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와 더불어 생각해본 6가지 음악 이야기

[나의승의 음악이야기⑥]

등록 2003.02.19 15:57수정 2003.02.26 12:53
0
원고료로 응원
이야기 하나

a 헤르만 레오나드의 사진으로 만든 덱스터 고든의 앨범 표지

헤르만 레오나드의 사진으로 만든 덱스터 고든의 앨범 표지 ⓒ 나의승

헤르만 레오나드(HERMAN LEONARD)의 삶은, 카메라의 매력에 이끌린 것과 재즈를 사랑한 것의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어렸을 적부터 사진을 줄곧 다루었고, 고등학교 이후에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했다. 아이러닉하게도 그는 군대의 사진병 시험에서 떨어져, 의료병으로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학교로 돌아가 47년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첫 번째 전문적 경력은 인물 사진가로 유명한 '유서프 카쉬'의 견습생으로 일한 것이다. 레오나드는 카쉬와 함께 떠돌아다니면서 '알버트 아인쉬타인', '트루먼'대통령, '아이젠하우어'장군 등의 사진을 찍었다.

테너 섹스폰 연주자 덱스터 고든의 가장 인기 있었던 음반중 하나인 '민요(Ballads)'의 앨범커버 사진은 레오나드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나는 한때 굶주린 배낭을 매고 떠돌다가 암스테르담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지상전철의 앞이마에 사람 키의 두 배쯤 되는 크기로 프린트되어 있었던 그 사진을 보았고,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사진이 전철의 이마와 옆구리에 걸쳐서 인쇄되어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도시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문화 일부를 느낄 수 있다. 느리고 낮게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는 '덱스터 고든'의 테너섹스폰- Darn that dream, Don't Explain- 값싼 앰프와 스피커에 낮은 볼륨으로 듣는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을 이완시켜 준다.

암스테르담의 그 전철을 운전하는 사람은 "내 전철에는 말이야, 연기 자욱한 덱스터 고든의 섹스폰 안고 있는 사진 있지? 그게 그려져 있어! 길에서 그걸 보거든, 내가 운전하는 차인 줄 알란 말이야!" 라고 말하며 아들과 아내 앞에서, 혹은 친구들에게 뻐기며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작은 상상력을 동원한 예를 들어 본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문화다"라고 함부로 말하고 싶다.

이야기 둘


a 헤르만 레오나드가 찍은 케니 클락

헤르만 레오나드가 찍은 케니 클락 ⓒ 나의승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서 "위대한 음악은 없다, 위대한 연주가 만 있을 뿐이다" 라는 말도 있지만, 그만큼 재즈는 연주자의 몫이 너무도 크게 부각되는 장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할 때, 인물사진을 즐겨 찍는 사진가가 있고, 게다가 그가 '재즈 매니아'라면, 그에게 연주가 보다 더 사진 찍기 좋은 대상은 별로 없을 지도 모른다. 재즈연주자의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어쩌면 재즈 그 자체를 찍는 것과도 같다. 자욱한 연기와, 각종의 악기와, 절묘한 표정의 포착, 거기서 사진가들은 치명적인 매력을 발견했을 것이다.

드럼 연주자 케니 클락(Kenny Clark)은 50년대, 블루스의 진솔한 맛을 내는데는 가장 솜씨가 좋은 브러슁(brushing-막대기를 대신해서 가는 철사나 브러쉬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재들을 굵기 별로 묶어서 드럼을 긁거나 두드리는 것)을 자랑하는 연주자였다. 그는 결국 마일즈 데이비스의 마음에 들어서, 마일즈밴드의 일원으로, 좋은 연주를 남겼다.


음반의 표지사진이나 그림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수의 보통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만약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나, 외국말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다가 장애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표지사진으로부터, 거기에 들어 있는 음악과 거기서 느꼈던 감성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음반을 만드는 분들에게 좀더 정성을 기울여 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 셋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Don't Talk About Music, Music Speaks Itself" 이 말을 "음악에 대해서 말하려 하지 말아라, 음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언어다"라는 말로 이해 하고싶다. 어쩌면 음악은 지식이 아닐 것이다. 음악을 듣고 생각하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미 음악에서 불필요한 순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

a 우암 송시열이 써 전남 담양 소쇄원에 내건 '제월'이란 한자

우암 송시열이 써 전남 담양 소쇄원에 내건 '제월'이란 한자 ⓒ 나의승

일단 듣게 되면, 머리보다는 마음이 귀보다는 몸이 먼저 알게 될 것이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의사 전달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에 들어 있는 수 없는 인간의 느낌들이 어느 언어보다도 빨리 전달된다. 그래서 때로 구름도 거두게 하고, 티끌도 허락함이 없이, 맑고 밝게 비추는 달과도 같은 마음의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 가면, 제월당(霽月堂)이라는 정자가 있다. 나는 그곳의 "제월(霽月)"이라는 아름다운 글자와 그 의미를 사랑한다. 씻은 듯이 나타나는 달과도 같은 밝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편 중 하나로, 그 마음에 이를 수 있는 최고의 매개체로, 나는 음악을 꼽는다. 소쇄원에 남아있는 '하서 김인후' 선생의 48영 이나되는 시들은 알고 보면 모두 음악이다.

이야기 넷

소니 클락(Sonny Clark)의 쿨 스트러틴(Cool Struttin)이라는 음반의 표지를 찍은 '프란시스 울프(Francis Wolff)'는 '헤르만 레오나드'처럼, '블루노트' 레코드의 사진을 다수 남긴 유명 사진작가이다. 50년대의 사진으로는 남다른 구도와 매력을 갖고 있으며, '아트 파머(트럼펫), 재키 맥린(앨토 섹스폰), 폴 챔버스(베이스), 필리 조 존스(드럼)'등, 당시 대표적인'밥' 연주자들의 절묘한 호흡은 애호가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명반의 조건이 된다.

이야기 다섯

a 마일즈 데이비스

마일즈 데이비스 ⓒ 나의승

Miles Davis Complete Discography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야즈키 나카야마'라는 사람은, 150여장의 음반을 표지사진과 함께 정리해서 책을 출판했다.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그보다 더 작은(예를 들면,1969,덴마크,46쪽 분량) 책자를 만든 적이 있었지만, 마일즈 한사람의 150장 음반을 116페이지 분량으로 출판한 것은 그가 처음인 것 같다.

일본음악문화의 한 예를 든 것이지만, 이것은 우리를 그들과 비교하게 만드는 예 일수 있다. 혹시 일본문화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 현대문화의 대부분이, 서구 사회로부터 일본이라는 나라를 여과해서, 일제35년을 필두로 받아들여진 것 일 것이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약100년쯤 되는 재즈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흑인들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고, 현대음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는 비공식 음반까지 모두 합해서, 200장이 훨씬 넘는 방대한 녹음을 남긴 사람이다. 그것은 연주자로써 끊임없는 도전과 발전을 거듭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사실 나는 천 몇백의 재즈 음반을 갖고 있는데, 그중 마일즈의 음반은 100장이 넘고, 그것은 어떤 연주자보다도 많은 량이다. 대단한 연주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의 음반을 그렇게 많이 소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여섯

지금 일본의 음악은 어떤가, 잠시 한 부분을 보기로 하자.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사람이 연주한 재즈는 싫어한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호기심으로, 도쿄의 어느 음반매장에 들어가 일본재즈(Japan Jazz)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봤다. 그 음반매장의 일본재즈는 눈짐작으로 봤을 때, 대략 7000 레퍼토리가 넘는 것 같았다. 몇 십장에 지나지 않은 한국의 재즈와 비교할 때, 그것은 천문학적인 량으로 보였다.

a 나카야마가 쓴 '마일즈 데이비스의 디스코그라피'이란 책의 표지

나카야마가 쓴 '마일즈 데이비스의 디스코그라피'이란 책의 표지 ⓒ 나의승

'나카야마'의 책, 방대한량의 일본재즈, 그것은 우리를 기죽게 하고, 압도할 수도 있다. 일본은 이미 지구라는 이름의 이 혹성에서, 가장 많은 재즈를 생산하고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들의 G.N.P는 유럽의 프랑스를 앞지른다.

이제는 뿌리치고 파내어 없애 버리고 싶어도,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이, 일본문화는 깊숙이 우리 문화 속에 흡수되어 있다. 먼저 일제35년이 이유가 되어서 그렇고, 지금은 그들의 국력이 그렇다. 일본의 40대 이상 나이의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모르면 간첩이라고 말하는 일본 최고의 '앵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정서와, '황성옛터', '봉선화'를 구분할 재주가 나에게는 없다. 우리들의 아버지, 형들은 그런 문화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일제 청산해야 한다고 가난한 목소리나마 말해보는 어느 선배는 뽕짝과 앵카를, 언어로는 구분할 수 있어도, 화성의 구조로는 구분하지 못한다.

TV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국내 가수들의 음악에서, 미국음악 복사판의 느낌을 어쩌지 못해 얼굴 붉어질 때도, 우리에게는 대안이 없다. 슬픈 일이다.

우리는 때로 세상을 바꾸어 보자고 말할 때, 개혁해 보자고 말할 때, 혹시 우리 자신도 개혁되어야 할, 그렇게 몸부림쳐 봐야할, 불쌍한 대상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시대적 책임을 질만한 존경스러운 어른이 별로 없는 듯이 느껴지고, 기름값과 모든 물가가 오르며, 전쟁의 소문이 무성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기만 하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 총 생산량이 '미 8군'의 일년 예산보다 더 적었던 시절이 불과 몇 십년 전의 일이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만큼 우리는 와 있고, 미래는 결코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의 논리와 함께 물밀 듯이 들어온 그들의 문화는, 이제는 척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선을 넘은 지 너무 오래 되어 버린 것 같다. 미국과 일본은 언젠가는 넘어서야만 할 언덕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보다 나은 문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희망을 우리는 월드컵4강의 함성과 두 여중생을 위한 촛불시위의 거대한 물결을 듣고, 볼 때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수민중의 믿음과 확신으로 바뀌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2. 2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3. 3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4. 4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추석 민심 물으니... "김여사가 문제" "경상도 부모님도 돌아서"
  5. 5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