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판'한 이유로 퇴학 처분?
용화여고 학생 '부당 징계' 논란

학교측, "충분한 소명 기회 부여… 개전의 가망 없다고 판단"

등록 2003.01.07 22:25수정 2003.01.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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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여고 2년생 허모양이 '학교 비판'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용화여고에서 퇴학당하자 일부 교사들과 전교조, 시민단체들이 부당 징계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시위에 들어갔다. 사진은 지난 3일 용화여고 교문 앞에서 벌어진 집회 모습.
용화여고 2년생 허모양이 '학교 비판'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용화여고에서 퇴학당하자 일부 교사들과 전교조, 시민단체들이 부당 징계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시위에 들어갔다. 사진은 지난 3일 용화여고 교문 앞에서 벌어진 집회 모습.사립북부지회
서울 소재 한 여학교가 교육청 홈페이지에 학교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학생에게 '퇴학' 처분을 내려 교사와 학생,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 용화여자고등학교(교장 목승균) 학생선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6일 이 학교에 다니는 허모(17)양이 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학교와 교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어 학칙 제10조를 적용, 퇴학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노원시민모임 등 10개 단체들이 '인권 침해'라며 즉각 '용화여고 학생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해 허양에 대한 '징계 철회'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체벌, 감시, 성추행' 등 문제제기에 '명예훼손' 퇴학

이번 사건이 시작된 것은 허양이 지난해 4월 12일부터 24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교육청 홈페이지에 강제 자율학습과 청소용역비 징수, 교감의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다.

허양은 이 글에서 "(교사가)학생을 무자비하게 때린다"거나 "투명창으로 감시한다", "교감도 싫다, 왜 자꾸 만지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불만을 털어놨다.

이처럼 허양의 글이 잇따라 오르자 교육청은 허양의 글을 비공개로 바꿨고, 같은 달 30일 용화여고 박모 교감은 글의 게시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의 조사를 맡은 도봉경찰서 담당경찰관은 게시자가 허양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허양은 곧바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북부지청 검사는 지난해 7월 "사안이 비교적 경미하고 그 동기에 참작할 바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2학기에 허양이 아닌 용화여고의 다른 학생이 교육부, 여성부, 교육청 등에 "교감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사태는 다시 커졌다. 진정을 제출한 A양은 허양과 평소 절친한 친구 사이. 서울시 교육청은 이 진정서 내용을 조사하기 위해 용화여고에 따로 조사팀을 보냈다.

하지만 A양은 얼마 뒤 진정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번복했고, "친구를 도와주려고 진정서를 냈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다시 올렸다. A양이 왜 당초의 주장을 뒤집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때문에 허양은 다시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A양을 만나 경과를 알아보려던 허양은 오히려 A양이 '진정서 번복'을 하지 못하도록 협박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이런 사건이 이어지면서 용화여고 학생선도위원회는 2학기 개학 이후 다섯 차례의 선도위원회 회의를 열고, 결국 허양을 최종적으로 '퇴학' 처리했다. 진정서를 올렸던 A양은 허양과 다르게 '특별교육' 처분을 받아 '형평성' 논란과 함께 진정서를 번복한 배경에도 의혹이 일고 있는 상태다.


대책위, "학생 형사고발, 자퇴 요청해도 퇴학처분… 교육마인드 있나"

허양의 징계를 두고 현재 양측의 의견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학교측은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허양과 일부 교사들은 "부당한 징계"라고 맞서고 있다.
허양의 징계를 두고 현재 양측의 의견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학교측은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허양과 일부 교사들은 "부당한 징계"라고 맞서고 있다.사립북부지회
현재 허양의 가족들과 대책위는 학교의 이러한 '퇴학 처분'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선도위원회가 '퇴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용화여고에 재직하며 대책위에 참가하고 있는 송관의 교사는 "단지 학교와 교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해서 18살 학생의 학습권을 박탈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어떻게 학교가 학생을 형사고발하고 처벌할 수 있느냐"며 "도대체 교육마인드가 있는지, 같은 교사로서 부끄럽다"고 밝혔다.

그는 또 "허양이 퇴학 직전 자퇴를 요청했으나, 학교에서는 이를 묵살하고 퇴학을 시켰다"며 "이 때문에 허양은 내년도 검정고시조차 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진학 등이)한 해 늦어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대책위는 선도위원회가 허양의 퇴학을 결정하면서 내세운 학내 규정이 자주 바뀌었으며, 최종 사유와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고 밝혔다. 퇴학 조치 이전에 충분한 상담과 지도가 없었고, 곧장 퇴학을 결정한 것도 관례에 벗어난 일이라고 대책위는 지적했다.

이와 관련, 허양의 작은아버지 허희녕씨는 "처음에는 기소유예로 유죄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퇴학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품행이 불량하고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퇴학이라고 했다"며 "평소 성실하게 생활해 온 조카가 품행이 불량하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허양은 여고 1, 2학년을 거치면서 2년 동안 연속해서 학생회장을 맡는 등 학우들로부터 비교적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도위, "소명의 기회 충분히 줬다…, 전학 권유 허양이 거부"

한편 용화여고 선도위원회는 허양의 퇴학 사유를 "소명의 기회를 충분히 줬으나 성실히 응하지 않았고, 개전의 가망이 없다고 판단돼 퇴학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용화여고 박 교감은 "다섯 차례나 선도위원회를 열면서 수차례 연락하며 소명의 기회를 줬지만, 허양과 가족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첫 회의에만 출석했고 그 뒤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교감에 따르면, 허양과 가족들이 선도위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으면 끊어버리고 메시지를 남겨도 응하지 않는 등 성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양은 "선도위원회에 도저히 참석할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재단과 교감 편만 드는 선생님들이 모여서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조사가 이뤄졌으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던 터라 선도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박 교감은 "'퇴학' 처분은 가혹하다는 일부 교사들과 범대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 때문에 학교는 허양을 최대한 교육적 방법으로 이끌려고 노력했고, 전학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교감은 '학습권'을 박탈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허양이 만약 퇴학을 당하더라도 3학년으로 전입할 수 있도록 2학기 기말시험까지 볼 수 있도록 했다"며 "알려진 바대로 검정고시는 한 해 뒤에 칠 수 있지만, 3학년 전입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허양과 가족들은 학교측이 '퇴학' 처분만이라도 철회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허희녕씨는 "검정고시로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지만, 퇴학 처분은 조카에게 일생을 따라다닌다"며 "학교가 퇴학 처분이라도 철회해줄 것을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대책위는 허양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 결정을 철회해줄 것을 요청하며, 지난 3일부터 용화여고 정문에서 매일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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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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