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씨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산골마을로 이사 온지 벌써 두 해가 넘었다. 버섯재배와 다랑논 몇 마지기가 생계를 꾸려가는 전부였다. 고달픈 귀농생활이었지만 버섯 작황이 좋은 탓에 저축도 하면서 조금씩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꼭, 다람쥐꼬리만큼이나 행복을 맛보고 있을 즈음에 덜커덕 걱정거리 하나가 생겨났다.
초등학교 일 학년인 상훈이가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웃음까지 잃어갔다. 워낙 작은 동네인지라 또래 아이들은커녕 같이 놀아줄 형이나 누나도 없었다.
다니는 학교도 꽤나 멀리 떨어져 있어 학교가 끝나면 곧장 들길을 걸어 집으로 와야 했다. 상훈이는 텔레비전 앞에 오래 앉아 있거나,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산골에서 외톨박이로 자라야 하는 상훈이를 생각하니 장수씨의 가슴은 시리도록 아팠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훌훌 털어버리고 도시로 나갈 처지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상훈이가 노란 벼를 쪼는 참새들처럼 재잘거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걱정만 쌓여 갔다.
어느 날 밭에 두엄을 뿌리다가 벼가 노랗게 익은 다랑 논길을 걸어오는 상훈이를 보았다. 그런데 상훈이는 논가에 외롭게 서있던 허수아비 앞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허수아비를 만지작거리며 뺑글뺑글 돌다가 한참 지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장수씨는 상훈이의 가방을 빼앗듯 받아 들고 시침을 딱 떼고 물었다.
“아니, 상훈이 너,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늦었니?”
“네에, 집에 오는 길에 친구를 만나서 놀다 왔어요.”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했으나 조금 있다가 살짝 그 허수아비 곁에 가보기로 하였다.
상훈이 몰래 허수아비를 찾아 본 장수씨는 깜짝 놀랐다. 허수아비 손에는 여러 가지의 상훈이 물건들이 쥐어져 있었다. 금방 쥐어준 듯한 막대사탕이 조금 녹아있었고 몽당연필과 뽑기 장남감 로봇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짧으면서 삐뚤삐뚤하게 쓰인 작은 쪽지편지들이 주머니에 가득 들어있었다. 상훈이는 또래 친구들이 없어 허수아비를 친구삼아 놀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장수씨 눈에는 싸한 눈물이 아려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산골마을의 오솔길에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허수아비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산기슭 고추밭엔 야구방망이 든 허수아비가, 키 작은 밤나무 곁엔 말괄량이 삐삐도 보였다.
그리고 코스모스 길가로는 어깨동무를 한 허수아비도 보였다. 금세 상훈이 학교 가는 길은 우스꽝스러운 허수아비 길로 변하였다.
허수아비가 하나 둘 몰래몰래 늘어나면서 상훈이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힘아리 없던 발걸음이 훨훨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달빛처럼 차갑던 얼굴에 화사한 꽃물이 들기 시작하더니 들판의 참새보다도 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상훈이가 해맑은 얼굴을 되찾고 까치밥이 하나둘 생겨나는 늦가을에, 허수아비에게 몰래몰래 겨울옷을 입히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의 장수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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