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은 사순절, 선친의 옷을 입고

등록 2003.03.06 11:29수정 2003.03.0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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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습 봉사를 많이 해봐서 아는 것인데,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가 생전에 입던 옷가지도 거의 사라지게 된다. 시신을 관에 넣으면 관 안의 공간에다 고인의 옷가지를 채워 넣기도 한다. 매장의 경우, 그리고 관에서 시신을 꺼내어 묻을 때는 빈 관과 함께 그 옷가지들도 모두 불태워지게 된다.


17년 전 내 선친의 장례 때도 그랬다. 선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옷가지를 거의 모두 관에 넣었고, 장지에서 빈 관과 함께 소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선친의 옷 일부를 남겼다. 선친께서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즐겨 입으셨던 한복 저고리와 조끼, 그리고 코트 한 벌이었다.

한동안 선친의 저고리와 조끼를 방벽에 걸어놓고 살았다. 매일같이 그 옷들을 보며, 종종 그 옷에 배어 있는 선친의 체취를 맡아보며 선친께 대한 그리움과 죄스러움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선친의 그 옷들은 장롱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고 말았다.

선친의 코트는 늘 옷장 안에 내 옷들과 함께 걸려 있었다. 나는 내 옷장 안에 선친의 코트가 걸려 있다는 것을 항시 알고 있었다. 그 옷은 내 누님이 시집을 간 이듬해에 친정 아버지께 해드린 옷이었다. 좋은 옷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선친은 시집간 딸이 해준 옷이라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그 옷을 애지중지 아끼며 입으셨다. 그러니까 그 옷은 지금으로 보면 무려 30여 년의 세월을 안고 있는 셈이다.

내가 17년 전 선친의 옷가지들을 소각할 때 한복 저고리 조끼와 함께 그 코트를 남긴 것은, 시집간 누님이 해드린 선친께서 아끼신 옷인 데다가 내 몸에도 잘 맞고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이었다. 선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잘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선친이 그리워질 때는 입고 싶은 마음으로 그 옷을 내 옷장 안에 잘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나는 그 옷을 자주 입지는 않았다. 한 두어 번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나는 어제 다시 그 옷을 입었다. 몇 년 만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오랜만에 다시 입어보는 아버님의 옷이었다.

내가 어제 아버님의 옷을 입은 것에는 특별한 까닭이 있었다. 어제는 천주교회에서 기념하는 '재의 수요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해의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사순절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는 세계의 모든 교회들에서 신자들의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절이 행해진다. 회개와 속죄의 상징인 자색 제의를 입기 시작한 사제가 미사 중간에 신자들의 이마에 재를 바르고 십자를 그으면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라고 한다.

이날 사용하는 재는 지난해 '성지주일(예수부활대축일 전 주일)'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예절 때 사용했던 나뭇가지(한국에서는 주로 전나무. 이것을 신자들은 각 가정으로 가지고 가서 십자가 등에 걸어두고 일년 동안 보관을 한다)를 태워서 만드는데, 재는 옛날부터 참회의 상징이었다.

성지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예절에 사용했던 환호와 영광을 상징하는 나뭇가지(일명 성지가지)를 태워 재를 만드는 것은, 세속의 영광은 그 어떤 것이라도 시간과 함께 덧없이 소멸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천주교의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기간이다. 그 기념에는 당연히 동참이라는 것이 결부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참회와 속죄, 절제와 극기, 자선과 선행 등으로 나타난다. 사순절은 부활을 위한 죽음의 기간이기도 하다. 신자들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깊이 생각하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죽음에 관해 더욱 많은 묵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옷을 입고 싶었다. 17년 전에 작고하신 선친의 옷을 입고 성당에 가서 이마에 재를 받고 싶었다.

내 아버님의 선종(善終)은 내게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생각하면 지금도 여전한 슬픔 가운데서도, 아버님의 선종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편안한 마음이 된다. 임종하시기 전 날 잠에서 깨어나신 아버님이 입가에 지으셨던 미소도 떠오른다.

간병을 하던 딸이 왜 웃으시느냐고 여쭙자 아버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예쁜 옷을 입은 아이들이 여러 명이나 저마다 꽃을 들구 와서 서로 자기 꽃을 받으라구 허는 바람에 내가 곤란해서 웃은 거여."

아버님의 옷은 역시 내 몸에 잘 맞았다. 색깔도 재색이어서 재의 수요일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내가 재의 수요일에 아버님의 코트를 꺼내 입은 근본 의도를 아직 알아채지 못한 어머니와 아내는 옷이 내 몸에 잘 맞는 그 맵시만을 기꺼워하는 것 같았다.

성당에서 내 옷차림에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코트 품을 열어서 속주머니 위에 금색 실로 새겨진 아버님의 함자를 보여 주곤 했다. 사람들은 내가 돌아가신 분의 옷을 입은 사실에서 색다른 느낌을 갖는 것은 분명했으나, 나의 근본 의도까지는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래 된 옷인데도 새 옷 같고 내 몸에 보기 좋게 잘 맞는다는 말이 관심 표현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재의 수요일에 아버님의 옷을 입고자 한 내 마음을 스스로 잘 간종그리는 것이 실은 더 중요한 일이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 1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옷을 입은 나는 올 사순절에는 아버님의 그 재색 코트를 자주 입기로 마음먹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옷을 입은 상태로 사순절의 의미를 좀더 깊이 되새겨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17년 전의 아버님의 선종을 기억하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죽음, 그 덧없음의 의미도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오늘 17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님의 옷을 꺼내 입고, 아버님의 그 선종의 모습을 좀더 명확히 기억하려 함은, 아버님의 그것을 본받아 언제 내게 닥쳐올지 모를 그 순간을 의연하게 맞을 수 있도록 좀더 잘 준비하려 함일 터였다. 다시 맞은 이 사순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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