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태 공천헌금 배달위치 아니었다"

증언대에 선 권노갑 "전국구 공천자에게 공천헌금 받았다"

등록 2003.02.10 19:52수정 2003.02.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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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을 마치고 광주지법 201호 법정을 나오고 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증언을 마치고 광주지법 201호 법정을 나오고 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오마이뉴스 강성관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씨가 증언을 위해 법정에 섰다. 권씨는 2월 10일 오후 3시경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박광태 광주광역시장 후보측이 고발한 명예훼손고발 사건 4차 심리에 증인자격으로 출석, 광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관련 증언을 했다.

권씨가 증언한 내용의 핵심은 "박광태 광주시장이 14대 총선 당시 김아무개 전 의원의 공천헌금을 배달사고 없이 전달해 광주북갑 공천이라는 대가를 받았다는 설"의 사실여부다.

이 설을 보도해 고발당한 <시민의 소리> 양근서 기자 변호인 측은 윤재걸(전 <신동아> 기자·전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씨를 지난 1월 20일 증인으로 신청, 증언을 들은 바 있으며 권씨와 박광태 광주시장도 증인채택 신청이 재판부로부터 받아들여져 권씨는 이날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서게 된 것.

권노갑, "박광태 공천헌금 배달 사실 아니다"

사건 자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치자금과 관련된 것이어서 권씨의 증인출석 여부자체가 지역정가는 물론 중앙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날 권씨의 전격 출석은 재판부는 물론 변호인 측도 예상치 못한 일인 듯 담당 변호사가 다른 변호일정때문에 늦게 도착해 심리시간이 조정·연기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권씨는 이날 증언에서 "14대 총선 공천당시 박광태 시장은 애초에 전남 완도·강진으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이를 취하하고 마감 2, 3일 전에 광주 북갑으로 재신청 했다"고 기억하고 "윤재걸씨가 자신이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서 8대 1로 공천결정이 됐었다고 말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이같은 얘기를 윤씨가 당시 조강특위 위원이었던 노무현 차기 대통령에게 들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그 당시 분위기상 또 조직상 공천신청자에게 조강특위 위원이 그렇게는 말 못한다"고 일축하고 "다만 자신이 소원하는 사람이 공천이 다 되겠다 싶을 땐 전화로 알릴 수는 있다"고 공천결정 과정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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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당시 공천경합은 김홍명 조선대 교수와 박광태 시장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으며 윤재걸씨는 (공천경합에) 끼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박광태 시장의 '공천헌금 배달 대가설'에 대해서 권씨는 "지금 처음 들었다"며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웃기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 뒤 "박 시장은 당시 그럴 위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권씨는 정치자금 조달과 관련 "전국구 공천자에게는 공천헌금을 받았지만 지구당 공천자로부터는 정치헌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권씨는 전국구 공천자로부터 받은 정치헌금은 "호남은 못주고 서울과 대구경북·부산경남 지역 입후보자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윤재걸이 왜…"

권씨는 작고한 김모 전 의원의 공천헌금을 박광태 시장이 자신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김 전 의원은 약속한 20억 원도 안줬다"고 주장하면서 "16억 5천만 원은 현금으로 내게 직접 가져왔지만 나머지 3억5천만원은 부도냈다"고 말했다.

그는 "시·도 의원 출마자들의 정치헌금을 모아 권씨에게 전달했다는 소문이 있다"는 윤재걸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소문 지금 처음 들었다"고 강하게 부인한 뒤 "공천을 대가로 헌금을 받은 적이 없으며 위법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윤재걸씨가 당시 공천과정과 공천헌금 배달과정에 대해서 확인해 줄만한 위치에 있었냐"는 검찰 측의 질문에 짧게 "그런 위치가 아니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권씨는 "박광태씨가 강진완도에서 북갑으로 공천신청 지역을 공천심사과정에서 옮긴 사실을 확인해줄 문건이 있냐"는 피고 측 질문에 대해서 "없다"고 말하고 "그러나 공천심사과정에서 공천신청지역을 옮긴 사례는 박 시장 외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증언을 마친 후 소회를 묻는 취재진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면서 "윤재걸씨와 사이가 좋은 관계인데 왜 그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가 없다"며 "나 하고 얘기하면 될 일인데"하고 말끝을 흐렸다.

"형 집행 정지중인데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재판부의 결정이 부담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재판부의 출석통지를 받고 나왔을 뿐"이라며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정치거물다운 여유를 부렸다.

이날 4차 심리에 증인으로 채택된 박광태 광주시장은 재판부가 출석 통지문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착오가 생겨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박 시장과 함께 중요 증인으로 채택된 권노갑씨가 이날 전격 출석해 증언대에 섬으로써 박 시장도 어떤 식으로든지 '증언'을 해야 하는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됐다.

한편 권노갑씨는 심리시간이 연기되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양근서 기자와 법정 뒷자리에서 고발내용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5차 심리는 오는 3월 3일 오후 2시에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권부(權副)'의 뒷모습
[취재단상] 한 2인자의 인생

권노갑,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자가 앞서 간다. 스스로 'DJ의 그림자'를 자처하며 살아온 40여 년의 세월. DJ와 함께 하는 동안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권력의 2인자였다.

정치권의 많은 인사들은 권 전 고문을 '권부(權副, 권 부총재의 줄임말)'라고 불렀다. 적어도 한동안 '권부(權副)는 권부(權府)'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권노갑의 권력실세로서의 위력은 DJ와 함께 했을 때만 빛을 발했다. 2인자의 숙명이고 한계지만 그는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였음이 분명하다.

언젠가 그는 "내 묘비에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이라는 직함 하나만 적어 넣을 수 있으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권노갑은 김대중과 함께 한 생을 살아왔다.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형극(荊棘)의 세월을 그들은 민주화에 대한 일념으로 버텨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어깨 위엔 '민주화의 공역자'라는 자랑스런 견장이 얹혀졌다. 그러나 그 자랑스런 견장은 '부패'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권노갑은 부정한 돈에 연루된 탓으로 감옥도 다녀와야 했다. 바로 그 부정한 돈 때문에 증언대에 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던가. 한때 호남의 정치지망생들은 '선생님의 낙점'을 받기 위해 먼저 권노갑을 찾았다. 그들의 손엔 '정치헌금'이라는 선물이 들려 있었지만 그 선물이 이젠 부메랑이 돼 권노갑의 정치인생 후반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증언을 마치고 나온 권노갑의 주변을 십여 명의 사람들이 에워쌌다. 국창근 전 의원, 김대동 전 나주시장 등이었다. 그들은 권노갑을 검은 승용차에 태운 뒤 어딘가로 '모셔갔다'.

그러나 그의 뒷모습이 예전처럼 '폼'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은 비단 기자뿐이었을까. /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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