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나오라 그래 나 막국수> 가게 이름이 재미이최성수
그는 바쁜 농사철이면 잠시 가게를 비우고 뼈 전골이나 곱창 전골을 오토바이에 싣고 농사짓는 친구를 찾아 상안리 골짜기까지 소주를 마시러 달려오기도 한다.
꽁지머리에 뽀오얀 얼굴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살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그는 이곳 생활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단다.
"요즘 같은 겨울철이면 농사짓는 사람들 걱정이에요. 일거리도 없고, 그렇다고 농사지어 남는 것도 별로 없고…. 전에는 그래도 우리 가게에 와서 술도 마시고 놀다 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횡성이나 원주로 겨울 일거리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마을이 빈 것 같거든요."
그런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사실 그는 안흥 사람은 아니다. 인천 어디서 도회물 먹어가며 이런 저런 일로 젊은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슬쩍 비치는 말로는 디스크 자키도 했다고 하니, 이런 농촌의 삶과는 동떨어진 나날을 살았던 게 분명하다. 그런 그가 어느 해 짐 싸들고 들어와 터 잡기 시작한 안흥에서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게다.
횡성은 산도 가로 가고, 강도 가로 가고, 사람도 가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배타적인 성격이 강한 지역이다. 일제 시대에도 개성과 더불어 일본 사람들의 상권이 견뎌내지 못했던 지역 중의 하나였다. 그 중 안흥은 특히 박정희 정권 때부터 선거마다 여당이 번번이 패할 정도로 반골의 성향을 지닌 곳이니, 외지인인 그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젠 친구도 생기고, 이곳 사람으로 대접 받으며 살 만 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이 더 없이 맑고 순하다. 그러나 막국수 얘기가 시작되면 그의 자부심은 바로 안흥 사람 그대로다.
"우리 집은 봉평 1등품 메밀만 갖다 써요. 막국수의 생명은 면과 육수거든요. 육수도 꼭 양지 살만으로 우려내지요. 인공 감미료는 절대 사절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더없이 단호하다. 8-9종의 야채를 넣고, 비법 중의 하나라는 사과를 함께 넣어 우려낸 육수는 시원하면서도 담백하고 상큼하다.
나는 고향에 내려갈 때면 이 집을 자주 찾는다. 올 해 일곱살이 된 늦둥이 녀석도 이제는 이 집 막국수에 입맛이 길들여졌는지, 막국수 먹자고 하면 먼저 소리를 지르곤 한다.
"나 막국수 집에 가자!"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반죽하여 직접 뽑아주기 때문에 더 맛있는 집, 우리 늦둥이 같은 아이들이 오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들 것은 덤으로 한 그릇 내올 줄 아는 여유가 있는 집이 바로 <나 막국수>집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겨울에는 막국수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맛 때문이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