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추억 속에서 아름답다

국민학교 동창 만남기

등록 2003.01.21 16:13수정 2003.01.2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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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 싶었던 초등학교 동창이 한 명 있었다. 물론 남자다. TV에서 옛날 친구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가 방송에 나가면 꼭 찾아야지 했던 그런 사람이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새롭게 생겨서 한껏 기대를 했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에 대한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나중에 온 얼굴 잘 모르는 녀석이 그와 대학을 같이 나왔는데, 그가 내 얘길 했던 것 같다는 소리에 더 안달이 나있던 참이었다. 문득 회사 업무 때문에 웹서핑을 하던 중에 나의‘인맥’을 찾는 사이트를 하나 발견하여 그를 찾아보았다. 같은 이름이 발견되었다.

등록자 정보를 보니 주소만 있을 뿐 전화번호는 나와 있지 않았다. 다행히도 주소는 대충 어릴 적 살던 곳과 엇비슷한 것 같았다. 꼭 그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연락처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에게 성탄절 카드를 하나 보냈다. 물론 종교적으로 신앙은 없지만 성탄절 선물 같은 그의 소식을 기대했다. 다행히도 평소 됨됨이를 알아본 하나님은 답장 대신 그의 생생한 육성을 선물로 보내셨다.

이 나이 즈음되면 누굴 만난다는 게 그리 두렵지는 않다. 반면 기대나 설레임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매우 달랐다. 20년만에 만나는 국민학교 동창이다. 게다가 아주 오래 전 추억을 고스란히 묻어 두게 했던 얼굴 뽀얗고 보조개가 들어가는 섬세하면서도 가끔은 응큼하던 이성을 만나는 것이다.

중학교 다닐 때 친구 앨범에서 우연히 그를 본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집안끼리 알고 지낸다고 했다. 그 때는 사춘기였던 것 같다. 그의 소식을 묻는다는 것이 그냥 부끄럽고 볼이 빨개지는 일이었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치고 그 때 이후로는 17년만에 찾아온 만남의 기회였다.

그와 나는 5학년, 6학년 내리 한 반을 했었다. 5학년 때는 이성으로서는 단짝 친구였다. 집도 가까이 살았고,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 친구는 국어를 잘 못했다. 대신 그 집에는 먹을 게 많았다. 만나서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가 경찰서장이셨으니, 지금 생각하면 돈은 많지 않아도 먹을 게 많았을 건 분명하다. 그래서 그 집에서 국어 공부하는 일이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것보다 훨씬 신나는 일이었다.


그 친구네 엄마도 예쁘고 친절했고 나중에 결혼해도 잘 해주실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면서 그 친구의 국어 실력은 날로 향상되고, 학년이 오르면서 한 반이 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가깝게 지낼 것 같았다.

그러나 6학년이 되면서 내 맘속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를 만나려면 가슴이 두근댔고 말을 잘 못 걸게 됐다. 어느날 제일 친한 여자 애 하나가 그 친구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해가 기울 때까지 길거리를 돌아다닌 적도 있다. 자존심 때문에 표를 내지 않았다. 잘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옷도 나보다 예쁘고, 피아노도 잘치는 여자 애에 비해 난 너무 보잘 것 없었다. 창피하고 속상했다. 그래도 그 친구한테 그 여자 애가 널 좋아한다고 얘기도 해주고, 그 여자 애한테는 잘 말해줬다고 으시댔다. 이 후 나는 그를 대하기가 너무 서먹했고, 그 집 대문을 살짝 엿보다가도 소리가 나면 도망쳤다. 졸업식 때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눈 내리는 명동에서 만났다. 예전 제일백화점 자리다. 지금은 없어지고 별로 유명한 백화점은 아니지만 명동에서 시위가 있으면 항상 제일 백화점 뒤에서 모였었다. 그와 생김새가 비슷한 선배를 좋아해서 엉겁결에 데모 길에 따라 나왔던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는 키가 많이 컸다.

나보다 훨씬 작았었는데…. 얼굴은 그냥 길에서 우연히 봐도 딱 알아볼 정도로 똑같았다. 근데 얼굴뿐만 아니었다. 그 말투, 그 생각, 그 표정 등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초등학교 당시 기억을 거의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 나는 공부 잘하고 씩씩한 그것도 유일하게 생각나는 여자 동창일 뿐이었다.

내가 다 말 해줬다. 너는 어땠고, 네 짝은 어땠고, 그 당시 나는 어땠고. 2시간 동안 맥주 1만을 다 비웠다. 그 자리를 빨리 뜨고 싶었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건 다 성인이 된 그가 아니라 그 때의 추억과 그 때의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을. 버스 유리창에 사뿐사뿐 왔다가 사라지는 눈꽃이 예뻤다.

그 뒤로 그에게 연락이 몇 번 왔었다. 나 때문에 기억이 되살아 난 듯 하다고 안부 전화도 오고, 그 날 화제가 되었던 친구들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도 왔고, 결혼한다고 청첩장도 보냈다. 그렇지만 그 때 난 결심을 했다. 다시는 오랫동안 가슴에 묻고 있는 추억을 확인하지 않겠다고…. 문득 잘 나가던 기자 생활을 때려치우고 꿈을 이뤄보겠다고 대학로로 달려갔던 몇 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막상 그 판에 갔다가 꿈과 현실이 너무 달라 그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그 때를 말이다. 추억은 추억대로, 꿈은 꿈대로 덮어두다가 가끔 외로울 때 남 몰래 살짝 꺼내보고, 또 하나의 희망으로 묻고 사는 모습도 아름다운 것을. 현실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채우려고 하니 참으로 버겁고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꿈은 꿈대로 남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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