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민 눈·귀 가리는 '검은 연기'

[언론신경쓰기 03-2] <매일신문>이 대구참사를 보는 시각

등록 2003.03.19 23:00수정 2003.03.25 11:52
0
원고료로 응원
천년을 흘러도 변하지 않을 바둑의 정석처럼 참사의 수습은 정해진 수순대로 진행되어 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은 채 부끄러운 손길을 내밀며 죽은 이들과 교감을 나누던 시간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희생자들의 제단 위에 바칠 제물을 선택하는 일만 남아있고, 대구 시민들은 비장한 낯빛의 시정 책임자가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맥빠진 약속을 하고, 250만 대구시민의 힘으로 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 세계 초일류 도시로 거듭 태어나자는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하게 될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대구시에는 그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현수막이 여기저기서 펄럭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전한 지하철, 혼을 담은 시공으로 대구시민에게 보답하겠습니다"

이승의 세계에서 죽음의 공포와 지옥의 아수라가 바로 저런 것임을 우리는 그 지하 공간에서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참혹함과 충격, 그리고 온몸을 떨게 했던 공포와 애처로움은 시간이 가면서 촛불이 가물거리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다. 매캐하게 코를 찌르던 죽음의 냄새도 도심의 혼탁한 공기 속에 뒤섞여 묽어졌다.

죽은 이들에 대한 연민과 죄의식, 하지만 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갈등은 늘 인간이 가진 망각의 기능이 깔끔하게 조정해왔다. 개나리가 노란 봄옷을 갈아입을 무렵이면 우리 발뒤꿈치까지 바짝 다가서 있던 '죽음'은 산 사람이 다가설 수 없는 저승의 세계로 밀려나고, 이승은 다시 활력과 생기가 흘러 넘칠 것이다.

그런데 기억이 엷어질수록 절망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유독 대구에서만 왜 자꾸 이런 사고가..."라는 억울함 때문이 아니다. 어디 대구뿐이랴? '수'의 문제일 뿐 매일 같이 죽고 죽이고 다치고, 또 그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생명문화 아닌가?

온 대구시민이 전심전력을 다하여 반대했던 사람이 보란 듯이 청와대에 떡하니 앉아 있고, 게다가 그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알량한 처지가 한심스러워서도 아니다. 분명 가족들과 웃고 깔깔대며 살아있어야 할 사람들이 영정 속에 갇혀 있는 것조차 어이없는 일일진대 그 영정조차 얼굴을 뒤로 돌리고 있을 정도로 대구는 절망하고 있다.


전동차 속에서 한순간에 숯덩이로 변해버린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간 육신의 흔적들이 사고가 나던 바로 그날 저녁, '누군가'가 내린 결정에 의해 비눗물에 씻겨 내려가고 쓰레기 포대 속의 오물들과 뒤섞여 내동댕이쳐졌다. 대구가 절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집단의 도덕 수준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주검'을 어떻게 예우하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도 있다.

대구는 주검을 '쓰레기'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누가 했는지, 그 자리에서 있으면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동의하고 승인해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누구의 명령으로 군인까지 동원할 수 있었는지... 대구 시민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매일신문 3월 11일
매일신문 3월 11일김진국
경찰, 검찰, 지하철 공사, 그리고 시청... 대답을 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말을 빙빙 돌리고 있다. 이를 추궁하고, 밝혀내야 할 시의회 의원이나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진상조사는커녕 시장의 책임과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대구의 불행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의도", "정치적 마타도어", "수습책임을 한나라당에 뒤집어 씌우려는 저의"로 매도하고 있고(<매일신문> 3.11, '지역의원들 참사대책 고심'),

관련
기사
- "행패 부리는 유족, 잡아넣고 조사해야"

"일부 정치세력의 음모"(<매일신문> 3.8, '발 늦은 야, 발빠른 대책 촉구')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걱정과는 달리 대구에는 한나라당에 대항하며 음모를 꾸미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할 만한 정치세력이 없다.

매일신문 2월 19일
매일신문 2월 19일김진국
여기에다가 지역의 <매일신문>은 대형참사의 원인과 사태 수습책임에 대해서 엉뚱한 곳에다 시민들의 시선을 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고가 나던 날 이미 방화범은 정신질환자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는데도 이튿날 이번 대형참사가 "정신질환에 의한 방화"로 밝혀졌다며, 정신질환자들을 모두 예비범죄자로 몰고가는 기사를 내보냈다.(<매일신문> 2.19. '중증 정신질환자 1만명 거리 누빈다')

그리고 사태수습이 제대도 진행이 되질 않자 이를 중앙정부의 탓으로 몰고 갔다. 사태수습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었으며, "대형재난 발생시 대응력 미숙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자체의 공통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조기에 사태수습에 나서지 않은 것이 잘못이란 것이다.(<매일신문>, 3.4 '정부 참사 늑장대응 비난')

게다가 대형 재난 사고에 대한 사태수습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도 DJ 실정에 그 뿌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매일신문> 3.8. '국가안전관리시스템 DJ 정부 때 오히려 후퇴')

매일신문 3월 7일
매일신문 3월 7일김진국
반면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극진한 애정을 보이며 사건 발생이후 한나라당 측이 보여준 눈물겨운(?) 노력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총선이 1년밖에 남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한나라당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매일신문> 3.7 주간데스크, '울지말아요 대구여')

그리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주장을 "진보적 시각"이라고 규정하고 "대구는 지금 대형참사라는 물리적 폐허 위에... 또 하나의 이념의 벽에 부닥쳐 있다"며 개탄하고 있다.(>매일신문> 3.13 세풍, '잃어버린 8년')

<매일신문>은 이번 참사를 사세 확장의 계기로 삼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투철한 기자 정신으로 목숨을 무릅쓰고 제일 먼저 현장에 달려가 특종을 뽑아낸 것이 <매일신문>이며, "전국에서 최초로" 모금 운동을 전개했고 영천 3남매의 딱한 사정도 "<매일신문>이 가장 먼저 보도하여" 전국에서 지원의 온정이 쏟아지도록 했으며, "전국신문사 중에 최고액인 22억원"을 모금해내는 '대단한' 일을 했단다.(<매일신문> 3.11,'아픔 보듬기, 감동의 밀물')

매일신문 3월 4일
매일신문 3월 4일김진국
그리고 이번 참사의 원인을 중앙의 독점 권력에게 돌리고, 지방분권이 근본 해결책임을 에둘러서 설파하고 있다. "중앙의 통제에만 의존하던" 사회주의권 국가가 몰락하고 말았던 예에서 보듯이 지하철 기관사는 "중앙통제실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는 로봇의 수준"이었기에 대형참사가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매일신문> 3.4, 계산포럼, '위험사회와 위험인식')

그래서 "일선에도 일부의 조치권한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상부가 현명하지 못했을 때는 엄청난 화를" 부르기 때문에 "위험의 감소를 위해서도 권한은 라인으로 어느 정도 위임"해야 한다고 했다.

매일신문 3월 19일
매일신문 3월 19일김진국
대구시의 "현명하지 못한" 상부인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지 말고 "위험의 감소를 위해서" 이제는 대구시에도 권한을 달라는 말로 이 글이 읽혀지는 것은 <매일신문>이 '지방분권'과 '지역언론 육성'을 가장 목청 높이 외쳐온 신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하철 운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정부가 책임지라고 떠드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매일신문> 3.19, '지하철 운영 정부가 맡아라')

보이지 않는 손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시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대구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대구 시민들은 갇혀 있다. 점점 절망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책임은 못 지겠고 권한만 내놓으라는, 염치없는 분권 주장을 펼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대구다.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늘 자유로웠던 거대한 야당도시, 대구!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다.

알아야 한다. 유족들은 물론 대구시민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검을 쓰레기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대구를 야만의 도시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답해야 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걸고서 눈치를 보며 입을 닫고 있다.

견제세력을 키워놓지 않았던 대구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와 자신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대구에는 아직도 발화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검은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 틈새에서 '망각'의 기능은 점점 더 그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참언론대구시민연대(준) 언론신경쓰기 칼럼 2>

참언론대구시민연대(준)는 3월 28일 창립하는 언론운동단체로서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언론개혁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지역사회 민주주의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참언론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준) 언론신경쓰기 칼럼>은 지난 대선시기 <2002대선참언론대구시민연대 칼럼진>이 확대 개편되었다. <언론신경쓰기>칼럼을 통해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층과 유착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의 그릇된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진국님은 신경과 전문의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

덧붙이는 글 <참언론대구시민연대(준) 언론신경쓰기 칼럼 2>

참언론대구시민연대(준)는 3월 28일 창립하는 언론운동단체로서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언론개혁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지역사회 민주주의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참언론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준) 언론신경쓰기 칼럼>은 지난 대선시기 <2002대선참언론대구시민연대 칼럼진>이 확대 개편되었다. <언론신경쓰기>칼럼을 통해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층과 유착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의 그릇된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진국님은 신경과 전문의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4. 4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5. 5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