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적 음악들로 살려낸 미국식 가족주의

Catch Me If You Can O.S.T.

등록 2003.02.19 09:01수정 2003.02.1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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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Cath Me If You Can)'은 매우 미국적인 영화다. 아마도 가장 미국적인 영화 감독일 스티븐 스필버그, 가장 미국적인 영화 배우일 톰 행크스, 거기에 할리우드 영화 150여 편의 음악을 전담해온 영화음악가 존 윌리암스까지 가세했으니 이들만으로도 흥행은 보장된 셈일 터.

여기에 전세계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는 '레오나르도' 왕자님까지 가세했으니, 굳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식으로 예측하지 않더라도 '대박'은 당연해 보인다. (예상대로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치환하면, 가족 이데올로기에 집착한다는 얘기도 된다. 가족주의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은 때로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무시하게 만들고, 사회의 추악한 현실을 포근한 이미지로 뒤덮기도 하며, 심한 경우에는 사실 관계를 왜곡하게 하기까지 한다.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영화는 시종 유쾌하고 밝게 전개되면서, 실재 인물인 프랭크 아비그네일의 삶을 멋대로 난도질한다. 웃으며 사람 패는 깡패처럼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건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프랭크 아비그네일이라는 큰 사기꾼이 있었다카더라', 그리고 '어린놈이 FBI를 가지고 놀았다카더라'는 달랑 두 가지 뿐이다. 나머지는 스필버그의 신나는 가족주의 주입쇼로 점철되었는데, 특히 미국으로 이송되는 비행기 안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는 씬, 그리고 탈출해서 어머니의 집으로 찾아가는 씬은 사실 왜곡의 절정을 이룬다.

아마 본 영화를 즐겁게 본 독자들도 프랭크 아비그네일의 자서전 한번만 들춰보면, 스필버그 영화의 무시무시한 왜곡과 이데올로기 주입에 대해 깨닫고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가족이란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교묘하게 강요당할 때는 이유 모를 '반발심'이 생기지 않는가? 그저 필자만의 느낌일까?

가족주의를 이번에는 음악과 연계해 생각해 보자. 아마 필자가 영화음악가라면,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영화에 NIN이나 롭 좀비 같은 뮤지션의 곡을 삽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포근한 선율, 어쿠스틱 악기의 단출한 연주, 달콤하고 낭만적인 보컬이 강조된 곡들을 선곡할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디즈니 만화 사운드트랙 같은 노래들. 존 윌리암스의 이번 영화 음악이 딱 그 짝이다. 거기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5~60년대 미국 도회지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곡이면 더 좋을 것이고.


그래서 'Cath Me If You Can'에서의 존 윌리암스는 이전 작업들에서의 빵빵한 오케스트레이션, 커다란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음악을 철저히 배제한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흘러나오는 테마곡 "Cath Me If You Can"에서부터 조짐이 보이는데, 매끄러운 색소폰 선율이 복고적인 분위기를 한껏 연출해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오리지널 스코어는 한결같이 편안하고, 고풍스럽다.

레트로 스윙의 부유하듯 경쾌한 느낌, 간결한 피아노 연주와 단아한 브라스 섹션. 아마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당시 미국 사회 분위기도 그랬을 것이다. 미국은 강한 나라였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며, 사람들은 거품같은 경제적 부흥 속에서 꿈결을 노니는 듯 들떠 있었다.


존 윌리암스가 노련하게 캐치한 것은 그런 시대적 감성이며, 다시 말해 가족들과 함께 행복했던 옛 시절의 추억들이다. 이 영화의 음악은 그런 면에서 영화의 주제 의식에 철저히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오리지널 스코어 외에도 아스트러드 질베르뚜(Astrud Gilberto)의 "The Girl From Ipanema"를 비롯, 주디 갈란드의 "Embraceable You", 냇 킹 콜이 달짝지근한 음색으로 선사하는 "The Christmas Song", 프랭크 시나트라의 "Come Fly With Me"와 같은, 아버지 세대의 음악들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 곡들은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듯 영화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사운드 트랙의 복고적인 감성에 부응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따스하며, 우리가 겪지 못한 시대와 세대의 공기 -그 냄새를- 맡게 해 주는 음악들이다. 주제의식이 불쾌하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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