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토종 한우 수컷1김규환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 밤은 죽음으로 비친다. 그 누렇던 논밭에서 반사되는 빛에 환한 밤을 지내다 어느 날 목욕하고 알몸으로 차가운 공기에 이유 없이 내팽개쳐져 썰렁하게 드러난 들바람에 홀로 내버려진 외로운 사람과 같은 처지. 이때 찬이슬 한 방울이라도 내리거나 바람 한 번 "휘-익~" 훑고 지나가면 느껴 본 사람 아니고는 그 기운을 모른다.
밤 공동 묘지에 홀로 서 있을 때 오싹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듯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은 어둡고 침울하고 뼈가 아리고 시리면서 아스스 오스스 으스스해지며 으시시시하기까지 하다. 오돌오돌 떨리는 들녘에서 옷을 입고도 10분을 서서 버틸 장사가 몇이나 될까? 찬비라도 내리치면 '어쩐다지? 어쩔거나?'하며 콧노래를 불러도 보고 무서움을 감추려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보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다. 외려 모든 우뚝 선 사물이 귀신이고 도깨비다.
그렇다고 꼭 그 때만 이런 것은 아니다. 간혹 봄에도 이런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기압이 이래저래 쉬 변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할 일이 또 펼쳐진다. 아지랑이 낮밤을 모르고 헤매다가 느즈막한 밤 마루에 걸터앉아 어슬렁거리며 머물면 영락없이 귀신 미쳐 돌아다니는 꼴이니 뭐라도 나올 분위기다. 봄비 추적추적 바람에 날리면 정말이지 끝내준다. 먼길을 걸어봤던 사람들은 이 을씨년스런 밤을 기억하고도 남는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초겨울에 보리 갈 논밭을 다 갈아엎은 암소는 쉴 새도 없이 '부사리'(숫소, 황소)와 짝지을 때다. 접붙인다고 하는 말이 나무에게만 해당되는가? 결혼하면 아이 낳는 것이 그렇듯 생명 있는 모두는 접 붙는 게 정상이고 이치며 생태적인 것. 우리 안에 가둬 붙잡아 놓고 기르지 않았던들 가축 아닌 짐승이었겠지만 유난히 이 소라는 가축에 들이는 공은 대단했다. 여타 가축과는 판이하다. 가보 1호였던 소에게 들이는 사람의 공력은 물욕의 시작이다. 암소 한 마리가 일년 내내 일하고서 송아지 두 마리 세 마리 낳으면 대박을 터트리는 거다.
이 대박을 보기 전에 소가 1년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한 번 소 입장에서 돌아보자.
소는 1년 내내 일의 양과 질에 있어서 사람 열을 당해내기에 충분하다. 욕심쟁이 주인을 만나면 봄도 안돼 바닥이 꽁꽁 언 논을 한 번 더 까 뒤집어줘야 하고 꽃샘추위에 건조해진 흙바람을 맞으며 밭을 갈아야 한다. 발효된 두엄만 내라하면 그래도 내 가족들과 내 쇠죽을 정성 들여 끓여준 주인님 입장을 보아 꾹 참고 묵묵히 하겠는데 그놈의 돼지새끼가 구정물 먹고 찍찍 갈겨댄 똥·오줌이 질질 흐르는 것을 감수하고 실어내라고 성화니 화딱지 나지 않으면 정상적인 소가 아니다.
보막이 끝나는 다음날부터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여물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쉴 틈도 없이 막걸리 한 사발 주면 받아 마시고 날마다 바뀐 주인 영감 사나운 소리에 끙끙 앓으며 일을 해야 한다. 못자리하면 열흘 남짓 불려나가고 좀 쉬려면 "망종(芒種)이다 이놈아! 얼른 일어나 보릿다발 실어와야지!"하며 잘 닦이지도 않아 디딜 곳도 마땅찮은 돌 자갈길을 가서 구루마에 집채보다 더 가득 싣고 오란다.
마당이나 넓은 공터에 쟁여 둔 보리더미를 뒤로 하고 이모작 논에 물을 잡아 보릿대 남아 있는 논을 한 번 갈고 써레질을 한다. 지칠 대로 지친 놈에게 "이랴", "자랴", "어히잇~"하다가 방향을 바꿀 때만 잠시 "워~워~" 한가로운 척하다가 육두 문자를 함부로 뱉어내고 채찍으로 후려갈긴다. 재촉만 할 줄 알지 우리네 몸에서 단내가 난지, 쓴 내가 나는지, 먹은 게 소진되어 침이 붙아 가는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보리 타작이라도 끝났으면 보리 삶은 것이나 '몽근겨'(왕겨와 대별되는 말고 쌀겨라고도 할 수 있으며 싸라기가 조금 섞인 사료)라도 쇠죽에 넣어주면 소원이 없겠는데 바쁘다고만 야단이니 생각 같아서는 쟁기를 뿌리치고 도망쳐서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
한여름 논밭을 갈았다고 다 끝내주지 않는다. 구루마에 물 질질 흐르는 모를 싣고 배달의 기수를 자처하는 자마저 태우고 들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닌다. 이 때 배고파 모 한 단이라도 입을 댔다가는 사람잡는 시늉을 한다.
비가 오든, 날이 쨍 하든 일시키는데는 도가 튼 영악한 주인의 노예로 묵묵히 악다물고 살아야만 더운 한 철 늘어지게 잠을 자고 하품을 해대도 건드리는 사람 없으니 이때가 바로 내 세상이요, 가을철이 돌아오면 또 다시 들녘으로 불려나가 짧아지는 해를 벗삼아 열심히 일하면 일년 마무리가 되고 나뭇짐 몇 번 실어 오면 짚 거적 덕석을 짜서 따뜻하게 해주니 이제사 '내 존재의 가치 제대로 평가받는 갑다' 싶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