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샌, 꼬리 들어들어~, 꼬리 들어란마시!"

<가축들의 섹스 시리즈1> 소 접붙이는 재미난 장면

등록 2003.03.02 23:53수정 2003.03.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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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토종 한우 수컷1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토종 한우 수컷1 ⓒ 김규환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 밤은 죽음으로 비친다. 그 누렇던 논밭에서 반사되는 빛에 환한 밤을 지내다 어느 날 목욕하고 알몸으로 차가운 공기에 이유 없이 내팽개쳐져 썰렁하게 드러난 들바람에 홀로 내버려진 외로운 사람과 같은 처지. 이때 찬이슬 한 방울이라도 내리거나 바람 한 번 "휘-익~" 훑고 지나가면 느껴 본 사람 아니고는 그 기운을 모른다.


밤 공동 묘지에 홀로 서 있을 때 오싹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듯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은 어둡고 침울하고 뼈가 아리고 시리면서 아스스 오스스 으스스해지며 으시시시하기까지 하다. 오돌오돌 떨리는 들녘에서 옷을 입고도 10분을 서서 버틸 장사가 몇이나 될까? 찬비라도 내리치면 '어쩐다지? 어쩔거나?'하며 콧노래를 불러도 보고 무서움을 감추려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보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다. 외려 모든 우뚝 선 사물이 귀신이고 도깨비다.

그렇다고 꼭 그 때만 이런 것은 아니다. 간혹 봄에도 이런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기압이 이래저래 쉬 변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할 일이 또 펼쳐진다. 아지랑이 낮밤을 모르고 헤매다가 느즈막한 밤 마루에 걸터앉아 어슬렁거리며 머물면 영락없이 귀신 미쳐 돌아다니는 꼴이니 뭐라도 나올 분위기다. 봄비 추적추적 바람에 날리면 정말이지 끝내준다. 먼길을 걸어봤던 사람들은 이 을씨년스런 밤을 기억하고도 남는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초겨울에 보리 갈 논밭을 다 갈아엎은 암소는 쉴 새도 없이 '부사리'(숫소, 황소)와 짝지을 때다. 접붙인다고 하는 말이 나무에게만 해당되는가? 결혼하면 아이 낳는 것이 그렇듯 생명 있는 모두는 접 붙는 게 정상이고 이치며 생태적인 것. 우리 안에 가둬 붙잡아 놓고 기르지 않았던들 가축 아닌 짐승이었겠지만 유난히 이 소라는 가축에 들이는 공은 대단했다. 여타 가축과는 판이하다. 가보 1호였던 소에게 들이는 사람의 공력은 물욕의 시작이다. 암소 한 마리가 일년 내내 일하고서 송아지 두 마리 세 마리 낳으면 대박을 터트리는 거다.

이 대박을 보기 전에 소가 1년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한 번 소 입장에서 돌아보자.

소는 1년 내내 일의 양과 질에 있어서 사람 열을 당해내기에 충분하다. 욕심쟁이 주인을 만나면 봄도 안돼 바닥이 꽁꽁 언 논을 한 번 더 까 뒤집어줘야 하고 꽃샘추위에 건조해진 흙바람을 맞으며 밭을 갈아야 한다. 발효된 두엄만 내라하면 그래도 내 가족들과 내 쇠죽을 정성 들여 끓여준 주인님 입장을 보아 꾹 참고 묵묵히 하겠는데 그놈의 돼지새끼가 구정물 먹고 찍찍 갈겨댄 똥·오줌이 질질 흐르는 것을 감수하고 실어내라고 성화니 화딱지 나지 않으면 정상적인 소가 아니다.


보막이 끝나는 다음날부터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여물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쉴 틈도 없이 막걸리 한 사발 주면 받아 마시고 날마다 바뀐 주인 영감 사나운 소리에 끙끙 앓으며 일을 해야 한다. 못자리하면 열흘 남짓 불려나가고 좀 쉬려면 "망종(芒種)이다 이놈아! 얼른 일어나 보릿다발 실어와야지!"하며 잘 닦이지도 않아 디딜 곳도 마땅찮은 돌 자갈길을 가서 구루마에 집채보다 더 가득 싣고 오란다.

마당이나 넓은 공터에 쟁여 둔 보리더미를 뒤로 하고 이모작 논에 물을 잡아 보릿대 남아 있는 논을 한 번 갈고 써레질을 한다. 지칠 대로 지친 놈에게 "이랴", "자랴", "어히잇~"하다가 방향을 바꿀 때만 잠시 "워~워~" 한가로운 척하다가 육두 문자를 함부로 뱉어내고 채찍으로 후려갈긴다. 재촉만 할 줄 알지 우리네 몸에서 단내가 난지, 쓴 내가 나는지, 먹은 게 소진되어 침이 붙아 가는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보리 타작이라도 끝났으면 보리 삶은 것이나 '몽근겨'(왕겨와 대별되는 말고 쌀겨라고도 할 수 있으며 싸라기가 조금 섞인 사료)라도 쇠죽에 넣어주면 소원이 없겠는데 바쁘다고만 야단이니 생각 같아서는 쟁기를 뿌리치고 도망쳐서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

한여름 논밭을 갈았다고 다 끝내주지 않는다. 구루마에 물 질질 흐르는 모를 싣고 배달의 기수를 자처하는 자마저 태우고 들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닌다. 이 때 배고파 모 한 단이라도 입을 댔다가는 사람잡는 시늉을 한다.

비가 오든, 날이 쨍 하든 일시키는데는 도가 튼 영악한 주인의 노예로 묵묵히 악다물고 살아야만 더운 한 철 늘어지게 잠을 자고 하품을 해대도 건드리는 사람 없으니 이때가 바로 내 세상이요, 가을철이 돌아오면 또 다시 들녘으로 불려나가 짧아지는 해를 벗삼아 열심히 일하면 일년 마무리가 되고 나뭇짐 몇 번 실어 오면 짚 거적 덕석을 짜서 따뜻하게 해주니 이제사 '내 존재의 가치 제대로 평가받는 갑다' 싶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a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토종 한우 수컷2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토종 한우 수컷2 ⓒ 김규환

그런데 웬걸 논밭갈이 끝내고 나면 나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다. 1년에 한 번씩 이성을 만나게 해주는데 진풍경을 본 자 그리 많지 않다. 요즘은 모두가 집단 사육을 하다보니 인공수정에 의해 재미(?) 한 번 못 보게 하는 악독한 세상으로 바뀌었지만 6-70년 대 농촌 마을은 온 동네 사람 열댓 명이 달라붙어 나를 돕는다.

농한기를 맞아 조용한 마을, 한적한 시골, 산간벽지 마을의 통념은 사라지고 난데없이 소 울음소리가 커진다. 예삿일이 아니다. 동네방네 '나 암내났소' 소문을 내며 "음머-" "음머-"를 열 이틀간이나 울어 재끼면 뭣 달린 수컷이 더 가늘게 "음허-" "슈웅-" 맞장구를 쳐대니 마을 한 가운데서 시작하여 온 동네가 소 마을이 되고 만다. 수소는 얼른 데려가 달라고 구유를 어긋 내고, 가로질러 놓은 빗장을 넘어 뛰쳐나와 제 목을 감고 '제발 좀 데려가 주싯쇼'하며 애걸복걸한다.

날짜를 셈하여 열 이틀이 지나면 앞에서 보아 떡대 쫙 벌어져 반반하고, 궁뎅이 널찍한 황소를 점찍어 뒀다가 내년 밭갈이할 때 하루하고 반나절 몫을 더 쳐주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신랑을 데려온다.

아낙들은 막걸리를 한 말 담가 잔치를 준비하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장정들은 접붙이기에 동원된다. 5도 정도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깔끄막 길을 골라 암소를 미리 대기시켜 놓고 황소를 데려오면 흠흠 암내를 맡느라 어쩔 줄 몰라하며 물건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러기를 두어 번 반복하여 발정을 돕고 경사진 위쪽으로 끌고 간다.

암소는 발정이 최고조에 다다라 입·코와 거기서도 물이 질질 흐르는데, 식식거리는 동안에도 똥을 "푸더덕" 두 번 나눠 싸는데 사람들은 소 '꼬뺑이'(줄)와 코뚜레를 꽉 움켜쥐고 떡 버틸 줄 아는 가장 힘센 사람을 앞에 세워 버티게 하고, 긴 나무로 만든 잘 마른 단단한 말목을 앞 뒤 다리 사이에 가로질러 각각 두 명씩 잡는다. 한 사람은 뒷다리 근처에 가 있는다.

암컷 맛을 봐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수소가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내려오다가 재촉하는 바람을 타고 막판 온 힘을 다해 돌진해 오매 그 속도는 소가 뛰던 것 중 최고다. 열 걸음쯤 다가오면 총감독이 "꼬리 들어들어~꼬리 들어란마시!"하면 옆에서 꼬리 채를 잡고 있던 사람이 하늘 높이 치켜올리는 순간 수소가 폴짝 뛰어 암소 위로 올라탄다. 동시에 자신의 발갛게 충혈된 물건을 들이밀어 넣지만 암소가 첫 경험인지라 쉬 이뤄질 리 만무하다. 밀리지 않으려는 사람과 암소는 움찔 밀려나는 듯하지만 당시 장정들의 힘도 만만치 않았던 때라 한 뼘도 밀려나지 않는다.

단박에 되기만 하면 그걸로 끝내지만 대개 이러기를 세 번은 해야 일을 잘 마칠 수 있다. 이런 중노동을 하고서도 안 되면 하릴없이 작파하고 다음날로 미뤄야 한다. 암소도 지치고 수소도 지치며 거드는 사람이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허탈의 경지'에 오르기 때문이다.

실패한 사랑에 집으로 돌아온 암소나 소 주인은 심란하기 그지없다. 소는 소대로 아무 신호가 없음에 아직 '사랑의 완성'을 포기하지 못해서 안달·까탈·앙탈까지 부리며 '자고 닐어 우닌다' 이 맘을 알기도 하거니와 단번에 끝났으면 비용이 그걸로 홰기를 다 할 수 있는데 또 한 번의 시도는 새로운 돈과 품이 들어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다음날이라도 '사랑의 종말'을 맞이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세상 천지가 소리의 암흑으로 빨려드니 '거 참' 신기하다.

동물마다 어미가 새끼를 품는 기간은 다르다. 닭이 3주인 21일이라면, 오리는 4주인 28일이며, 돼지는 3달 3주 3일인 114일이다. 한우가 283일이고 젖소는 279일이다. 내가 한우를 젤 좋아하는 것은 알록달록한 젖소의 무늬가 싫은 것도 있지만 사람과 같은 기간 동안 어미 뱃속에서 지내다가 같은 날 세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우는 고등동물이다.

태어난 송아지를 어미 소가 혀로 싹싹 핥아주면 가냘픈 다리를 고추 세워 세 시간만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그 폼이 아들 솔강이가 1년만에 걸음마를 한 것보다 나아 신기하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소 싸움 말고 이런 명장면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십시오.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 뉴스비젼21, 농민신문에도 투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소 싸움 말고 이런 명장면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십시오.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 뉴스비젼21, 농민신문에도 투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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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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