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43

등록 2003.03.20 18:33수정 2003.03.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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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뭐라고요? 빼앗은 병량을 돌려주는 것조차 모자라 진상품까지 가져가 바쳐 양국의 우호를 다짐했다고요?"

이것저것 묵거가 비류국에 간 일을 따져 묻던 월군녀가 주몽의 얘기를 다 듣고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한다고 저들이 조금이라도 고마움을 느낄 거 같습니까? 오히려 우리를 업신여기고 무시하려들 것입니다. 묵거란 자가 엉터리 왕궁으로 저들의 눈속임을 하더니 이젠 뒷거래로 폐하의 눈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눈속임이 아니라 내가 허락한 일이오."

월군녀는 주몽의 손을 잡으며 간곡히 얘기했다.

"폐하,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안일한 자세로는 큰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몽은 월군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묵거에 대한 믿음이 그 누구보다도 컸고 주몽자신도 그 뜻에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사와 오이가 비류국에서 돌아온 묵거를 불러 왕후의 이런 불편한 심기를 얘기하자 묵거는 코웃음을 치며 오히려 오이에게 반문했다.

"묻겠소이만 오이공께선 일지기 동부여를 떠나오실 때 주군과 어떤 맹세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정도(正道)를 걷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겠다고 말한 바 있소,"

"그렇다면 오이공께서 바라는 정도는 무엇입니까?"

오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로서는 감정상으로 당장 비류국을 힘으로 제압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여태껏 묵거가 해온 일도 옳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사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비류국은 묵거가 바라는 정도와는 거리가 먼 쪽으로 자꾸만 흘러가고 있었다. 저자거리에서 백성들이 주몽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소문이 송양의 귀에 들어가자 화친을 맺었던 일을 잊고 송양은 크게 실망을 하며 안절부절 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민심이 내게서 떠난다는 얘기인가!"

해위가 또다시 송양을 부추겼다.

"이대로 있다간 앉아서 나라를 넘겨주는 꼴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고구려가 힘을 더 기르기 전에 당장 군사를 일으켜 나가야 합니다."

"옳은 얘기오. 부위염과 해위는 당장 시행하라!"

비류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은 묵거가 사전에 심어놓은 비류국 내의 고정첩자를 통해 고구려에 알려졌다. 문제는 이 소식이 바로 묵거나 주몽에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월군녀에게 전해졌다는 점이었다.

"전하! 비류국이 군사를 일으키려 합니다. 그 전에 우리가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어전회의에 뛰어든 월군녀를 보며 묵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주몽도 마음이 흔들리긴 마찬가지였다.

"전하, 지금 하늘의 움직임을 보니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고 상당한 기간까지 저들이 군사를 움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한번 더 사신으로 가 저들을 구슬려 보겠습니다."

월군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째서 우리 고구려가 저런 하찮은 것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오!"

"왕비마마 그렇지 않사옵니다."

월군녀의 말에 뭇 대신들도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몽은 장수들에게 만반의 태세를 갖출 것을 명하고선 회의를 서둘러 파했다.

어느덧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양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묵거의 말대로 장마가 시작된 것이었다. 주몽은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묵거의 말에 따라 사전에 백성들을 고지대인 오녀산성으로 대피 시켜 놓은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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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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