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공개'는 와 그리 벌벌 떠노"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42> 팽이

등록 2003.01.16 12:23수정 2003.01.1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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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팽이 돌리기는 손으로 팽이를 슬쩍 돌린 뒤 팽이채로 적당히 잘 쳐야 잘 돌아간다

팽이 돌리기는 손으로 팽이를 슬쩍 돌린 뒤 팽이채로 적당히 잘 쳐야 잘 돌아간다 ⓒ 강원도

"무궁화꽃이... 타다닥... 피었습니다..."
"무궁화... 타다닥...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타다닥... 나온나, 고마"
"내 보고? 나는 한 발짝도 안 움직였다카이"
"잔소리 말고 고마(그만) 퍼뜩 나오라카이"
"에이~"


마을 공동우물이 있는 들마당 한 귀퉁이에서 열 살 남짓한 동생들이 시퍼런 코를 소매에 쓰윽쓱 닦으며 한창 숨박꼭질을 하고 있다. 새까만 떼가 낀 손은 여기 저기 터서 빨간 피가 배여 있었지만 마을의 동생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을의 동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신이 난 듯 겨울해처럼 말갛게 웃으며 숨박꼭질을 했다.

겨울햇살이 제법 따스하게 내리쬐는 담벼락, 돌이 점점이 박힌 붉은 흙담 곁에서는 가슴이 제법 볼록하게 튀어나온 마을 가시나들이 한창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시나들이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는 담벼락 아래에서는 새끼줄이 땅에 닿을 때마다 뽀오얀 먼지가 폴싹 폴싹 일었다.

"옴마!"
"와?"
"밥 도라(줘)"
"아나"
"이런 꽁보리밥 말고"
"무시밥 주까?"
"말고(아니)"
"그라모 고매(고구마) 밥 주까?"
"말고, 쌀밥 도라"
"쌀이 오데 있노?"
"독 안에"
"아나 곶감~ 철버덕~ 죽었다"

마을 가시나들의 줄넘기는 제법 재미가 있어 보였다. 가시나 둘이 새끼줄을 잡고 길게 늘어서서 새끼줄을 빙빙 돌리면 가시나 하나가 돌고 있는 새끼줄 사이로 폴짝 뛰어들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새끼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새끼줄이 땅에 닿을 때마다 폴짝 폴짝 뛰었다.

그렇게 몇 번 먼지가 폴싹 폴싹 일고 나자 이내 또 한 가시나가 뛰어 들었다. 그렇게 마을 가시나들이 차례로 새끼줄 사이로 뛰어들 때마다 가시나들의 작은 가슴은 물동이에 담아놓은 물처럼 제법 촐랑거렸다. 우리들은 들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여 팽이치기를 하면서 마을 가시나들의 촐랑거리는 그 젖가슴을 흘깃흘깃 훔쳐보았다.


"이번 칼에는... 이번 칼에는..."
"아, 자슥아! 니가 만화책에 나오는 그 누구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나?"
"자, 간다. 빠박!"
"가만, 저기 우찌된 일이고?"
그래, 결국 이번 칼에 끝이 났제?"
"에이~ 오늘 재수 더럽게 없네"

우리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팽이를 "공개"라고 불렀다. 왜 팽이를 공개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튼 우리 상남면에서 쓰이는 말들은 다른 지역에서 쓰는 말보다는 조금 독특한 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몇 가지 들자면 비음산 아래 있는 들판은 "쌀밭등", 다랑이 밭이 층층히 있는 앞산은 "앞산가새", 대암산 일대는 "근치", 상남 인근에 있는 들판은 "마디미", 마을 앞산은 "마당뫼" 등등...

당시 우리 마을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공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길쭉한 도토리처럼 생긴 공개였고, 다른 하나는 납짝한 역삼각형의 공개였다. 그 길쭉한 도토리 모양의 공개는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주로 가지고 놀았다. 또 그 공개는 옷가지를 길게 찢어 만든 공개채로 공개를 때려서 돌렸다. 하지만 우리들이 가지고 놀았던 공개는 역삼각형의 공개였다. 이 공개는 공개심에 공개줄을 침 퇘퇘 뱉어가며 세차게 감은 뒤 땅바닥을 향해 힘차게 던져서 돌렸다.

공개놀이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꼭 같이 공개를 던져 누가 던진 공개가 더 오래 돌아가는지에 대한 내기였고, 다른 하나는 돌아가는 상대편의 공개에 자신의 공개를 던져 상대편의 공개를 부수는 놀이였다. 또 하나는 돌아가는 공개를 손으로 받아 올려 공중으로 툭툭 던지며 누가 더 오래 돌리는지에 대한 놀이였다.

이 내기에 거는 물건은 주로 삶은 고구마와 생고구마를 바싹 말린 고구마 뺏데기였다. 간혹 새총이나 새 공개를 내기에 거는 때도 있었다. 당시 우리 마을 아이들은 가게에서 돈을 주고 공개를 사지 않았다. 또 사고 싶어도 살 돈도 없었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주로 앞산에 있는 단단한 나무에다 총알 탄피나 대못 등을 공개심으로 박아넣어 공개를 직접 만들었다.

공개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단단한 나무를 공개 만한 크기로 톱으로 자른 뒤 칼로 공개형상으로 다듬는다. 그리고 심이 없는 상태에서 몇 번 돌려보면 어느 쪽을 더 깎아내야 하는지 이내 알게 된다. 이어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 불속에서 대못을 벌겋게 달군 뒤 일정한 깊이로 심을 박을 자리를 뚫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못이나 총알 탄피를 박은 뒤 몇 번 돌려가면서 심을 바로 잡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니는 공개로 우째 만들었길레 그리 벌벌 떠노?"
"총알이 없어가 대못을 박았더마는 이란다 아이가."
"니 진짜로 총알이 없나?"
"하모(응)."
"그라모 내가 총알 한 개로 니한테 줄끼니까 니는 내 한테 뭐로 줄래?"
"내 새총을 니한테 주모 안 되것나?"
"그라모 니가 쪼매이 손해로 보는 긴데?"
"괘않다. 가시나들 고무줄 끊어 가 또 만들모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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