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27

등록 2003.03.03 18:04수정 2003.03.0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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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노는 재사와 함께 오이 등의 식솔들을 데리러 떠나고 주몽과 무골은 야밤을 틈타 예주의 집으로 몰래 잠입했다. 무골이 망을 보고 있는 가운데 주몽은 담을 풀쩍 뛰어넘어 집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하지만 어느 방에 예주가 있는지는 주몽도 막막한지라 들어선 후에는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순간 불이 켜진 방문 중 하나가 벌컥 열려 주몽은 깜짝 놀라 숨으려 했다. 하지만 문을 연 이는 다름 아닌 예주였기에 주몽은 반가움에 한걸음에 뛰어나갔다. 예주는 웃는 얼굴인지 우는 얼굴인지 모를 표정을 하고 입을 손으로 막으며 주몽을 맞아들였다.


"반드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바람소리에도 몇 번씩이고 문을 열어봤는데 오늘에서야......"

"그간 별고 없었소? 자 어서 짐을 챙겨 여길 떠납시다."

예주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배를 가르켰다. 예주는 임신 중이었다.

"전 이미 만삭의 몸입니다. 먼 길을 나서기엔 무리입니다."

주몽과의 첫날 밤 이후 얼마가 지나 예주는 태기가 있었다. 당연히 예주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고 예주는 바깥세상과 아예 인연을 끊다시피 지내야만 했다. 심지어는 유화부인조차 더 이상 예주를 만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또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난단 말이오."

주몽은 예주의 모습이 안타까워 눈물까지 흘렸다. 오히려 예주가 주몽을 위로하며 말했다.


"언젠가는 찾아오지 않으셔도 내가 찾아갈 것이니 상심 마세요. 그리고 이 집안에는 보는 눈이 많으니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그러나 주몽은 예주의 손을 잡으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방에서 비치는 불빛으로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하인하나가 사람들에게 알렸기 때문이었다.

"아가, 거기 무슨 일이 있느냐?"

퍼뜩 제 정신이 든 주몽이 급히 예주에게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하는 얘기니 들어주시오. 아들을 낳거든 내가 살던 집의 일곱 모가 난 돌 위 소나무 밑에 남겨놓은 물건이 있다고 말해주시오. 그리고 내가 일국의 왕이 되거든 그것을 가지고 혼자서 날 찾아오도록 얘기해 주시오."

예주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주몽은 방문을 확 열어제치고 놀란 사람들을 잽사게 헤치고 지나가 담을 홱 하니 넘었다. 그곳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무골과 함께 주몽은 말을 숨겨놓은 곳으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일단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말 위에서 잠시 숨을 돌린 주몽이 간 곳은 자기가 살던 옛집이었다. 주몽은 소나무 밑에 구멍을 판 후 칼을 뽑아 옆에 있던 바위를 힘껏 쳤다. 칼은 두 동강이가 나고 주몽은 칼자루가 붙어있는 쪽을 주워 묻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나중에 중요한 표식을 남겨두는 것이오. 공도 이 일을 잘 기억하시오."

주몽과 무골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 곧 부여의 병사들이 주몽을 잡으러 여기저기에 깔릴 것이 분명했다.

묵거와 부분노 일행과 합류는 주몽은 졸본으로 돌아와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그간 주몽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마리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온 것에 눈물을 흘리며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모두가 공자님의 덕입니다. 이제 저들은 충심으로 공자님을 따를 것입니다. 이제 하나의 어엿한 부족이라 부를만 합니다."

재사는 예주를 데리고 오지 못한 주몽을 위로해 주는 뜻에서 거듭 격려의 말을 건냈고 주몽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 날밤 주몽이 홀로 흐느끼며 지도자의 고독을 배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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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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