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 숨결속에 빨려들다(1)

<세계문화유산답사> 이탈리아 아시시

등록 2003.01.10 02:29수정 2003.01.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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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를 떠난 기차는 어느새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느끼지는 토스카나를 벗어나고 있었다. 뿌연 창문사이로 이탈리아 중북부지방의 목가적인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은 파란 하늘에 미끄려져있다. 고개를 들면 맑고 투명한 하늘호수가 내려보고 있다. 파란 하늘이 점점 옅어져 하얗게 탈색되는 지점엔 나지막한 산들이 지중해의 지평선마냥 끝모를 선을 그어놓는다. 어느덧 이탈리아의 푸른 심장부 움브리아 지방으로 들어선 것이다.

저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언덕위에 아이보리빛 성채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다. 황량한 언덕의 비탈길에 세워진 성채아래로 드넓은 움브리아 평야의 푸르름이 피어오른다. 성채에 가까워질수록 그 순백의 아름다움은 빛을 더해간다. 성자의 마을 아시시에 도착하자 철옹성처럼 버티던 성채는 이내 멋진 성당으로 변해버렸고 순도 100%의 햇살을 받으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장밋빛 돌로 지은 성당은 백장미처럼 활짝웃으며 얼른 올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a 평화(PAX)의 상징 '성 프란체스코 성당'

평화(PAX)의 상징 '성 프란체스코 성당' ⓒ 홍경선

이탈리아 움브리아주(州) 페루자현(縣)에 있는 도시 '아시시'는 아펜니노산맥 수바지오산 중턱에 부채를 펴 놓은 듯 고요히 누워있는 오랜 역사와 신앙의 도시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전해주는 잔잔함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평화의 숨결은 바람에 실려 맑고 투명한 하늘을 파랗게 수놓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솜사탕같은 아기자기한 멋이 있기에 더욱 그리워지는 아시시의 하얀 구름아래로 성자의 숨결이 느껴진다.

청빈(poverty), 순결(chastity), 순종(obedience)이라는 완전한 포기를 몸소 실천하며 새들과 노래하며 들짐승과 이야기했던 성자 프란체스코(본명 :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베르나르도네)는 카톨릭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프란체스코회의 창립자이다.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세속적인 것들을 추구하기에 급급했고 귀족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즐기며 자라났다. 당시의 귀족이나 부유한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 역시 세속적인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기 위해 1202년 이웃한 페루자와의 전쟁에 참전한다. 하지만 결국 포로로 잡히게 되었고 심지어 병까지 얻어 아버지가 몸값을 치러줌으로써 겨우 풀려나왔다. 처음으로 맛본 좌절과 고통의 시간들은 그로 하여금 회심에 이르게 하였고 결국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사랑을 실천해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빛나는 인물 중의 하나로 추앙받고 있는 성프란체스코의 고통과 희생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유명한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했을까? 내겐 너무나도 낯선 한 인물에 대한 궁금증은 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성프란체스코 성당'에서 그 실마리를 조금은 풀수 있었다.

a 아이보리빛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아이보리빛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 ⓒ 홍경선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프란체스코의 바실리카 유적'중의 하나인 '성프란체스코 성당(Chiesa di San Francesco)'은 프란체스코수도회를 창설한 성프란체스코를 기리어 세워진, 프란체스코 수도회 최초의 성당이다. 그가 사망한지 2년 뒤인 1228년, 수사 엘리야의 설계에 의해 기공되어 1253년에 완성된 이 건물은 바티칸의 산피에트로나 피렌체의 두오모처럼 특색있는 외관을 띠고 있었다. 얼핏 아담한 별장같기도 한 성당의 모습은 비탈이 많은 아시시의 지형을 살려 상하 두 쌍으로 된 2층짜리 건물로 되어있다. 이는 지금껏 유럽을 돌면서 보아왔던 고딕양식의 성당들(凹凸)과는 확연히 틀린 형식이었다.


높은 지대에 세운 성당이라 그런지 성프란체스코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백장미처럼 하얀 빛깔로 방문객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성당 입구로 향하는 길 위의 넓은 광장은 마치 하얀 대리석 융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절도있는 자세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의장대마냥 양옆으로 길게 나있는 성당의 회랑은 이곳을 내리쬐는 태양의 좋은 가림막이 되어주었다. 그속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하얀 성당의 빛깔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햇빛에 취한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유도한다.

하얀 대리석 융단위에서 바라본 성당의 모습은 그 순백의 이미지보다도 더 경건한 빛을 내뿜고 있다. 유난히도 청명한 하늘과 아이보리빛 성당 그리고 회랑의 검은 음영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두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렇게 삼위일체가 된 빛의 향연에 취해 한참을 서있어도 좀처럼 움직일줄 모르는 두 다리를 간신히 이끈체 서서히 성프란체스코의 숨결속으로 빨려들어갔다.


a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회랑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회랑 ⓒ 홍경선

상하 2층으로 된 성당의 입구는 커다란 장미모양의 장식 아래로 두 개의 첨두형아치로 되어있다. 순백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던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어두웠다. 하지만 내부를 장식한 피에트라 아시시(아시시의 돌)라고 불리는 이 지방 특산의 담홍색 용재가 뿜어내는 은은한 아름다움과 어둠속에 비친 화려한 색채의 벽화와 스테인들그라스에서 내뿜는 은은함은 단순한 외관과는 또다른 별천지를 보여준다.

중앙의 제단을 중심으로 높다란 천장과 벽면 전체를 수놓은 화려한 모자이크와 벽화는 은은한 촛불에 아른거리는 내부의 엄숙함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특히 13∼14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피렌체화파의 시조 '치마부에'가 그린 벽화는 성당 1층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었다.

그중 '그리스도 책형'과 '성모자와 4천사 및 성프란체스코'는 '마에스타'와 더불어 비잔틴 화풍의 잔재속에서 르네상스의 여명을 밝힌 치마부에 최대의 걸작이라 한다. 특히 종전의 신적 권위와 경건성을 나타내었던 비잔틴 화풍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스런 삶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다. 이는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마부에의 화풍은 창조의 아름다움과 인간을 비롯해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성 프란체스코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청빈'과 '형제애'로 일생을 살다간 한 거룩한 성자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성프란체스코의 초상'에서 확연히 느낄수 있다.

하지만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화려했던 치마부에의 명성도 그의 제자 '지오또 디 본도네'의 등장으로 인해 사그러들고만다. 성당 2층을 가득메운 프레스코화를 통해 비잔티주의를 뛰어넘어 단순한 그리스도교의 교리적 그림해석이 아닌 인간성과 종교성이 융합한 예술적 표현의 세계를 펼쳤기 때문이다.

a 아펜니노산맥의 자연경관

아펜니노산맥의 자연경관 ⓒ 홍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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