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봄날의 개나리

세월이 가도 상처는 꽃 피듯 꽃 지듯

등록 2003.02.25 13:10수정 2003.02.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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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내의 병상을 지켰던 절망 속에서도 늘 희망을 봄날 개나리를 기다리듯 기다렸다.

아내의 병상을 지켰던 절망 속에서도 늘 희망을 봄날 개나리를 기다리듯 기다렸다. ⓒ 황종원

그 날 2월 25일 보통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서른아홉, 아내는 서른여섯.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가 있었다. 아내는 아파트 복도에서 늘 하듯 나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 또한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오리다. 행복한 아침이었다.


나는 과장이었고, 한 동네 사는 양 주임이 승용차 '포니'를 끌고 와서 함께 출근을 했다. 길은 늘 그렇듯 적당히 막혔으나, 늘 있는 일로서 참을 만 하였다. 장충체육관 앞에 왔을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에서는 교통사고 방송이 나왔다. 나나 양주임이나 그런 사고 뉴스를 들을 때마다 하는 말을 하면서 남의 일이면서도 조금 안타까워했다.

그 시간, 아내에게는 치명적인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그 날 웃고 넘길 일로 심한 부부 싸움을 하였고, 끝내 어머니는 혼자서는 견딜 수 없다며 큰며느리인 내 아내를 불렀다. 걸어서도 올 수 있는 작은 며느리를 부르기보다 택시를 타고도 30분이 걸리는 곳에 사는 큰며느리를 불렀다. 거의 숨넘어가듯 하시니 아내는 급해졌다.

아내는 집을 나서기 전에 내게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가 위급하니 부모님댁으로 와달라기에 회사가 있는 충무로에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에 도착하니 이미 와있어야 할 아내는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가벼운 불안에 큰불을 지핀 것은 회사 직원에게서 온 전화였다. " 사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좀 다치신 모양예요."

병원은 부모님 댁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교통 전문 병원이었다. 석촌호수 4거리에서 청색신호를 받고 아내를 태운 택시는 출발을 했고, 성남 방향에서 롯데백화점으로 주행하던 차들 틈에서 차 한대가 차선을 넘어서 다른 차를 추월하며 황색 점등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면서 청색신호를 받고 출발하던 아내가 탔던 택시의 운전석과 충돌을 했다. 아내는 뒷자리 승객 석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안전띠에 무관심했던 때라 택시 문이 열리면서 택시 기사는 차문이 열리면서 차밖으로 내팽개쳐지면서 복부 파열로 하루만에 숨졌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니 목뼈 4번과 5번 사이에 골절이 된 아내는 응급실에서 바리캉으로 머리를 깎고, 두개골에 견인 추를 달기 위해 구멍을 뚫으려는 참이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아내는 나를 알아보았다.


" 아빠."
절망의 외침이 지금도 귀에서 쟁쟁하다. 내가 잘 다녀오라 하던 아침 인사를 하던 때가 두 시간이 지났을까. 전신마비 아니면 사망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절망했다. 가족 모두.
이게 꿈이라면 깨었으면, 생시라면 사실이 아니었으면.

아내가 다칠 무렵에 영화감독 이장호씨도 같은 증세로 교통사고를 당하여 연세대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였다. 나는 아내를 그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싶었다. 장삿속 빠른 병원 측은 구급차를 타고 가려면 아내의 머리에 단 추를 제거하여야하며 운행 중에 사망할 수도 겁을 주며 다른 방법은 일러주지 않았다. 겁에 질리기보다 큰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를 만나서 상황을 알아보았어야 했다.
추를 머리에 매달고 있는 두 달 동안 아내에게는 기적같이 두 손 두 발과 몸의 부분에 신경이 살아나기 시작을 했다. 두 달만에 경추 수술을 하고 나면 더 좋아지리라. 희망과는 달리 아내의 몸은 더 나빠졌다. 오른 쪽은 감각장애, 왼쪽은 운동 장애가 생겼다.


경추 수술을 그 병원에서는 3년 만에 처음 있었던 큰 수술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면서 신경의 어딘가를 잘못 건들이지 않고서야 회복되어가던 신경이 장애가 생길 리 없으나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나는 그 수술을 하기 전에 아내의 곁을 지키고 있기보다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알아보았어야 했다. 아직도 교통 환자를 돈벌이로 알고 끌어안고 허술한 치료로 장애인을 만들고 있는 병의원들이 어디 한 둘이랴. 입원 10개월, 밤마다 아내의 병상을 지키며 나는 아내의 작은 회복을 기쁨으로 살아왔다.

이제 16년이 지났다. 2급 장애인이 되어 한 손 한 발을 제대로 못쓰지만 아내는 장하게 내 곁에 있다. 세월이 갈수록 나아지기 보다 더 힘들다. 장애를 가지고 집안 온갖 일을 하며 아내는 나보다 더 강하다. 아내 혼자서 숨죽여 우는 시간을 내 어찌 알리. 아내가 슬프면 함께 슬프다.

세월이 지나가면 남들은 잊어도 불행을 겪은 가족들에게는 세월이 갈수록 더 생생하다. 가족끼리의 사랑과 헌신이 눈물처럼 매일 흘러도 흘러야 한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불행의 시간이 슬프고 우리에게 달려든 고통에 원망을 한다. 우리 가족에게 고통을 주었던 가해자 가족은 합의를 해주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가해자는 이틀만에 병원을 퇴원하는 경상이었고, 그는 한 번도 우리 가족을 찾아오거나 전화 한 통화를 한 일이 없다. 나는 그들도 불행하여지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들 또한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찌 그들을 용서한다고 부처처럼 예수처럼 말할 수 있으랴. 그럴 경지에 있다면 나는 이렇듯 보통 인간이 아니리라. 그들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탓이려니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 사람을 잊고 산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은 잊는다손 처도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시간, 대구지하철 참사로 시신조차 없이 죽어간 영령들이며, 불에 탄 상처에 괴로운 이들여. 우리의 건망증은 당신을 이내 잊어버릴 것입니다. 당신들의 죽음과 상처는 당신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야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 아니기에 한 조각 뼈를 찾아 가족의 흔적은 찾아주어야 할 것이지만 물청소를 해서 쓸어버리고 피해자의 유품을 쓰레기 더미에 버리는 무지를 저지릅니다.

화상을 입은 피해자의 고통은 언제까지 갈지 모릅니다. 그것을 빠른 시간에 회복에 되는 일이 아니며 그 상처는 쉽게 아무는 것도 아닙니다. 무한 책임으로 고통과 상처를 돌보아야할 것이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치매에 걸린 듯 잊고 만답니다. 대구지하철에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시여. 결코 이 일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슬플 때는 마음껏 우셔야 합니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십시오. 가족을 찾아내라고, 내 아들딸을 찾아내라고. 비록 헛된 일일지라도 마음의 분노는 그렇게 푸셔야 합니다. 그 울음과 통곡을 우리들을 정성껏 내 일처럼 돌봐주어야 합니다. 비록 불행을 잊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처를 빨리 아물도록 도와주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특별한 날이기 보다 평범한 날이 계속 되며 평범한 행복으로 가득 찼으면 한다. 불행을 겪은 자만이 남의 불행에 진정 함께 울 수 있다. 대통령 취임식이 지금 한창이다. 안전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말을 노무현대통령이 한다.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은 대통령은 말로는 쉽게 하지만 아래 숱한 조직들이 똑 바로 움직여주어야하며 우리 자신이 바른 길로 바르게 가야한다.

이 날은 노무현대통령에게 대통령 취임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고, 우리 가족들에게는 가족의 불행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니 세상은 이렇게 양지와 음지가 있는 법이다. 아들은 이 날이 어머니가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날로 생각을 한다. 내게 다가온다.
" 어머니 손가락 둘레를 아세요. 반지 하나 해드리게요."
"반지는……. 엄마는 그런 거 싫어하는 것 알잖아. 꽃 한 송이 들고 와.
그것으로 족해. 이렇게 함께 있어 감사하다고……."
봄날의 개나리 꽃 피듯 불행이 아직도 진행 중에 있지만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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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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