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이회옥은 머리통이 공동묘지가 되도록 쥐어 박혔다. 지옥거가 출발한지 만 사흘이 지난 뒤에야 이회옥은 비로소 맞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었다.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이 쥐어박는 것도 재미없다며 그만둔 때문이었다.
"저는 청룡무관이라는 데서…"
산해관에서 있었던 이회옥의 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들은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으음!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상한 구석이 많다."
"맞아! 그리고 겨우 말 한 마리를 훔쳤는데 지옥거를 태워?"
"아니에요. 저는 정말 말을 안 훔쳤어요. 그 말은 비룡이라고 제가 태극목장에서부터 데리고 온 건데…"
이회옥은 태극목장에서의 일까지도 이야기했다.
"흐음! 네 말이 사실이라면 누군가 너를 함정에 빠트린 것이 분명해! 그 말, 비룡이라는 말이 천리준구인 대완구라고 했지? 그런 건 한 마리에 얼마쯤 하냐?"
한 손으로 턱을 괸 냉혈살마는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대완구 순종은 흔한 말이 아니라 부르는 게 값이래요. 오래 전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한 마리에 은자 사천 냥 정도에 거래가 된다고 하셨어요."
"흐음! 은자 사천 냥? 겨우 은자 사천 냥 때문에 널 지옥거에 태워? 흐음!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그렇지?"
"예, 형님! 뭔가 이상합니다. 대완구가 아무리 귀한 말이라고 해도 그렇지 겨우 한 마리 때문에 얘를 여기에 태운 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명색이 지옥거인데 말입니다. 흠!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지옥거는 아무나 타는 겁니까? 우리 같은 거물들만 탈 자격이 있는 거지요. 안 그렇습니까?"
"아암! 그렇지. 얘 같은 피라미들은 탈 자격조차 없지. 그런데 얘가 탄 걸 보면 뭔가 이상하긴 이상해. 으음! 대체 무슨 이유일까? 이보게 아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
이회옥은 둘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들으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신보다 세상을 훨씬 오래 살았으니 혹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하여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한편 지옥거는 무게 때문인지 지겹게도 천천히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면이 울퉁불퉁하여 그런지 몹시 덜컥거렸다. 처음 며칠 동안 이회옥은 적응이 되지 않아 속이 메스꺼워 견딜 수 없었다. 하여 여러 번 토악질을 했다.
그러는 동안 냉혈살마과 비접나한은 이회옥이 왜 잡혀왔는지를 여러 가지로 추측을 했다. 그들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심심풀이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회옥에게는 아니었다.
자신이 왜 말 도둑이라는 누명을 썼으며, 중죄인들이나 타는 지옥거를 탔는지를 알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결론은 누군가의 치밀한 음모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음모를 꾸몄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상 산해관으로 되돌아가 어찌된 영문인지를 면밀히 조사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의 의견은 없었다.
지옥거가 멈추는 것은 호송임무를 맡은 정의수호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뿐이다. 그때에도 지옥거는 열리지 않는다. 죄수들에게는 하루에 한 끼가 제공되는데 천장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하여 떨어졌다. 배변 또한 바닥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하였다.
가는 동안 안에 있던 죄수가 죽어도 지옥거는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아니 열 수가 없다. 죄수를 지옥거에 가둔 후 밖에서 잠긴 자물쇠의 열쇠가 지옥갱에만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호송대원들이라 할지라도 지옥거를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지옥갱에서의 상황에 대한 절망적인 추측까지 오가고 난 뒤에는 며칠 동안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라! 저건 뭐지? 야 임마! 너, 그 자리에서 꼼짝 마!"
"왜, 왜요? 아앗! 휴우…! 하마터면…"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잔뜩 힘을 주면서도 온 정신을 바닥에 뚫려 있는 구멍에 맞춰놓고 있던 이회옥은 냉혈살마가 갑자기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깜짝 놀랐다.
배변을 할 때 제대로 조준하여 떨어트리지 않으면 똥이 바닥에 묻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나마나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에게 쥐어 박히게 될 것이다. 지독한 악취로 고생하기 때문이다.
하여 온 정신을 집중하다 깜짝 놀라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날 뻔하였다. 하지만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자 긴 한숨을 내쉰 것이다.
"어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에이, 똥 누는데 왜 그래요? 지옥갱에 갈 때까지 똥 냄새를 맡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가, 가만히 있어봐. 너 그거 뭐냐?"
"그거라뇨? 뭘 말하시는 거죠?"
"임마! 네놈 엉덩이에 있는 게 뭐냐는 것이다."
"엉덩이에 뭐가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어요."
"흐음! 일단 볼일은 봐라. 본 다음에 말하자. 어라, 야 임마! 조준 잘해! 야, 바닥에 묻으려고 그러잖아. 어어어!"
"너, 바닥에 똥 묻히면 뒈진다!"
"아, 알았어요. 안 묻히면 될 거 아니에요. 아앗! 휴우…"
이번에도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이회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거가 털컥거리면서 하마터면 똥을 묻힐 뻔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회옥은 겉옷을 벗고 청룡갑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라고? 그럼 이걸 풀지 못해 여지껏 걸치고 있었다는 말이냐? 세상에나 맙소사나…! 그럼 그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겠네? 에이, 더러운 놈!"
"그럼 어떻게 해요? 이건 뒤에서만 풀 수 있는 건데."
"이런 바보! 그럼 아무나 붙잡고 풀어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럴 사람이 없었어요."
"자, 이제 한번 벗어봐!"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심심하던 차에 호기심이 일어 그런지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 이것 봐라…? 야, 가만히 있어봐!"
"왜요?"
오랜 세월 동안 걸치고 있던 청룡갑을 풀게된 것이 너무도 시원하여 허겁지겁 벗어제치던 이회옥은 냉혈살마의 말에 멈췄다.
"너, 단전이 파괴되지 않았어?"
"단전이요? 단전이 뭔데요?"
"임마, 단전도 몰라? 단전은 여기에 있잖아. 그나저나 지옥거에 타기 전에 누가 네 단전을 제압하지 않았냐?"
"제압이요…?"
청룡갑은 한번 걸치면 벗기 어렵기에 엉덩이 부분이 뚫려 있다. 배변을 위한 조치였다. 대신 단전이나 명문혈 등 생사대혈이 있는 부분들은 보호하게 되어 있다.
지옥거에 타기 전에 정의수호대원들은 이회옥의 둔부에 온통 피가 말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청룡갑과 같은 호신갑을 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호신갑을 걸치고 있다면 엉덩이가 그렇게 될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회옥의 죄목은 한낱 말 도둑이었다. 그리고 불과 열다섯 살이었다.
그렇기에 중죄인들만 태우는 지옥거의 호송대원들이었지만 경계심을 늦췄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었다. 하여 단전을 향하여 세 줄기 지풍을 날리긴 날렸다.
지옥거를 호송하는 정의수호대원들은 확실함을 위하여 죄수들에게 적어도 세 명이 지풍을 날리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전이 파괴되었는지 확인하여야 한다는 규칙은 잊었다. 그 결과 이회옥의 단전은 파괴되지 않았던 것이다.
"으으으음…!"
이회옥의 단전이 멀쩡한 것을 본 냉혈살마는 긴 침음성을 터뜨리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야! 너, 내가 무공을 가르치겠다면 한번 배워보겠느냐?"
"무, 무공이요? 저, 정말 제가 무공을 배울 수 있나요?"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이회옥은 반색을 하였다. 느닷없이 관아로 끌려가 말 도둑으로 몰리기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정의수호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비룡에게 먹일 콩을 사기 위하여 저잣거리로 나갔다가 배가 고파 주청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였다.
붐비는 주청을 피해 후원으로 접어든 이회옥은 청삼을 걸친 일단의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가슴에 한 자루 장검을 수놓은 그것은 분명 정의수호대원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 하나는 창을 애병으로 사용하는지 한 자루 장창을 들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창을 사용하는 무림인들은 어떤 수준일까 궁금했던 이회옥은 배가 고픈 것도 잊고 그들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침 정의수호대원들은 자신의 무공을 뽐내는 중이었다. 그들은 하나 하나 나서며 자신의 무공을 뽐냈다. 이때 이회옥은 장창을 든 정의수호대원의 솜씨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처음 창을 휘두르는 솜씨를 보았을 때에는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기에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앞에 있는 바위는 멀쩡한 데 뒤에 있던 나무가 산산 조각나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기양양한 정의수호대원은 자신이 새롭게 창안한 회선창법(回旋槍法)의 위력이 어떠냐며 뽐냈다. 그러면서 말하길 회선창법은 격파하고자 하는 대상이 바위나 나무 같은 것의 뒤에 있더라도 능히 작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결은 내공 어쩌고 하면서 설명하였다. 하지만 내공이 무언지 모르는 이회옥으로서는 그 말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창법을 가능케 한 것이 내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만은 뇌리 깊숙이 각인시키고 있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