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냄새로 남은 20세기 초반의 기억

시간이 멈춘 공간, 강경을 가다

등록 2003.02.07 00:42수정 2003.02.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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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래된 나무 건축물 앞에 비스듬히 선 소화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강경의 오늘을 그대로 보여 준다.

오래된 나무 건축물 앞에 비스듬히 선 소화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강경의 오늘을 그대로 보여 준다. ⓒ 김은주

꼭 한 번 강경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빨리 그리고 쉽게 많은 것들이 바뀌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뭔가 변하지 않는 것들을 만나고 싶어질 때,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사람들이 저만치 뛰어가 버려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고 느껴질 때……. 그런 때 마음 속에 강경읍을 떠올렸습니다.

그 곳에 가면 고여 있는 시간 속에 안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언제부터인가 품어 버리고 말았지요.


새해를 맞고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나 자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내 발걸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시간 위에 둥둥 떠서 구경꾼처럼 살고 있다는 걸 알고는 강경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강경, 그 곳은 참말 시간이 가만히 고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금강 하구에 자리잡은 강경은 인구 1만4천명(2001년)을 조금 넘는 자그마한 읍입니다. 1600년경에는 평양, 대구와 함께 한국의 3대 시장의 하나로 꼽혔던 곳이기도 하지요. 조기, 갈치, 민어, 홍어 따위 수산물이 모여들자 온갖 장사치와 여각 따위로 번성했던 곳입니다. 그러던 것이 1905년에 경부선이, 1912년에 군산선이,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포구로서의 기능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만, 팔고 남은 수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수산 가공업과 염장업이 발달한 덕분에 이것이 오늘날 강경을 젓갈로 유명한 곳으로 만들어 주었지요. 해마다 김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얼마 동안, 강경은 그 옛날 번영했던 기억을 현실로 불러내오곤 합니다.

a 한일은행 강경점. 독서실 이름을 달고 있지만, 속에는 잡동사니들이 잔뜩 널려 있다.

한일은행 강경점. 독서실 이름을 달고 있지만, 속에는 잡동사니들이 잔뜩 널려 있다. ⓒ 김은주

정작 강경 사람들이야 싫어할지 모르지만, 강경이란 이름을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게 하는 데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일제 강점기 아래 세워진 건물들이 근대화 초기의 모습을 지금도 온전히 보존한 채, 상당수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경읍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는 듯하던 거리 풍경은 붉은 벽돌로 지은 한일은행 강경점을 지나, 호남병원 자리에까지 이르면 지금이 2003년이 맞는 건가, 헷갈릴 지경에 이르고 말지요.

관공서로 쓰였던 곳을 빼고라도 낡은 사진관이며 쓰러질 듯 겨우 서 있는 젓갈 창고들, 지금은 폐허로 남은 개천 옆 공장 지대들을 걸어서 돌아볼라치면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여지껏 이런 건물들을 남겨 둘 수밖에 없는 강경 사람들의 시난고난한 현실에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a 강경 시내 곳곳에는 이런 형태의 집이 여러 채 남아 있다.

강경 시내 곳곳에는 이런 형태의 집이 여러 채 남아 있다. ⓒ 김은주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던 일본인들은 광복과 더불어 제 나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살던 집까지 짊어지고 갈 수는 없었지요. 그것이 이른바 '적산 가옥'이었습니다. 만주로, 일본으로 떠났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돌아오고 하나씩 둘씩 그 빈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야 그 집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져 집 하나를 두세 가구가 같이 쓰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만 강경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어찌 된 셈인지 새마을운동도 이 읍내의 낡은 풍경은 바꿔 놓지를 못했습니다. 게다가, 적산 가옥이 비교적 기초가 튼튼하게 지어진 터라,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도 철거보다는 고쳐서 쓰는 쪽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서 강경의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시의 외형도 이 곳과는 거리가 먼 변화였던 거지요.

일제 시대 모습을 이렇게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 강경 말고 또 어디가 있겠는지요. 몽땅 철거해 버리고 싸그리 과거 속에, 역사 속에 묻어 버렸어야 속이 시원할 것도 같지만, 그냥 없었던 일로 한다고 해서 지워지는 세월이 아니기에 지금의 강경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a 호남병원 건물. 위용은 여전하나, 살아 있는 건물은 아니다.

호남병원 건물. 위용은 여전하나, 살아 있는 건물은 아니다. ⓒ 김은주

지붕만 겨우 남은 공장을 개조해 젓갈통을 가득 세워 놓은 것은 그래도 양호한 편입니다. 사람이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어 무너진 집터엔 방이었던 흔적, 화장실이었던 흔적, 마당이었던 자취만 남아 오가는 이들을 맞고 있습니다.

한일은행 강경점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고, 호남병원 역시 생동감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위용 하나는 그럴 듯하나 이미 죽어 있는 건물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적이 불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강경 땅에 건강한 삶의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젓갈의 힘이 큰 것 같습니다. 묵은 시간의 냄새, 그것은 잘 숙성한 젓갈 냄새로 남아 강경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고여 있지만 부패하지 않는 힘이 바로 그 원천이라 생각합니다.

강경 읍내 큰길가에 자리한 수십 개의 젓갈 상회 앞에서는 혹은 서울, 혹은 충남, 혹은 경기도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들이 한두 대씩 서서 젓갈 값을 흥정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젓갈 가게 한 구석에 조선 시대 흥성했던 강경 포구의 흑백 사진을 걸어 놓고 타지 사람들에게 은근히 그 역사를 자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강경의 힘이 아니겠는지요.

그 많은 건물들, 낡은 세월의 역사를 강경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바꾸어갈지, 저는 조급하지 않게 기다려 볼 참입니다. 고여 있는 시간, 멈춰 있는 시간을 강경에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리 많이 섭섭할 것 같지는 않군요.

a 폐허가 된 공장 지대. 강경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따라 발달했던 공장터가 지금은 도둑고양이들만 가끔 오가는 곳이 되었다.

폐허가 된 공장 지대. 강경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따라 발달했던 공장터가 지금은 도둑고양이들만 가끔 오가는 곳이 되었다. ⓒ 김은주


a 빈 공장을 젓갈 숙성소로 쓰고 있다. 젓갈을 사러 온 차들은 경기, 서울, 충남 할 것 없이 전국의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빈 공장을 젓갈 숙성소로 쓰고 있다. 젓갈을 사러 온 차들은 경기, 서울, 충남 할 것 없이 전국의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 김은주


a 낡은 집과 '반지의 제왕' 포스터가 풍경을 더 낯설게 만든다.

낡은 집과 '반지의 제왕' 포스터가 풍경을 더 낯설게 만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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