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11

등록 2003.02.13 17:46수정 2003.02.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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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부인의 방에서 나온 주몽은 곧장 마구간으로 향했다. 마구간에는 새로운 마구간지기를 기다리는 하인들과 함께 대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부터 늦는구나! 듣거라! 폐하와 내가 탈 말을 하나씩 선별할 것이다. 한 달의 말미를 줄 터이니 잘 해보도록 해라! 직무를 태만히 하면 엄벌이 있을 것이다!"


대소는 이 말 한마디를 던지고서는 훌쩍 자리를 떠나 버렸다. 주몽은 말에게 먹이를 넉넉히 주고 닦아줄 것을 하인들에게 당부 한 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 한 필을 골라 잡아탄 채 훌쩍 떠나버렸다. 대소왕자의 엄포 따윈 주몽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주몽이 말을 몰아 가는 동안 누군가 말을 타고 뒤쫓으며 주몽을 불러 세웠다. 다름 아닌 협부였다.

"허! 주몽공자 어딜 그리 바삐 가슈? 방금 마구간에 들렀는데 금방 떠났다고 하여 허겁지겁 쫓아오지 않았수?"

"무슨 일이오?"

"오이형님이 제게 앞으로 주몽공자가 맡은 일을 도울 것을 당부했다오."


"마구간 일이 뭘 그리 도울 것이 있겠습니까."

협부가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처럼 주몽공자께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있을 때 대소왕자라도 오면 어쩌시겠습니까? 게다가 아랫것들은 감시하지 않으면 일을 방만이 하는 법이라오."

주몽은 오이의 배려가 세심한 곳까지 이르렀음을 깨달았지만 현재의 자신이 초라함을 느끼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럼 난 마구간으로 가겠소. 바람이나 잘 쐬다 오슈."

인사의 말을 남기며 주몽과 협부는 각기 반대방향으로 갈렸다. 천천히 가는가 싶던 주몽은 갑자기 무리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말을 달려나갔다. 이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주몽은 광활한 대지로 나가고 싶었다. 말이 우물가를 빠르게 스치며 지나갈 때 주몽의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예주낭자였다. 주몽은 급히 말을 돌려 예주낭자에게로 갔다.

"저도 말이 저쪽에서 올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지요. 혹시나 그냥 지나쳐 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마치 오래 전부터 알아온 사람인 듯 맞이하는 예주낭자에게 주몽은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내밀었다. 예주낭자는 자연스럽게 주몽의 손을 잡고 말 위에 올랐다.

그윽한 숲길을 지나 개울가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한 후 주몽과 예주는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둘은 여전히 별다른 대화가 없었지만 이미 서로간의 교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새로 맡은 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죠?"

주몽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예주낭자를 쳐다보았다.

"저번 사냥때 있었던 일도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대소왕자의 작은 그릇을 탓하며 공자님을 안쓰럽게 보고 있다지요."

주몽은 돌 하나를 집어 개울가에 던졌다. 작은 파문을 그리며 돌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전 아버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말을 많이 접해봤어요. 저 말은 온순하긴 하지만 그리 좋은 말은 아니군요. 좋은 말이 있다면 이 나라를 벗어나는 것도 수월할 테지요?"

주몽의 눈이 번쩍 빛났다.

"혼인한 사이라면 저도 쉽게 공자님을 따를 수 있을 겁니다."

주몽은 조용히 예주낭자의 손을 마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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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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