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대' 함성, 대구땅을 뒤덮다

'1만 대구경북 시도민 평화대행진' 시민-청소년 수천명 참석

등록 2002.12.15 20:32수정 2002.12.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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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승욱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의 함성이 한반도를 흔들어놓던 14일, 대구에서도 예외 없이 '미국 반대'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대구경북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주관한 '1만 대구경북 시도민 평화대행진'이 14일 오후 4시부터 대구시내 한 복판인 대구백화점(대백) 앞과 미군기지인 '캠프워커'(남구 대명동) 후문 앞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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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평화대행진 행사에는 근래에 보기 힘든 집회 참석인원인 8000여명(경찰추산 - 대백 앞 3000명, 캠프워커 앞 6000명)의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청소년, 일반시민들이 참여해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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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백 앞에서 열린 본행사에서 연설을 한 정학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지금 우리는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장갑차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된 두 여중생의 인류를 향한 울부짖는 절규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여러분 가슴마다 뜨거운 분노의 함성에는 조국의 어린 딸의 피비린내로 얼룩져 있다"고 말해 시민들의 분노를 대변했다.

이날 본행사에서 노래공연을 한 가수 박성환씨는 이제는 시민들의 귀에도 익숙한 'Fucking USA'와 '자유', '광야에서' 등을 불러 시민들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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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대구 컨템퍼러리 무용단이 '그녀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의 무용을 선보이기도 했고, 대구YMCA 회원들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곡에 맞춰 수화공연을 시연했다. 또 민예총 대구지회 풍물굿 분과에서는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위령굿'을 벌이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공연 외에도 이날 본행사에는 시민들의 대표해 청소년, 수녀, 시민 등이 '자유발언대' 코너에 참여, 직접 두 여중생과 관련한 자신들의 진솔한 느낌을 시민들에게 들려주는 행사도 진행됐다.


이날 청소년을 대표해 나온 이수연(간디중 2년)양은 "효순이와 미선이는 죽지 않았어요. 우리들의 마음 속에 기억되는 한 효순이와 미선이는 살아 있는 거예요. 우리들은 결코 효순이, 미선이를 잊지 않을 겁니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피울음이 하늘을 뚫고 내려와 우리들 마음속에 울림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 이 양은 숨진 두 여중생에게는 "너희들에게 너무 미안해. 하늘나라에 있는 너희가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잘 살아줘, 우리 몫까지'라며 속삭이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 너희들은 우리들의 촛불이 되었고 미국이 진심으로 사과할 때까지 그 촛불을 끄지 않을게"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고 심미선 양의 친오빠 심규진(19)군
고 심미선 양의 친오빠 심규진(19)군오마이뉴스 이승욱
한편 이날 본행사에는 멀리 의정부에서 대구까지 찾아온 고 심미선양의 친오빠인 심규진(19)군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무대에 오른 심군의 이야기에 일부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노래패 '소리타래'의 공연 도중 '깜짝' 출연한 심군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전화를 해 사과를 했다는 소식에 그나마 위로를 받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소파(SOFA)가 개선이 아닌 개정이 되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며 이것이 해결된다면 동생의 죽음은 억울한 죽음이 아닌 의로운 죽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군은 행사 참석자들에게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진심으로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심군의 이야기가 끝나자 소리타래와 시민들은 '아침이슬'을 함께 불러 심군의 감사 인사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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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가량 진행된 대백 앞 본행사는 끝을 맺고 오후 6시부터는 집회 참석자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미20지원단 소속 부대인 남구 대명동 캠프워커 후문까지 약 1시간 가량 평화걷기대행진을 시작했다.

특히 이날 본행사장이 협소해 대백 앞으로 미처 모이지 못한 일부 시민들은 반월당네거리에서부터 시작된 거리행진에 뒤늦게 결합해 시간이 갈수록 거리행진 참석자들의 수는 늘어났다.

거리행진에 참가한 시민·청소년들은 쉬지 않고 '살인자 처벌' '부시 사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열기를 더 높였다. 또한 거리행진을 지켜보는 일부 시민들도 주변 상가건물이나 인도에서 박수를 치고 '화이팅'을 외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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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행사는 고사리 손을 한 어린이부터 장애인과 노년층까지 대거 참석해 이번 두 여중생 사망사건이 계층과 연령을 뛰어넘어 전 국민적인 관심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줬다. 이날 행사에는 숨진 여중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청소년들이 다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학교 선생님이 소개해줘 평화대행진에 참석했다는 이효선(성명여중 3년)양은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가엾다"면서 "소파가 빨리 개정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가족들과 함께 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이영범(중 1)군은 "만약 이런 일이 계속 생긴다면 나 자신도 언제 이런 사건을 당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일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또 조형수(상인초 6)군은 "학교 선생님이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온다면 집회에 같이 참석해 주겠다고 해 친구들과 함께 평화대행진에 참여했다"면서 "6월 사고가 생겼을 때부터 이번 사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무심코 넘어었는데, 최근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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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워커 후문에 도착한 시민들은 후문 앞 왕복 6차선 도로를 가득 채웠고 경찰들은 이 주변도로에서 차량의 출입을 통제해 행사는 원활하게 진행됐다.

시민들은 이날 캠프워커 후문 앞에서도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와 소파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며 오후 8시까지 행사를 벌이고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친구들 서명은 받았는데 모금은 못해서..."
대책위 관계자들이 전하는 '열띤' 시민들의 참여

14일 ‘1만 대구경북 시도민 평화대행진’을 성황리에 끝낸 여중생 사건 대구경북 대책위 관계자는 이날 밤 식사를 겸해 뒷풀이 자리를 가졌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연일 이어졌던 행사 준비 탓에 모두들 지친 상태였지만 이날 열린 평화대행진에 보여줬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에 대한 이야기들로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음은 대책위 관계자들이 전하는 시민들의 반응이다.

1. “한 여중생은 얼마 전 직접 대책위를 찾아 받아간 서명용지를 채우고 와서 대책위에 전달했다. 하지만 서명용지를 전해주는 학생의 손이 머뭇거렸다. 그 여중생의 이야기 인 즉 서명은 받아왔지만 모금은 따로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2. “40대 중반의 한 신사가 무대 뒤에 마련된 모금함에 발걸음을 멈추고 처음에는 지갑에서 1만원짜리 지폐를 내놓고 나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 중년의 신사는 이내 다시 돌아와 1만원짜리 지폐 2장을 다시 내놓고, 또 주저하다가 다시 지폐 2장을 꺼내 모금함에 선뜻 기부했다.”

3. “대책위에서 양초를 준비하긴 했지만 수는 참석자들에게 모두 돌아가는 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변 가게에서 양초를 사 오는가하면, 한 아주머니는 ‘초를 사오지 않아 미안하다’라며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2만원의 돈을 건네주기도 했다.”

4. “거리행진이 시작되고 행사 소식을 뒤늦게 듣고 달려온 여중생들이 ‘어떻게 가면 되느냐’고 묻기에 ‘늦었으니 지하철을 타고 가라’고 했지만 여중생들은 ‘꼭 거리행진에 동참하고 싶다’고 사정해 후발팀을 따로 꾸려 거리행진에 참석하게 했다.”


한편, 대책위 관계자들은 이날 행사에 대한 내부평가를 16일에 가지기로 했다. 또한 이날 평화대행진으로 '투쟁'을 마무리하지 않고, 오는 31일 촛불시위 등 향후 행사준비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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