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버리면 386 다 죽습니다

안희정 형께 드리는 고언

등록 2003.03.24 16:46수정 2003.03.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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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노무현님의 386 실세 측근으로 불리는 안희정형. 나는 노사모 회원이고 개혁국민정당 영덕 지역위원회 당원입니다. 형은 나를 기억 못하겠죠. 사실 나도 형과 단 둘이 만나서 얘기해 본 적은 없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닙니다.

형과의 인연은 짧습니다.
나는 지난 87년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가 옥상에서 잡혔습니다. 집행유예 기간이었으므로 86 학번으로 고작 대학 2학년이었는데도 구속되었고 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으로 풀려 났습니다. 그 무렵 다들 그랬듯이 전국에서 풀려난 양심수들이 을지로인가 종로 어딘가 있던 서울 민주투쟁연합 사무실에 모여서 농성을 했습니다. 남은 사람들 모두 풀어주라고. 나를 빼고는 모두가 으리으리한 이름을 달고 있는 분들이라 밤 잠도 자지 않고 옆 사람들과 얘기를 했습니다. 내 옆에 장아무개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반미청년회 사건'에 연루된 분이었습니다. 아마 형하고 같은 대학 동기이던가 1년 후배 쯤 되죠.

조직표에는 형이 아마 1번 아니면 2번으로 그려졌었죠. 기어코 노태우가 대통령 행세를 하려는 때 반미청년회의 활동은 감옥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관심거리였거든요. 그래서 물어 보았습니다. 서대협, 전대협 등 쟁쟁한 조직을 두고서 어떻게 전국을 장악(?)했는가? 특별한 조직 방침이라도 있었는가? 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만약 지방대 사업을 한다면 특별한 선이 없어도 우선 지방으로 내려간다. 가서 간부들, 대중들과 함께 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실천으로 모범을 보이며 지도력을 획득한다.' 이른바 산개론이라고 하데요.

고작 1년 남짓 운동한 나로서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다. '따라 해야지' 하는 선망의식까지 가졌습니다. 그 때 같이 석방된 장기표씨가 주도해서 주로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 하고 공부도 몇 번 했지요. 형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89년 2월인가 내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모임에서 장기표씨가 석방 동기들 근황을 전하며 '안희정이는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들어갔다고 합디다' 해서 모두 실업자(?)들인 처지라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습디다. 기억 나는 것은 거기 까지입니다.

나도 노동운동을 한다고 영남을 돌아 다니다가 전신마비 1급인 집사람을 만나서 활동을 줄이고 딸 아이를 낳았고 2년 후에는 집사람 자연식 치료한다고 울산을 떠나서 훌쩍 경북 영덕 하고도 산골에 왔습니다.

죽은줄 알았던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열망은 인터넷으로 살아 났습니다. 2년 전 우리 동네에 초고속 인터넷 선이 들어오면서부터 바람이 불다가 작년에 이른바 노풍이 불면서 이 사회를 위해서 나도 뭔가 할 것이 있겠다는 감이 왔습니다.

광주 경선 이후 나는 노무현 참모진에 들어 있는 형 이름을 보았습니다. 안희정이라면 386은 분명한데 '반미 청년회'라. 92년 대선 때 김대중씨가 50명이 넘던 비서진 중에 북한과의 관계가 있다는 이아무개 씨 때문에 김영삼씨 측으로부터 두드려 맞은 것을 알고 있는지라 경선이 거의 끝날 무렵해서 노무현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안희정이 반미청년회 관련된 그 사람이면 노무현 캠프에서 빼라고 다른 데서 활동하게 해야한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지금 성향은 어떻든지 간에 '반미'라는 이름을 건 조직에서 중책을 맡은 것만 가지고도 노무현씨가 두드려 맞을 것을 우려했던 거지요.


그 전에 두 차례 보낸 메일에는 답장을 해주더니 아무 답이 없었습니다. 하여튼 형은 노무현 캠프에서 계속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은 당선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제 그런 해코지는 표가 안된다고 판단했는지 내 걱정은 기우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형 못지 않게 나도 노무현이 잘되기를, 참여정부가 잘해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최근 형과 관련한 말이 무성하더니 오마이뉴스에 형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읽자 마자 형에 대한 실망감에 잠이 다 오지 않더군요.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386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런 행세하려고 돼지 저금통 털어가면서 노짱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형이 해명한 것 중 세 가지가 걸렸었는데 자동차 건은 되돌려 준다니까 넘어가고요. 한번 살펴 봅시다.

집 문제에 대한 해명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최근 부천에서 일산으로 이사했다. 40평 아파트에서 40평 아파트로 옮긴 것이다. 집사람과 13년 동안 맞벌이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부천 집을 산 것이었고, 이번에 8000만원의 개인 대출을 받아 일산으로 이사한 것이다. 그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노 대통령도 청와대 오기 전에 산 집이 목욕 물도 신통 찮다는 45평 짜리 빌라라는데. 부동산 업자는 아니지만 빌라값과 아파트 값과의 차를 따져보면 새로 이사 했다는 일산아파트 값이 더 비싸지 않을 까 싶습니다. 나로 말하면 울산 살 때는 12평 짜리 임대 아파트 살다가 1달 전까지 살던 산골에서는 난방도 전혀 안되는 옛날식 마루가 절반인 16평 짜리 집에 살았습니다. 1달 전에 이사와서 사는 집은 1500만원 전세인 조립식주택 입니다. 방 두개 24평 짜리인데 한 8평 되는 거실을 보면 아직도 대궐 같다고 생각합니다.

13년 동안 맞벌이 했다고요. 13년 동안 형이 돈 버는 일 했습니까?
작년에 노무현 경선 과정에서 측근중 신용카드 불량 안난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고 하던데 형은 신용카드야 불량 나더라도 장농에다 현금만 보아둡니까?

형이 하는 일에 대한 해명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건 사실이다. 대통령을 알고 있었던 분들이 취임 이후에 직접 뵙지를 못하니 측근이라고 불리는 내게 많이 찾아온다. 그 사람들을 만나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오해도 풀고, 참여정부의 성격도 설명을 해준다. 그건 '민간외교 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새 정부에 대한 홍보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슨 권노갑씨 인터뷰인줄 알았습니다. 민간외교 사절 자격은 측근 386에게 준다는 대통령 임명장이라도 받았습니까? 새 정부에 대한 홍보를 왜 형이 합니까? 장관들도 있고 청와대 브리핑도 있고 국정 홍보처도 있는데. 비선 조직을 없애고 투명하게 하겠다는 것은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침으로 아는데요. 형만 예외입니까? 형은 그런 일 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 하고 싶으면 이제라도 한 자리 마련해서 직책을 가지십시오.

민주당내에서 구파와 싸우느라 고생하십니다. 내 생각에는 그 사람들하고는 평생을 싸워도 안될 것입니다. 신문에 기사거리는 나겠지만 한국 정치 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는 다 헛일입니다. 말 그대로 국민의 힘으로 심판해야지요. 노무현이 언제 이인제와 말싸움해서 물리쳤습니까? 국민이 이인제를 버리고 노무현을 택한 것이지요. 마음 같아서는 형 고향이자 이인제 지역구인 논산에서도 내년 총선 때 개혁국민정당에서 당선되었으면 좋겠지만 형이라도 이인제를 이겨 준다면 좋은 일이지요. 중앙에서 말도 안되는 사람들과 다투지 말고 고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중앙에 비한 지방의 홀대.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살 것입니다. 거기서도 형이 할 일이 많지요.

반미 청년회 할 때의 그 자세로 사셔야지요.
다른 사람에 비해 형이 돋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것 뿐입니다. 개혁을 위해서 원칙과 상식의 사회를 위해서 대통령 측근 386들은 예외라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처음 운동권 모임에 나갔을 때 선배들이 한 말이 있습니다. '민중에 대한 책임성과 헌신성'이라는 말입니다. 초심을 버리면 죽는 것은 노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형처럼 대통령과 가깝다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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