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아닙니다, 초콜릿입니다

어른들의 그릇된 상술에 멍드는 동심

등록 2003.02.13 10:32수정 2003.02.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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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우리 집 위층에 사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엘리베이터안에서 뭔가를 만지작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담배 케이스 같은 것에 담배가 들어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이의 아빠가 승용차 안에 놓고 온 담배 케이스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투명 케이스에 든 것이 모양은 담배로 보였지만 한번도 보지 못한 듯한 디자인이어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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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이데이를 앞두고 외산담배를 흉내낸 담배 초콜릿이 초등학교앞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 최성근

"이게 뭐니?"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초콜릿이요"하고 답을 했습니다. "꼭 담배같이 생겼다"고 했더니 "아이는 요새 아이들 사이에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이 초콜릿이 인기짱"이라며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답을 했습니다.

어른들의 그릇된 상술이 빚어낸 충격이었습니다. 걱정스러운 생각에 아이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 보았습니다. 아이는 학교 앞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친구들도 담배를 피는 모습으로 초콜릿을 먹는다고 태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심지어 게임을 해 '담배 초콜릿 따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담배 초콜릿이 보물처럼 여겨지나 봅니다. 그 아이는 "게임에 져서 두 개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초콜릿이 두개도 아니고 두 개비가 된 것입니다.

어른들이 담배 피는 것을 흉내내 보고 싶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충동을 이용한 비뚤어진 상술입니다. 담배 초콜릿의 케이스에는 'MILD SEVEN'대신 'WILD SEVEN"이라고 적혀져 있으며 외산 담배포장을 모방했으며 케이스에도 '본 제품은 담배가 아닙니다' '흡연생각이 날 때 하나씩 드세요' '특히 어린이들에게 판매를 삼가해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담배 초콜릿은 초등학생들을 겨냥해 만들어진 것처럼 학교 앞 가게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귀엽고 예쁜 디자인도 많을 텐데 하필 담배일까. 이 초콜릿을 만든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사는 아이들을 자기 자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가능한 일일까?

담배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지금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처음에 담배를 입에 댄 것을 많이 후회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그릇된 상술은 초등학생들에게 초콜릿을 통해 담배에 대한 친근감을 자연스럽게 심어주고 있지 않나 걱정입니다. 초콜릿의 달콤함으로 말입니다. 기우일까요?

결국 어른들이 암 덩어리로 알려진 담배를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간접적으로 권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외에도 아이들이 나쁜 유혹에 빠져 있는지 어른들 모두가 유심히 살피고 감시하며 우리 주변을 잘 챙겨 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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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쓰고 함께 공유하고 싶어 가입했습니다. 삶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냥 스치는 사소한 삶에도 얼마다 깊고 따뜻한 의미가 있는지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그래서 사는 이야기와 특히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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