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천원으로 김광석을 만나다

DVD감상 - 김광석 라이브

등록 2003.03.05 05:08수정 2003.03.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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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광석 라이브 DVD

김광석 라이브 DVD ⓒ 스타맥스

나는 주로 뮤직비디오 DVD를 모은다. 내겐 영화가 아무리 명작이라도 두세 번 이상 볼 수 있는 인내심이 없기에, 영상이 딸린 음질 좋은 CD를 구입한다는 생각에 주로 뮤직비디오DVD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오늘은 테크노마트에 약속도 있고 해서, 그 곳 8층에 위치한 음반할인매장에 잠시 들렀다.


여느 매장과 마찬가지지만, 국내 가요의 경우 사실 DVD가 전무하다. 고작 눈에 띄는 것이, 이미 소장하고 있는 양희은, 이은미, 조용필 등의 대형가수들 그리고 핑클, 엄정화, 조성모 등의 신세대 가수들(핑클, 조성모의 경우는 초창기 V-CD로 제작되었던 옛날 것임). 심지어 송대관의 DVD도 있다. 그래봤자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이니, 국내 가수 DVD시장은 아직 시작도 안한 것 같다.

글쎄, 어중간한 국내영화의 경우에라도 DVD로 제작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자 풍토인데, 가요음악 DVD의 공급미달은 아마도 시장성이 떨어지거나 5.1사운드 재현이 힘들어서가 아닌가 그저 상상만 할뿐이다.

그런데 구석 저편에 새로운 신착 DVD가 보인다. 검은색 포장으로 되어있다. 제목은‘김광석 LIVE'.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광석의 음반은 재 발매부터 트리뷰트까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는데, 그의 노래하는 모습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영상물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사실 최근에 CD 몇 장과 동영상이 수록된 그의 또 다른 베스트 음반이 패키지물로 출시된 적이 있음).

가격을 물어보니 19200원. 당장 생각해봐도 싸긴 싸다. 보통 가요 DVD가 여타소매 매장에서 22000원대를 호가하니…. 얼른 돈을 지불하고, 나가다가 다른 매장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 곳에도 그의 신착 DVD가 놓여있었다. 그냥 쳐다보고 있으니 주인장 아저씨가 “18,000원만 주세요”. 또다시 나의 주의력 없는 충동구매에 후회를 한다.

지금은 새벽이다. 낮에 구입했던 김광석의 DVD 표면에 팽팽하게 부착된 보호용 비닐을 벗기고 있다. 이때의 느낌은, 지금은 사라진 과거 LP의 겉 비닐을 도루코 면도칼(386은 다 알겠지?)로 조심스럽게 잘라내던 그때의 떨림과 흡사한 감동이다.


얇은 소책자가 들어있었다.
소책자의 제목은 '김광석 우리시대 영원한 가객(歌客)'.
팬시풍의 가사 집이었다. 사실 그의 외모나 음성 아니 그의 삶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아비튜스나 그만의 레떼르는 팬시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는데...

DVD는 두 장이였다. 디스크 1은 음악전문케이블방송 KMTV의 수퍼 콘서트였고, 디스크 2는 추억여행이란 제목으로, 각종 공연에서의 그의 열창을 조악한 8mm테잎에 담아 논 것들이었다. 물론 셔플에 그의 간략한 일대기와 그동안의 공연일정도 소개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쉽게도, 음성부분이 5.1채널이나 돌비서라운드가 아닌 PCM 스테레오였다(정말로 김광석의 것이 아니었다면, 누가 스테레오 DVD에 2만원을 투자하겠는가?). 그러나 PCM에 불 만족이였던 나의 심정이 환희로 바뀌였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월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후략 - 서른 즈음에 중에서 -

아! 내가 그동안 한참 몰랐었다. 가객으로서의 그의 진정한 모습들을. 김광석을 안지는 꽤 되었다. 내가 대학 1년 때 그러니까, 동물원 1집 때부터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의 일련의 솔로음반들로부터도….

사실 당시의 김광석의 의미는,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나 안치환보다는 가벼운, 동물원이나 하덕규보다는 어두운, 조동익보다는 단조로운 것이다. 그저 그의 힛송(?) 사랑했지만, 거리에서 등을 잘 부른, 가창력있는 조금 촌스런 가수로만 인식했을 뿐이다.

그런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내 나이도 30이 훨씬 지난 지금, 그의 ‘서른 즈음에’는 또 다른 서른 같은 나이의 회한과 애상을 가지게 만든다. 사실 이 노래를 안지 얼마 안된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구전, 이전된 그의 또 다른 명곡이다. 그의 숨겨진 명곡들은 이 곡에만 그치지 않는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중략...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 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후략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중에서 -


이토록 애절하게 부를 수 있을까. 더 더욱이 그가 누구들처럼 젊은 나이에 타계해서일까? DVD 원반 안에 고스란히 간직된 그의 공연모습은, 단지 하나의 추억의 편린 같은 자료로서의 의미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영상 안에 갇힌 그의 복제물과도 같았다.

공연에서 그는 맨 통기타 하나만으로 반주를 한다. 통기타의 선율과 그의 강하면서도 절절한 음성은 청각이 감지할 수 있는 감상의 몫이고, 화면 속의 그의 눈빛 그리고 그의 안면에 있는 수백 개의 근육들이 빚어내는 불형언의 표정들은 시각적 감상의 묘미로 남는다.

이등병의 편지가 이어지고, 또다시 발견(?)된 그의 숨은 명곡. 나는 이 숨은 곡을 곽재용 감독의 신작영화 ‘클래식’에서 만났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영화 속에서도 그랬다. 그들 남녀 주인공은 너무나 아픈 사랑을 했다. 정말 그 장면에서 어떤 노래가 김광석의 목청만큼이나 어울릴 수 있었을까?

DVD 셔플에 있는 그의 간략한 연보에 그의 타계에 관한 언급과 사망연도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는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그랬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제니스 조플린, 짐모리슨, 커트코베인 그리고 김현식이 젊은 나이에 타계했을 때에, 매니아들이나 평론가들은 그들이 세상의,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자살을 택했다는 아주 그럴듯한 카리스마적 죽음의 명분을 선사하였다. 반면에 그들을 단지 ‘마약놀이와 알코올 중독’에 제명을 달리한 ‘딴따라’로 악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러나 오늘 그의 영상을 접하면서, 확고한 생각이 든다. 그는 항상 슬픈 존재였다는 것(그는 그 일상의 애상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가끔 신명나는 비트의 곡들을 부르는 모습에서조차 그는 울고 있었다. 그 울음과 눈물은 가슴으로 느껴질 뿐이다.

비록 영상 속에서지만, 그를 바라보면서 자꾸 고 기형도 시인의 ‘가수는 입을 다무네’ 가 생각나는 연유는 무엇일까?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이었으나
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
중략
모퉁이에서 그는 외투 깃을 만지작거린다
누군가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가 누구든 엄청난 추억을 나는 지불하리라
그는 걸음을 멈춘다, 어느새 다 젖었다
언제부턴가 내 얼굴은 까닭 없이 눈을 찌푸리고
후략
- 가수는 입을 다무네 - 고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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