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법부 독립 논쟁-1

등록 2003.03.06 16:50수정 2003.03.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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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금실 변호사가 법무장관에 임명되었다. 차제에 검찰총장 역시 현직 검사 아닌 변호사 중에서 임명토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검찰개혁의 요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종국에 가서는 전체 검사 모두 일정 기간의 변호사 경력을 쌓은 사람 중에서 임명토록 하는 것도 좋은 개혁방안이 될 것이다. 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법조 인력수급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 취임전 인수위나 검찰이 경찰수사권 독립 추진 추세에 딴지 걸기(?) 차원에서 사법경찰과 행정경찰 이원화를 전제로 민생치안 범죄에 대한 경찰수사권 부여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검찰이 행정부 소속 사법기관이라고 하는, 어쩌면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15만 경찰인력 중 겨우 1만여 명의 수사경찰관 만을 사법경찰로 분리해 내어 이들에게만 초보적인 수사권 부여토록 하겠다는 것은 경찰활동(policing)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범죄에 직접 부딪혀야 하는 방범 경찰이나 경비 경찰, 혹은 사건처리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교통사고 처리 담당 경찰을 비롯하여 모든 경찰 활동이 수사활동과 전혀 별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해야 하는 사법기관으로서 우리나라 검찰이 행정부에 속해 있으면서 같은 행정부에 속해 있는 경찰에 대해 계속해서 수직적 명령 복종 관계를 고수하려는 입장에서 나온 발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검찰이 계속해서 수사권을 고사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기소 이전의 수사인력을 검찰로부터 떼어니여 경찰과 통합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검개혁 방향이 아닌가 여겨진다. 차제에 검찰도 이렇게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하는 독립적 사법부 소속기관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으며, 지금이라도 검사 자격을 일정기간의 변호사 경력을 거친 자로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변호사 활동 기간을 통하여 안목을 기르고 일정한 나이에 이른 사람으로 하여금 고도의 판단 능력이 요구되는 판검사 역할을 맡기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검사의 경우 기소와 재판 업무에 제대로 임하는 데에만도 업무 부담이 과중한 상황에서 지금처럼 검사가 경찰수사의 처음과 끝을 도맡아 지시한다는 것은 올바르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만일 우리나라 검사조직이 판사와 마찬가지로 법원조직에 속해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 법원조직이 나름대로 행정부와 제대로 독립되어 있다고 한다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검찰개혁 문제는 '검찰 아닌 사법개혁 문제'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파행적이며 '노예적인' 경검관계의 혁파 문제도 결국은 사법개혁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도 경찰수사권 독립 문제는 '검찰 바로세우기'의 바로미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일정 기간 변호사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판검사를 임명토록 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에서조차도 정말 전체 국민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에서는 판사임명 문제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사법부 독립 논쟁'(이 글은 본 기자의 JURIST 12월호 기고문임)을 세 번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의 법조계 일화

존 메이저 총리 당시 대법원부 장관으로 있던 메케이 경은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 정부로 바뀐 상황이지만 상원 의장으로서 대법원부 장관을 계속해서 겸직하고 있었다. 판사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그는 토마스 빙엄을 고등법원 왕좌부 수석판사로 임명하였다.

당시 빙엄 판사는 사립학교 교육을 받았으며, 안락한 법정변호사라는 특권세계에서 편안한 생활을 해왔고, 고등법원 수석판사로 임명되던 1998년 당시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당시 친노동당계 잡지인 '뉴 스테이츠맨' 고문변호사으로 있던 지오프리 빈드만 변호사는 빙엄 수석판사가 자유주의적이며 인간주의적인 시각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닉 코헨이라는 기자는 빙엄 수석판사가 약간이나마 진보적이라는 그 지적에 대해 전면 반대했다. 당시 코헨 기자가 제시한 증거는 다음 세 가지였다.

첫째, 빙엄 수석판사는 제1차 걸프전쟁 기간 동안 영국의 정보기관인 M15 측의 루머 수준에 불과한 지적만을 받아들인 결과,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당시 90명의 아랍계 사람들을 투옥토록 한 적이 있다. 빙엄 판사는 나중에 국무부 측이 90명 모두 전혀 혐의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에도 사과 한마디하지 않았다.

둘째, 빙엄 판사는 M15 내의 내부고발자가 반정부 인사들에게 대해 불법 도청을 했다고 고발했던 것에 대해서 이를 기각하고 나아가 정보기관에 대한 공개적 조사를 하지 않도록 조치한 바 있다. 셋째, 1998년 10월 빙엄 판사는 영국 항소법원에서 피노체트의 칠레 본국송환 문제와 관련하여 피노체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닉 코헨 기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 대법원 판사에 해당하는 영국의 법경들이 한결같이 모두 유언장, 기업체, 신탁 등 상업 분야에 전문으로 하도록 훈련된 판사들 일색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요컨데 그에 따르면 영국의 법경들 중 단 한 사람도 인권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들이 모두 이렇게 너무도 보수적인 인사들이다 보니 사색이 되다시피 한 영국 법조계에서는 그나마 단 한 명만이라도 위대한 '자유주의자'가 탄생했다고 환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그래서 선택된 이가 바로 이 빙엄 경이었을 따름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일화는 우리나라처럼 시대에 뒤지거나 현안과 동떨어진 법조인들이 일종의 법조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온갖 수준의 판사 임명 문제는 실상 정치적 결과에 대하여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면서도, 흔히는 삼권분립이니 사법부의 독립이니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누구도 제대로 진지한 접근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영국의 판사 임명제도

그렇지만 1994년까지만 해도 영국에서는 내각의 일원인 대법원부 장관 및 대법원부 당국의 모든 판사 임명권 행사 실태들이 비밀에 부쳐졌었으며, 판사 인사의 공정성이나 불투명성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부 측의 판사 임명은 기본적으로 다른 판사들 및 고위직 혹은 연장자 법조인들을 통해 슬그머니 떠본 평판들에 토대를 두고 내려졌다.

물론 당시 영국 대법원부 측은 물론 이런 절차를 '슬그머니 평판을 들어보았다'고 하질 않고 '폭넓은 협의와 자문을 거쳤다'고 표현했다. 1986년 대법원부 측이 펴낸 안내책자에서 밝힌 판사 선발과 임명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대법원부 장관의 모든 판사직 임명 기준은 해당 판사의 소속 정당, 성, 종교, 인종 등과는 아무 관계없이 담당 업무에 가장 적임자를 고른다는데 두고 있다. 신체적으로 담당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건강함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적 부적격 요인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요건만 갖춘 사람들이라면 그 다음에는, 오로지 법조 전문성, 경력, 신뢰도, 청렴성만을 선발 기준으로 적용한다'

하지만 이 선발기준은 매우 커다란 해석의 여지들을 가진 것이었으며, 1994년 영국에서 이 제도가 개정될 때까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당시와 같은 비밀주의 인사절차는 미리 작성된 인사 비망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컸다.

둘째, 당시 제도는 객관성과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이것은 1994년까지 보수당이 15년 동안 집권하고 있었으며 보수당 지지자들을 판사직에 임명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던 점에 비추어보았을 때 실제로 매우 구체적인 현안으로 대두하였다.

셋째, 당시 제도는 다른 판사들에게 슬그머니 떠본 평판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판사로 임명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통상 이들을 추천한 기존 판사들과 유사한 배경과 이해관계와 관심사를 갖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바꿔 말해 당시 제도는 판사들이란 으레 바닥이 매우 좁은 범위에 속해 있는 인사들이 임명되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다.

넷째, 이 제도는 승진하고 싶어하는 판사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응모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누가 될진 모르지만 슬그머니 평판을 떠보기 위해 견해를 밝힐 기회가 주어지는 다른 어떤 판사들이 자신의 생각을 눈치 채주기 만을 고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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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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