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유적지에 댐을 짓는다고?

기존댐 3배 규모로 증축... 윤선도 유적 상당부분 멸실 위기

등록 2003.02.24 12:07수정 2003.02.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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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길도에는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 유령은 '댐 건설'이라는 망령입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표작 '어부사시사'의 무대인 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 완도군에서는 그 보길도의 부용동 일대에 273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50만톤 규모의 상수원 댐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저수량 50만 톤 규모의 기존 댐을 확장하여 150만톤 규모로 증축하는 공사이지만 확장 규모로 봤을 때 새로운 댐의 건설이라 해야 옳습니다. 댐이 건설되면 어부사시사의 무대이자 조선시대 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고산 윤선도의 부용동 원림 유적이 상당 부분 멸실되게 됩니다. 옥구슬 구르는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낭음계 계곡은 영영 수장될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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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부용리 댐건설 예정지 ⓒ 강제윤

부용동에는 낭음계 뿐만 아니라 사적 368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산의 유적지 낙서재와, 동천석실, 곡수당, 무민당, 오운대, 하한대, 혁희대 등 문화 유적이 즐비해 있습니다. 국립공원 지역에 들어서는 이 댐은 문화재 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부터도 500미터 안에 위치하게 됩니다.

댐건설을 통해 문화재를 멸실시키려는 바로 그 옆에서는 363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인 고산 윤선도 유적지 복원 공사가 한창입니다.

고산의 문화유적을 복원하기 위해 수백억원의 돈을 쓰고 있는 바로 옆에서 또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고산의 문화 유적을 수장시키는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두 공사 사이에 어떠한 충돌도 없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 공사를 주관하는 두 기관은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나라의 정부에 속해 있습니다.

완도군과 건설 회사에서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미 건축 사무실 가건물을 짓고, 수도 배관설비를 들여다 쌓아놓은 채 공사를 강행할 준비에 돌입해 있습니다. 애초부터 섬의 주인인 주민들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내일이면 국민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게 되지만 여전히 정부정책에 국민이 참여할 틈새는 많지 않습니다.

그간 몇 번의 공청회가 있었지만 관 주도의 수많은 공청회들처럼 그것은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공청회에서 나온 주민 반대의견이 반영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지금 보길도에서는 보길면 청년회를 중심으로 한 섬 주민들의 반대투쟁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사가 중단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존의 댐 또한 보길도 주민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건설된 것입니다. 1986년 보길도 옆 섬 노화도 상업지구에 물을 대기 위해 댐이 건설됐습니다. 그때도 보길도 부용리 주민들은 지하수 고갈과 농작물 냉해 피해를 우려하여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당시 전두환 군사정부는 완도에서 무장 경찰을 들여보내 주민들을 진압하고 댐건설을 강행했습니다.

2003년, 군사정부에서 민주정부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상수도 혜택을 못 받고 있는 보길도 일부 지역과 노화도 전역에 물을 댄다는 명분으로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보길도는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물이 풍부한 섬입니다. 노화도는 여느 섬들과 마찬가지로 물이 부족한 섬입니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나누어 먹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래서 보길도 주민들은 노화도에 물을 주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기존의 댐건설 이후 때때로 심한 가뭄이 들면 보길도 주민들 또한 물 부족에 시달리기도 한다는데 있습니다. 보길도 주민들은 댐건설이 물 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댐 건설을 반대합니다. 댐건설을 통해 저수량을 늘리더라도 상수도 공급 지역을 현재의 보길도 일부와 노화도 이목리에서 인구 1만 명이 넘는 보길도와 노화도 전역으로 확대하게 되면 다시 물부족 사태가 올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물론 해마다 비만 넉넉히 와준다면 그런대로 물 기근에 시달리지 않고 해를 넘기겠지만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가뭄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불과 몇 해 전 보길도 주민들은 봄 가뭄으로 50만톤 규모의 댐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댐이 있어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150만톤 규모로 확장하더라도 가뭄으로 인한 물 기근 문제는 해결될 까닭이 없습니다. 그것은 육지의 댐처럼 여러 하천이나 계곡, 강으로부터 물이 유입되지 못하고 비가 올 때 잠깐 흐르는 계곡물을 가두었다가 일년내내 써야만 하는 섬의 댐이 갖는 태생적 한계입니다.

비가 많이 오는 때야 50만톤 규모로도 노화도 전역까지 물을 공급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뭄이 들면 150만톤 규모로 확장하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150만톤 규모로 댐을 확장해 놓고 또 하늘만 쳐다보고 있겠다는 것이 댐 증축 사업의 본질입니다. 결국 보길도의 댐 증축 계획에는 가뭄에 대한 대책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셈입니다.

정책 당국자들은 아마 그때 가서는 또 댐이 작다고 한 500만톤쯤의 규모로 확장할 계획을 내놓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보길도 전체가 댐으로 바뀌고 수몰될 운명에 처하고 말겠지요.

그렇다면 물 문제 해결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문화유적의 보고인 보길도에 댐을 건설하는 길밖에 달리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바닷물 담수화 시설이 그것입니다. 제주의 우도에 1일 천 톤 규모의 담수 시설이 만들어 진 것을 비롯하여 신안군의 홍도와 통영시의 욕지도, 한산도, 남해군의 조도 등을 비롯한 많은 섬들에 바닷물 담수화 시설이 들어서 물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중동뿐만이 아니라 싱가포르와 대만 등의 도서 국가까지 근본적인 물 부족 사태의 해결을 위해 바닷물 담수화 시설을 설비해 활용해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섬지역의 댐은 비가 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만 담수화 시설은 가뭄에도 끄떡없습니다. 더구나 바닷물 담수화 시설은 댐건설보다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힙니다. 현재 보길도 상수도 사업에는 100만톤 규모의 댐 증축과 하루 정수량 4000톤 규모의 정수 시설 등 토목 공사비까지 포함하여 총 273억원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99년경 제주 우도에 하루 정수량 1천톤 규모의 정수시설을 설비한 바 있는 삼양사 환경사업부 관계자는 보길도 상수원과 같이 하루 4000톤 규모의 담수화 시설을 했을 때 드는 사업비는 담수화 시설비 50억원, 토목 공사비 30억원을 포함해서 대략 80억원의 예산이면 충분할 거라고 말하더군요.

댐건설 비용의 3분의 1 정도의 예산이면 가뭄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한 해수담수화 시설을 설비할 수 있는데 굳이 더 많은 예산을 들여서 가뭄에 대책이 없는 댐건설을 강행하려는 정책 당국자들의 그 깊은 속내를 나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고산 윤선도의 문화유적지를 훼손시켜 가면서까지 말입니다. 곧 국민참여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제발 정부 당국자들이 주민들의 의견에 좀더 많이 귀를 기울여 보다 합리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길도의 댐 증축 문제는 노화도가 고향인 완도 강진 지역구의 천용택 국회의원 공약 사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해전 보길도 부황리 천둥골 일대에 제2의 댐을 건설하려다 주민 반대로 무산되자 부용리 댐 증축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지요.

보길도 부용동 댐 증축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사업입니다. 보호받아야 할 문화유적을 훼손하는 댐 건설은 즉각 중단되어야만 합니다. 보길도의 상수도 사업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가뭄에 속수무책인 댐건설이 아니라 비용도 저렴하고 안정적인 바닷물 담수화 시설 사업으로 변경되어야 합니다.

보길도와 노화도 주민들, 그리고 완도군과, 천용택 국회의원이 둘러앉아 합리적인 해결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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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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