모두 소재의 독특함, 구성의 탄탄함과 결말부분의 반전까지 소설을 읽는 재미를 음미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그의 처녀작인 <죽음의 키스>를 포함해서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로즈메리의 아기>는 모두 이런 그의 특징들이 잘 나타난 작품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이라 레빈은 어떤 소재로 어떻게 글을 쓰면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수 있는지를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순수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물론 그가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는 추리소설의 황금기가 지나고 고전적인 추리소설들이 쇠퇴해가는 시기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라 레빈이 가진 재능이 그로하여금 그때까지의 추리물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았을까.

신분상승을 바라는 한 청년의 범죄를 그린 <죽음의 키스>, 인간복제의 기술로 나치부활을 꿈꾸는 잔당들의 음모인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그리고 <로즈메리의 아기>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악마을 숭배하는 몇몇 사람들과 그들의 음모로부터 자신의 아기를 지키려는 로즈메리의 갈등과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 초중반에는 사건의 전개가 빠르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에 필요한 몇몇 복선을 제시하고 있다.


초반의 전개가 빠르지 않지만 이런 복선의 정체가 궁금해서라도 작품에서 손을 떼기가 힘들다.

이런 복선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하는 것은 중반 이후. 로즈메리는 독특한 직감과 추리를 통해서 복선의 정체를 하나하나 꿰어 맞추기 시작하며 실체에 접근해가고 도주와 추적을 거쳐서 악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부분인데 복선의 정체를 따라가는 과정이 어느 추리물 못지않게 재미있다.

<로즈메리의 아기>는 괴기 또는 공포물로 취급될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르의 소설도 우리나라에서 푸대접 받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유는 무얼까?

이전부터 공포나 혐오 또는 성적인 흥분등의 직접적인 육체적 반응을 유발시키는 텍스트는 저속하다는 선입견 때문일것이다. 그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는 마광수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양이 텍스트를 통해서 무언가를 얻거나 배우려는 훈민(訓民)문학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들을 읽을 땐 소위 고전문학을 읽을때와 같은 커다란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탈 때와 같은 짜릿함, 그런 짜릿한 재미를 책을 읽는 몇시간동안 느낄수 있다면 그것으로 얼마든지 만족할수 있다. 또한 덤으로 인간의 심리와 환경을 둘러싼 행동과 반응들을 간접체험할수 있다면 금상첨화일것이다.

최근에는 판타지 소설과 판타지 영화가 유행하면서 3대 장르 문학(추리, 판타지, 무협)에 대한 담론들이 많이 생성되고 있다. 이런 담론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까? 풍부해지는 담론들 속에서 장르문학의 위상들도 재정립될수 있기를 바란다.

로즈메리의 아기

아이라 레빈 지음, 최운권 옮김,
해문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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