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12

등록 2003.02.14 17:45수정 2003.02.1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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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부터 주몽은 협부가 대신 자리를 지켜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구간 일에 소홀함이 없었다. 협부로서는 주몽이 저러다 아예 말지기로 눌러앉아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까지 될 지경이었다.

주몽은 예주낭자와의 만남도 틈틈이 가져 급기야는 서로 혼담이 오고갔고 날짜만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오이로서는 이런 주몽의 행동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소식에 따르면 금와왕이 대소왕자를 태자로 임명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통치를 모두 맡길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우린 할 만큼 했소이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어차피 주몽공자를 우리 일에 완전히 끌어들이기는 틀린 것이 아니오. 그냥 우리끼리라고 결행하는 것이 좋소이다."

마리의 말에 오이는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마리의 말이 그렇다고 해도 전에 주몽이 말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말이 결코 허튼 소리로 들리지 않았던 오이였기에 협부를 계속 주몽 옆에 두면서 동태를 살피는 것이었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전에 얘기되었던 대로 왕궁을 접수하고 대소왕자 대신 어린 막내왕자를 태자에 앉히는 것으로 결정지어야 하오."

"그러기에는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 우선 우리의 힘은 너무나 약하고 기존 대신들의 자리를 채울 인물들도 부족하오."

오이는 마리의 말을 물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불안한 듯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이오? 이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오이는 한숨을 쉬었다. 만약 마리의 말대로 일이 진행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명분조차 부족할지 몰랐다. 대소왕자를 비롯한 다른 왕자들이 자신들의 뜻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막내왕자를 내세워 자신들이 국가운영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서면 어느 백성이 이를 따르겠는가?


게다가 영향력 있는 귀족들이 이를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하는 계산을 하면 오이로서는 이러한 선택은 절대로 피해야 했다. 적어도 주몽 같이 영고 이후 최근에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를 내세워 백성의 신망을 얻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소. 당분간은 뭔가 기회가 생길 때까지 이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소. 괜히 성급하게 생각하면 이쪽이 당할 뿐이오. 왕께서 태자책봉을 서두르지 않는 게 우리 같은 이들을 떠볼 의향에서 그러다는 걸 정녕 모르시오?"

오이와 마리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깊이 상심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엿듣고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에이! 이 녀석은 통 먹지를 않네!"

한편, 협부는 말들을 돌보고 있는 주몽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저 갈색 말 있지 않수! 가장 잘 뛰어 놀아 폐하에게 바치기 위해 눈 여겨 봐두었던 놈인데 통 먹지를 않아 바싹바싹 마르고 있소! 저런 놈을 데려다가 어디 쓰려고 하는 거요?"

주몽은 다른 말들을 돌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협부에게 말했다.

"이미 폐하나 왕자에게 드릴 말들은 골라놓지 않았습니까? 마침 제게는 말이 없어 제가 간청한 일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그렇지 저걸 말이라고......"

협부가 보고 있는 말은 한눈에도 비썩 말라 볼품 없이 생긴 말이었다. 하루 전, 말을 가지러 온 대소에게 주몽이 그 말을 데려다 키우고 싶다고 대소에게 말하자 대소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푸하하!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말고기가 그리웠던 게로구나!"

주몽이 오이와의 만남도 거절한 채 마구간 일에만 전념하는 것도 모자라 이상한 말까지 가져가겠다고 말해서 비웃음거리가 되니 협부로서도 속이 탈 지경이었다.

"내일부터는 오이형님에게 말해서 여기 나오지 않겠소."

협부는 퉁퉁 부은 얼굴로 주몽에게 협박하듯 쏘아붙였다. 주몽은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협부를 지나쳐 비썩 마른 말을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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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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