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은 왜 노짱과 대결하는가

숨겨진 1센티미터를 본 네티즌들, 부림사건 당시 노짱의 심정과 같을 것

등록 2003.03.27 16:54수정 2003.03.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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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열기로 아침을 시작하고, 수십 개의 온라인 동호회와 수백 명의 메신저를 등록하고 있는 네티즌들은 또 한 차례 뜨거운 토론에 돌입해 있다.

지난해 12월과 달라진 것은 더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공격의 화살을‘노짱’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신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글들이 연이어 뜨고, 여기에 수 십 개의 댓글(comments)이 붙고 있다. 물론 맘에 맞는 글을 여기저기 퍼 나르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노짱이 도대체 왜?”라는 의문에 대한 분석 또한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국익을 고려해 대통령은 파병에 찬성하고, 국민과 국회는 적극 반대해 파병을 부결시키면 명분과 실리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노통의 전략”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노무현 자체가 ‘국민사기극’이었다는 거친 주장도 나와 있다. 네티즌들은 왜 일어서서 말하고 있는가.

미·영 동맹군 대 반전평화 시민연합군

2003년 3월 이번 전쟁의 양상은 지난 1991년의 걸프전과는 전혀 다르다. 먼저 지목해야 할 것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목했듯) 이 전쟁이 유엔의 동의 없이, 국제법에 반하여 벌어지고 있는 침략 전쟁이라는 점이다.

전선은 개전과 동시에 이라크와 미영 동맹군 사이에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개전 전에도 이미 형성돼 있었다. 프랑스-독일 등 우방과 미국-영국은 완전한 의견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영 전쟁지도부를 포함 파병 3개국, 지지 30여개국, 숨어서 찬동했다는 15개국을 포함한 총 45개국 ‘의지의 동맹(Coalition of the Willing)’ 대척점에는 유럽-중동-아시아-북중남미-아프리카의 ‘반전평화 시민연합군’도 버티고 있다.

또하나 주목할 것은 언론이다. 미·영동맹군이 자기 군대 내에 언론인들을 포함(임베딩)하여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전쟁보도에 독보적인 신화를 갖고 있는 CNN이‘애국’적인 보도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사정은 이전과 판이하다. 알자지라 등 아랍권 언론이 속보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이들을 앞서 나가게 된 것이다.


이것을 움직여 나가는 힘은 인터넷이 제공하고 있다. 반전운동은 인터넷에서 만나고 뜻을 나누며, 행동의 지침을 받고 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세계의 시민들과 활동가들을 ‘분노 매우 분노’케 한 이라크의 참상을 직접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숨겨진 1cm를 보여주는 인터넷


네티즌이 신문 독자나 방송 시청자와 완전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지칠 줄 모르는 정보의 탐식가라는 점이고, 인터넷이 이들의 욕구를 120% 만족시킨다는 점이다. 이 여정에서 네티즌들이 발견하는 것은 일반 언론이 보여주지 않았던 ‘숨겨진 1센티미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술이 확 깨고, 속이 메슥거리고, 잠도 들 수 없는” 그런 경험이다. 이것은 아마 노짱이 부림 사건에서 “까이고 깨져 공포에 떨고 있는 대학생을 보면서 정신이 까마득해 졌던” 그런 정신상태와 유사한 것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a 숨겨진 1센티미터에서 네티즌이 보는 것

숨겨진 1센티미터에서 네티즌이 보는 것

노짱은 지금 청와대로 갔지만, 네티즌들은 아직 인터넷 안에서 살고 있다. 노짱은 이제 국가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곳에 정보채널을 두게 된 것이다. 때문에 대통령의 인식은 이제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르게 되었다. 일반인은 딸 같고 남동생 같은 아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는다. 집이 부서져 살 터전을 잃게 된 아버지와 함께 운다. 그곳에서 자신과 가장 크게 뜨겁게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포털 사이트 초기화면에서, 자주 접하는 여느 사이트에서도 관련 글을 읽을 수 있다. 자기 동호회나 카페에도, 친구들이 권해준 수많은 텍스트들이 있다. 거기엔 “내가 바로 여러분들이 죽이려는 그 아이입니다”라는 13세 이라크 소녀의 편지글도 있다. 한번 마음이 정해지면 좀체 다른 의견은 들리지 않는 법이다. 그럼 네티즌들은 감정적이고 편파적인가?

양과 질에서 오프라인 언론을 압도

3월 26일 오후 5시 40분 현재 인터넷언론 프레시안(http://www.
pressian.com)이 메인(-서브타이틀)으로 올려놓은 기사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국회 앞에서 자칫하다간 봉변" - 경찰, 국회앞 기자회견 강제해산
2. "미제 불매운동으로 부시와의 전쟁을" - 미국제품 불매운동 확산
3. 미, 이라크 방송촵통신시설에 폭격 - 미군포로 방영 등 심리전에 초초감
... 중략 ...
9. 계속 폭로되는 미국의 '거짓말' - '화학무기공장' 등 거짓으로 판명
10. 인권위, 국가기관 최초로 反戰 성명 - 인권위 직원들, 파병 반대 성명 발표
11. 유엔 안보리 27일 새벽 긴급소집 - '이라크전 즉각 중단' 결의 놓고 고심
... 중략...
17. CNN은 여론조작의 선봉장? - <미디어비평> "한국방송들, CNN 숭배 지나쳐"
18. "UN은 후세인과 함께 사라질 것”- 美국방정책위원장 '일방주의'발언 파문
19. "외환은행 사외이사, 전혀 거리낌 없다" - 대북송금 특검 송두환 변호사

19개 메뉴 중 단 하나, 대북송금 특검을 맡은 송두환 변호사의 인터뷰를 빼고는 모두 이라크 침공 관련 소식이다. 우선 양에서 엄청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도 이 뉴스들은 일반 언론이나 방송을 이라크전 보도를 압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안에서 전쟁의 ‘맥락과 이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바스라에서 반후세인 봉기가 일어났다고 말하지만(시아파 지도자를 처형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시아파 최고지도자가 ‘미·영 동맹군에 항전할 것’을 종교령(파트와)으로 내렸다. 봉기하는 모습, 팩트(fact)를 CNN에서 보았던가? 1991년 걸프전 당시 바스라의 시아파 봉기 때, 미국은 수수방관했다던데. 상식과 증거에 기대어 보건데, 텔레비전의 봉기설에는 의문이 인다.

텅빈 난민촌을 볼 때, 오히려 조국으로 돌아가는 이라크인을 만날 때, 순교자의 관을 들고 분노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행렬을 볼 때, 미·영 동맹군은 이라크 민중들에게 ‘침략자’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임은 분명해진다.

a 피에타... 야만의 전쟁에 부쳐

피에타... 야만의 전쟁에 부쳐 ⓒ 원동업

지난번이 옳았다면, 이번에도 옳지 않겠는가

거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도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고 전파한다. 모래폭풍 보도가 있을 때, 댓글에는‘경험자’란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이 그 모래폭풍이 얼마큼 무서운 것인가를 이야기해 준다. ‘부시’고 ‘불내는’ 망나니들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럼 그 글은 서너 개의 게시판으로 옮겨지며 ‘펌글’이 되고, 그게 다시 여섯에서 여덟 개로 확산해 갈 수 있다. 신문과 방송이 한번 독자와 시청자를 지나간 뒤 다시 생산될 수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글, 새로운 글, 가슴에 닿는 텍스트는 지속해서 퍼지고, 메일로 보내지고, 프린트되어 두고두고 읽히는 것이다. 댓글이 아닌 원본은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러니 노짱은 (혹여) 네티즌의 판단이 피에 흥분하고 단순한 논리 위에 서고 명분만 앞세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수도없이 많은 네티즌들이 치열하게 증거를 찾고, 자료를 비교하고 분석한다. 의견을 듣고, 판단하고 다시 의견을 구하려 서핑을 계속한다. 반전평화라든지, 파병반대는 그 수많은 지식의 여정 끝에 솟아나온 빙산의 꼭두머리이고, 그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해낸 결론임을 잊어선 안 된다.

노짱은 “반전여론을 존중하며, 상호간 이해를 넓혀보자”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그 말을 이미 들은 것 같다. 부시도 “정중히 의견을 달리 한다”고 거세진 전세계의 반전 여론을 앞에 두고 말했었다. 결국 노짱은 부시의 길을 갈 것인가, 혹은 그와 함께 했던 네티즌들과 함께 할 것인가?

지난 시기 노짱을 밀어올린 네티즌들이 옳았다면, 이번에도 그들은 옳지 않을까? 그들의 이번 결론이, 지난 번의 결론을 낼 때와 과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말이다. 인터넷을 뒤지며 또 뒤지고, 잠을 못이루고, 때로 울고, 상대의 저 깊은 내면에서 내 깊은 곳의 마음을 보았던 그 과정을 고스란히 되풀이 한 뒤의 것이라면 말이다.

무리한 추론인가? 그렇지만 지금은 “살상무기가 보이면 전쟁을 하고, 없으면 감췄기 때문에 ”전쟁도 하는 시대 아닌가“후세인을 없애기 위한 전쟁인데, 후세인이 망명을 해도 진격을 하겠다”는 말이 통하는 시대 아닌가? 부시의 화법을 잘 알고 있는 노짱은 네티즌들의 이 말도 곧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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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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