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60

탈출시도 (5)

등록 2003.02.26 13:34수정 2003.02.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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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지옥갱에 내려온 지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간다. 매일 매일이 그야말로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그런 이곳을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독방에서 나올 때 옥졸이 말을 건넸지만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다문 것이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였다.


이후로도 이회옥은 일부러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간간이 솟구치는 웃음까지 막을 수는 없어 가끔 히죽거렸다. 그런 그를 본 다른 죄수들은 슬금슬금 피했다. 혹시라도 미쳐서 날뛸까 싶어 미리 피한 것이다.

한번만 독방 생활을 해도 실성하는데 이회옥은 지금껏 무려 이십오 회나 독방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말은 안 했지만 지옥갱의 모든 죄수들은 나이를 떠나 그를 경외(敬畏)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실성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회옥의 인상이 심상치 않자 혹시 오늘이 그날이 아닌가 싶어 슬금슬금 피한 것이다.

깊은 밤, 작업에 지쳐 모두가 골아 떨어져 있을 때 움직이는 세 인영이 있었다. 이회옥과 냉혈살마, 그리고 비접나한이었다. 살금살금 이동한 그들은 어렵지 않게 독방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곳은 막다른 곳이며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곳인지라 아무도 부근에서 자려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조심한다고 했지만 녹이 슨 철문은 기어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에 놀란 셋은 황망히 흩어졌다. 그리고는 한참 후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사방 이십여 장에 달하는 곳을 샅샅이 살펴 모두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온 것이다.

"끼이이이이익!"

독방의 문을 닫은 때에도 날카로운 금속음은 또 터져 나왔다. 이 순간 셋의 심장은 더 이상 빠를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너무도 긴장한 탓이다.

지옥갱에 도착한 첫날 보았듯이 탈출하다 잡히면 피거형에 처해지게 된다. 세상에 누가 있어 제 똥과 오줌 속에 빠져 죽고 싶겠는가! 하여 극도로 긴장해 있었던 것이다.

"자, 이쪽으로…"
"아, 알았네."

선두에 선 것은 이회옥이었다. 오랜동안 독방 생활을 하였기에 눈을 감고도 움직일 만큼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회옥이 앞장서고, 비접나한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냉혈살마가 따랐다. 그는 혹시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즉각 신호를 보내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독방 문을 여닫느라 난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진이 지났지만 일행은 불과 오십 장 정도만을 전진했을 뿐이다. 문제는 비접나한이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불과 일 장 전진하고 헐떡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우! 얼른 가야 하네. 날이 밝기 전에 나가야 확률이 있어. 그러니 힘이 들더라도 참게."
"헉헉!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형님! 헉헉! 헉헉!"
"아닐세! 미안하기는… 사흘이나 굶었으니…"

냉혈살마는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사흘 간 비접나한이 굶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음식을 나눠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수 없게도 부근에 옥졸이 있었던 것이다.

이회옥이 독방에 있지 않았다면 독방에 갈 각오를 하고 음식을 나눠줬을 것이다. 독방이란 말 그대로 혼자 갇혀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갇히려면 이회옥이 나와야 하는데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기에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전에 이회옥은 탈출로를 뚫고 있다는 것을 들킬 뻔한 적이 있었다. 어떤 자가 죄를 지어 독방형에 처해지게 되었을 때였다.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려다 발각된 자가 있었던 것이다.

지옥갱에서는 자신의 음식을 남에게 나눠줘서도 안 되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모두가 세상 밖에서 한가락하던 악질들이다.

그렇기에 그런 규칙이 없었다면 아마 매 끼니 때마다 난리가 벌어져도 한참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규칙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를 끌고 온 옥졸은 독방 문을 열고 이회옥을 풀어주는 대신 그를 가뒀다. 그때 만일 작업한답시고 올라가 있었다면 발각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몸살 기운을 느낀 이회옥은 체력을 비축하기 위하여 잠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회옥이 하옥되어 있는 동안에는 말썽을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기에 비접나한이 굶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음식을 나눠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닙니다. 형님! 참을 만합니다. 조, 조금만 쉬었다가… 헉헉! 조금만 쉬었다가 갈게요."
"그, 그러게!"

냉혈살마는 마음이 급했지만 차마 채근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사흘을 굶으면 힘을 못 쓸 것이다. 하물며 날마다 힘든 일이까지 해야 했으니 어찌 힘을 내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이 통로의 끝에 당도한 것은 무려 세 시진이 지나서였다. 그때는 이미 날이 밝았는지 조그맣게 뚫린 구멍으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실로 일 년만에 처음으로 보는 햇빛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한지 둘의 얼굴에는 빙그레 미소가 어려 있었다. 이제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찬 것이다.

"후후! 이제 오십니까? 이미 날이 밝아 지금은 나갈 수 없습니다. 천상 여기에서 하루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휴우…! 미안하네. 우리 때문에…"

"아닙니다. 어차피 나가더라도 도주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잠시 쉬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세. 그럼 잠이라도 좀 자 둘까…"

잠시 후,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통로에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지옥갱에 들어 온 이래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매일 매일 극도의 긴장 속에서 힘든 일을 해야했기에 몹시도 피곤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눈만 감으면 잠은 절로 오기에 오랜만에 숙면(熟眠)을 취한 것이다. 피곤하기는 이회옥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씩 굶어가면서 암로를 뚫는 동안 피곤이 누적되어 있었다.

이제 이곳만 벗어나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긴장이 늦춰진 그는 나지막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드르르르렁! 퓨우…! 드르르르렁! 퓨우…! 드르르르렁!…"
빠득! 빠드드득! 빠드드드드득!…

냉혈살마 역시 이를 갈고 있었다. 비접나한만은 그럴 기운도 없는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자, 이제 이곳만 깨면…"

잔뜩 긴장한 이회옥은 조심스럽게 돌덩이들을 떼어냈다.

톡톡! 톡톡톡톡!
"이보게. 아우! 이제 일어나게."

이회옥이 조심스럽게 돌덩이를 떼어내는 동안 냉혈살마는 그때까지도 잠에 취해 있던 비접나한을 흔들어 깨웠다.

"으응! 누구야? 누가 귀찮게… 어, 형님…!"
"쉬잇! 조용히 하게."
"아차!"

비접나한은 도주하던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벌떡 일어났다. 숙면을 취해서 그런지 약간은 기운을 되찾은 듯 보였다.

"자, 이제 소생을 따라 오십시오."

잠시 후 이회옥이 가장 먼저 통로 밖으로 향했다.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밖은 그야말로 세외도원경처럼 보였다.

"으드드드드! 추워…!"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살을 에일 듯한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며 덜덜 떨었다. 밖에 겨울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 지옥갱의 내부는 사시사철 온도의 변화가 없는 곳이다

지열 때문인지 약간 더운 곳이다. 그런 곳에 익숙해 있다 밖으로 나오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경직된 것이다. 같은 순간 이회옥은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었다.

'우와! 장관이다.'

교교한 월광 속에서 높이가 무려 백여 장은 족히 될 빙폭(氷瀑)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포는 모두 아홉 번으로 꺾이며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아홉 마리 용이 서로 승천하려는 몸짓처럼 보였다. 너무도 장엄한 모습에 넋이 나가 멍해 있던 이회옥이 흠칫 놀라며 돌아선 것은 냉혈살마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으응! 저건 분명 구룡폭(九龍瀑)! 그렇다면 여긴…?"
"이곳이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으음! 중원에 높이 백 장에 아홉 번 꺾인 폭포는 구룡폭 밖에 없네. 그렇다면 여긴 황산이네."
"황산이요? 그렇다면 우리가 요령성에서 안휘성까지 끌려 내려온 것이란 말씀이십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그렇네. 이곳은 분명 황산이네. 저건 향로봉(香爐峰)이고 저건 나한봉(羅漢峰)일 것이네."

냉혈살마의 추측은 정확했다. 있기는 있으되 세상 어디에 있는지 알려지지 않은 지옥갱의 위치는 황산이었던 것이다.

황산에는 황산삼폭(黃山三瀑)이 있는데 구룡폭(九龍瀑)과 백장천(百丈泉), 그리고 인자폭(人字瀑)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구룡폭은 사시사철 구름에 휩싸인 운곡(雲谷) 서로(西路)에 있다.

천도봉(天都峰)과 옥병봉(玉屛峰), 그리고 연화봉(蓮花峰)으로 이루어진 봉래삼봉(蓬萊三峰) 중 천도봉과 옥병루(玉屛樓)라고도 불리는 옥병봉에서 흘러나온 물이 운곡계(雲谷溪)의 물과 만나 장엄한 모습으로 쏟아지는 것이 바로 구룡폭이다.

이것은 아홉 번 꺾이면서 쏟아져 내리는데 각기 아홉 개의 담(潭)을 만들므로 그것을 구룡담(九龍潭)이라고 불렀다.

"흐음! 황산이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저게 구룡폭이 분명한 이상 우리가 나갈 길은 이제 운곡 뿐이네. 어서 가세."
"예!"

지금까지는 모든 일을 이회옥이 알아서 했으나 이제부터는 강호의 늙은 생강인 냉혈살마가 맡을 모양이었다. 그의 말대로 구룡폭이 있는 곳은 좌우가 절벽이다. 일행은 그 가운데 옥병루쪽의 절벽을 뚫고 나온 셈이다.

이곳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산 아래로 뻗은 운곡 뿐이었다.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폭포가 쏟아지면서 만들어 내는 물보라로 인하여 자욱한 운무에 휩싸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운곡이라는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십 년 만에 찾아 온 이상 한파(寒波)로 인하여 폭포의 바깥쪽이 얼어붙었기에 물보라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야는 탁 트여 있었다.

"자, 이만 가세!"
"예!"

셋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천천히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대략 오십여 장 정도를 내려갔을 때였다. 집채만한 바위 뒤에서 청의를 걸친 누군가가 튀어 나왔다.

"크흐흐! 이제 내려오시나? 언제 오시나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네. 하여간 어서들 오시게."
"누, 누구시오?"

"크크크! 누구냐고? 삼천이십오견, 이십육견, 그리고 이십칠견! 네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아앗!"

냉혈살마를 비롯한 셋은 대경실색하며 뒤로 물러섰다. 청의를 걸친 사내가 지옥갱의 옥졸이라는 것을 그제야 눈치챈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 괴소가 떠올라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여차하면 작살내겠다는 듯 병장기가 들려 있었다. 잠시 비웃음을 머금고 있던 그는 한 손을 번쩍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크흐흐흐! 무엇들 하느냐? 놈들을 잡아랏!"
"존명!"

청삼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흑의를 걸친 옥졸들이 벌떡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도검창편 등 병장기들이 들려 있었다. 보아하니 길목에 미리 배치되어 있었던 듯 싶었다.

잠시 후 이회옥을 비롯한 셋은 포승줄에 포박되어 있었다. 어디로든 도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히 완벽한 포위를 한 상태였던 것이다.

옥졸들 하나 하나는 이회옥조차 감당할 수 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냉혈살마와 비접나한은 아예 반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생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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