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수배학생들 어떻게 지내나

"감기와 식중독에 걸려 고통스러워도 병원에 가지 못해"

등록 2003.02.18 19:53수정 2003.02.1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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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이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로 규정된 지 올해로 7년째다. 전국적으로 해마다 200여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정치수배자가 되거나 구속된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1997년 191명, 1998년 182명, 1999년에는 161명, 2000년 76명, 2001년 72명, 2002년 105명 등 지난 6년간 787명이 구속되고 현재 전국적으로 약 200여명이 수배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남지역도 현재 1명(허남영, 2002년도 경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 구속 마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고 5명(창원대학교 4명, 경남대학교 1명)이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가입혐의로 수배된 상태이다.

지난 17일 허남영 학생이 구속 수감되어 있는 마산교도소로, 그리고 수배 학생들이 '창살없는 감옥'이라 부르는 창원대학교로 수배학생들을 만나러 갔다.

아래는 허남영씨와의 인터뷰다.

-날씨가 아직 쌀쌀한데 건강은 어떤가?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옷을 몇겹 껴입었는데도 안이 좀 춥다. 그럴때면 팔굽혀펴기도 하고 그렇게 지낸다.(같이 동행한 후배를 보며)부탁한 담요는 가져왔나?"

-지금 심정은 어떤가?
"지난 1년간 수배생활 할 때는 그래도 선후배들이 함께 있어 외로운 생각이 덜했는데 여기 오니까 많이 외롭다. 법정에 섰을 때, 검찰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를 대할 때 모두 혼자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아픈 것이 사실이다."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가입혐의로 구속된 상태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97년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후 그동안 한총련은 강령과 규약도 개정하고 노선도 많이 변했다. 폭력투쟁을 지양해 화염병도 쇠파이프도 사라졌다. 하지만,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국민들의 시각도 변했지만, 법과 제도는 아직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평가가 나올 것이다."

-총학생회장직에 있다가 구속되어 학생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했을 것 같은데.
"더 이상은 저 같은 사람이 나오면 안됩니다(웃음). 저 이외에도 경남지역에 5명의 대학생이 수배중이다. 저도 1년 간 수배생활을 하다 현재 감옥에 와 있지만, 수배 학생들 모두가 창살 없는 감옥에 있는 거나 다름없다. 학교 이외에 어디에도 나가지 못하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가족이 입원해 있어도 병문안 조차 갈 수 없다."


-허 회장도 어머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문 안을 갔다가 잡힌 것으로 아는데.
"울산이 집인데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에 가서 어머니하고 불렀더니 어머니께서 뭐하러 왔냐며 화를 내셨다. '잡혀 갈려구 왔냐'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부산톨게이트에서 잡혔다."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은?
"며칠 전에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쓸려고 하는데 눈물이 그냥 흐르더라. 수배생활 할 때에도 전화하고 찾아 오셔서 걱정을 참 많이 하셨는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지금 버티고 있는 것도 다 부모님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지고, 석방이 되면 밀린 효도, 공부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필요한 것은 없나?
"자유가 필요하죠(모두 웃음)."

-노무현 당선자를 비롯해 대통령직 인수위가 한총련 수배학생들에 대한 수배해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노무현 당선자도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인수위측에도 민선 변호사 출신이었던 분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고 들었다. 시대를 역행하지 않는 현명한 판단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감기나 식중독에 걸려도 병원조차 갈 수 없어 고통 받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빈소에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수배 학생들이 많다. 이들이 빨리 자유의 몸이 되어 집으로 그리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 그리고 나도 빨리 나가게 해달라!(모두 웃음)"

-석방되어 나가면 뭘 하고 싶나?
"머리를 깎고 목욕탕에 가고 싶다. 수배 당한 후로 목욕탕에 가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마산교도소를 나와 창원대학에 도착하니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일단 총학생회로 갔으나 수배학생 모두 등록금 인상과 관련해 학교측과 재정분과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는 본관3층 휴게실에서 극비리(?)에 이뤄졌다. 2003년 창원대 총학생회장인 김선예 회장(97학번, 이하 김), 2002년 인문대 학생회장을 역임한 황정원 학생(95학번, 이하 황), 2002년 사회대 학생회장을 역임한 조용한 학생(99학번, 이하 조)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건강은 어떤가?
"(김) 현재 감기몸살과 식중독에 걸려 많이 고통스럽지만, 수배중이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한 달에 한번 서울에서 집회가 있을 때에 목욕을 가곤 하는데, 환경이 이렇다보니까 수배학생이 더 질병 등에 노출되는 것 같다. 그리고 수배생활이 1년 정도 되었을 때에는 견딜만 했는데 수배생활이 2-3년이 되어가다 보니까 면역이 떨어져서 그런지 병에 걸리는 횟수가 빈번해진 것 같다."

-(경찰도 그렇겠지만)한총련 수배 학생들이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조) 학교 내 모 건물에서 함께 숙식을 한다. 저녁이 되고 학우들이 학교에 없으면 건물 밖으로 되도록 나오지 않는다. 작년에 학교 안에서 경찰에게 수배 학생이 잡혀갈 뻔했는데 그 이후로 밤에는 되도록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꼭 2-3명이 짝을 지어서 다니고, 간혹 혼자일 때는 뛰어 갈 때도 많다. 지난 설에는 수배 학생들끼리 저녁에 자게 되었는데, 문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그리고 한때, 경찰이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잡혀가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듣고는 부모님이 찾아 오셨다고 해도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힘든 점은 무엇인가?
"(황)저는 집이 팔용동인데, 학교에서 버스를 타면 집까지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데도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픈 점이고, 저뿐 아니라 수배 학생 대부분이 가족들과 마음 편히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싶은 작은 소망들이 있다. 곧 좋은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한총련이 7년 동안이나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것과 관련해 할 말이 있다면?
"(김)한총련이 국가보안법으로 수배를 받아야 할 객관적인 사실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총련이 초기에 연방제 통일 방안을 주장했지만, 이 연방제 통일 방안도 통일을 연구하는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 통일의 한 방법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지금은 한총련의 강령과 규약도 바뀌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수배조치를 내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규 수배자들이 해마다 200여명이나 늘어나는 상황인데 올해 노무현 당선자를 비롯한 인수위에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천명 만명 수배자가 양상 되는 꼴이 될 것이다."

"(조)학생회장을 맡고 출두요구서가 나왔다. 출두요구서를 학교에 붙여 놓고 학생들에게 여기에 대해서 물었다. '너가 뭐했는데 수배를 당하고 이런 것이 나오냐 황당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학생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냐' 이런 식이다. 나도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황당하다. 2차 3차 출두요구서가 나오고 부모님이 설득하러 오시고 수배자가 됐다. 사상과 생각의 자유를 구시대의 법으로 가두어 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어머니가 3일에 한번씩 전화를 하시는데 그때마다 물어보는 말씀이 언제 수배가 해제 되냐였다. 예전에 어머니와 갈등이 많았다. 집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나를 선택해준 학생들의 믿음을 지킬 것인가를 놓고 갈등이 많았다. 결국 학생들과의 믿음을 지키는 것을 택해 수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낀다. 찾아가서 어깨라도 주물러 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존재한다."

"(조)제가 장손인데 이번 설에 집에 가지 못해 부모님이 음식을 싸가지고 저를 찾아 오셨다.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래도 아들을 믿는다는 말을 하고 돌아 가셨는데,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아들이 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기형도의 시가 생각났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 봄처럼 아름다운 이십대의 청춘들을 '창살 없는 감옥'에 묶어두고 서둘러 교문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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